걸어서 저 바다까지

22.07.31(주일)

by 어깨아빠

이사를 와서 처음 교회에 나갔다. 다닐 교회는 정해져 있었다. 새로운 신자가 되어 처음 출석하는 날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양쪽 부모님을 모두 대동했다. 걸어 가기에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오르막이 많고 날이 더워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걷기로 했다. 엄청 더웠다. 15분 정도 걷는 동안 등판이 다 젖었다. 부모님들도 생각보다 버거우신 듯했다.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땀이 범벅이었다. 안내하시는 집사님께서 ‘이 쪽이 에어컨 바람이 바로 나온다’고 하시며 자리를 알려주셨다.


어쩌다 보니 교회에서 밥도 먹게 됐다. 빵과 떡, 주먹밥, 라면, 과일, 음료 등이 있었다. 컵라면이 너무 맛있었다. 국물 장인의 육수를 마시는 듯이 시원했다. 양쪽 부모님들도 맛있게 드셨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게 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양쪽 부모님이 한 집에서 함께 자는 것도, 자녀들도 처음 나가는 교회에 동행하는 것도, 그곳에서 점심까지 먹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나름대로 추억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K의 자녀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다녔던 아이들처럼 서슴없이 뛰어 다니며 놀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윤이는 예배 시간에 잠들었다가 끝나고 밥 먹을 때 깼다. 서윤이 몫으로 챙겨둔 주먹밥을 먹였다. 서윤이에게도 낯선 곳을 향한 어색함이나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내 자녀들이 적응력은 좋나 보다. 난 여전히 이게 현실이 맞나 싶기도 한데.


돌아가는 길도 더웠다. 그저 예배만 드리고 왔을 뿐인데 다들 지쳤다. 오고 가는 길이 너무 험했나 보다. 날씨도 그렇고. 아버님들은 집 이곳저곳을 보수해 주시느라 바쁘셨다. 방충망이 찢어진 곳, 창틀 사이에 구멍 난 곳을 막기도 하셨고 덜렁거리는 이것저것을 고정시켜 주기도 하셨고 길을 모르고 콸콸 쏟아지던 세면대의 수도도 얌전하게 만드셨다. 쉴 틈이 없으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바다에는 언제 갈 거냐’고 물었다. 어제부터 가고 싶어 했는데 어제는 못 갔고, 오늘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오늘은 꼭 갈 생각이긴 했다. 다만 예배를 드리고 와서도 쉬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나니 다들 피곤했다. 모두 같은 시간에 일제히 잔 건 아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알게 모르게 잠깐씩 눈을 붙였다. 나도 잠깐 잤다. 달콤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바람대로 바다에 갔다. 물놀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발만 조금 담그고 바람만 쐴 생각이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발만 담그던 아이들이 점점 몸을 낮췄다. 결국 다 젖었다. 수영복을 안 입고 튜브만 없었다 뿐이지 거의 물놀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번에 수영장에서도 그러더니 오늘도 원래 바닷가에 살았던 녀석처럼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물을 먹고서도 나올 생각이 없었다.


아빠가 서윤이를 거의 전담했고 난 소윤이와 시윤이 곁에 있었다. 사실 딱 할 건 없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살피고 물을 먹었을 때 잽싸게 건져 주는 정도였다. 그래도 굉장히 신경이 곤두섰다. 일단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 물에서 노는 걸 싫어하지는 않지만 항상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아빠가 서윤이를 맡아 줘서 좀 나았지 안 그랬으면 몇 배는 힘들었을 거다. ‘자 놀아라’ 하고 풀어 놓는 게 잘 안 된다.


생각보다 진하게 오래 놀았다. 그래도 걸어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혜택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런 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게. 집으로 걸어 가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역세권, 숲세권도 아닌 해세권(해수욕장)이라니. 언제 이 집과 동네에 정이 들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여전히 여행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바닷가 물놀이의 뒤처리는 번거로웠다. 물론 준비를 전혀 안 하고 간 탓도 있겠지만. 부지런히 아이들을 씻기고 잠시 숨을 골랐다. 저녁을 먹으러 갈 때는 차를 타고 갔다. 아까 그 해수욕장 근처의 식당이었으니 마찬가지로 가까웠지만 차를 탔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만 걸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있었던 것 같다. 승차정원을 약간 초과했지만 그래도 걷는 것보다 편하긴 했다. 아무리 짧은 거리여도.


오늘도 카페에 갔다. 오늘도 세 남매는 밥을 굶은 아이들처럼 빵을 습격했다. 나도 그렇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그렇고 빵에 굳이 손을 대지 않았다. 얼마나 먹여야 ‘아 이제 질려서 못 먹겠어여’ 하는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드디어 이층 침대에서 잤다. 어제는 이층 침대에서 못 잔다고 그렇게 울고불고 하더니 막상 이층 침대에 눕고 나서는 한참 동안 자지 않았다. 문을 조금 열어 놨는데 둘 다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인자하고 너그러운 이해를 등에 업고 당당하기까지 했다. 서윤이는 안방에서 따로 재웠다. 언니, 오빠와 같이 재워 보려고 했는데 너무 슬픈 표정을 하면서 엄마와 자고 싶다고 했다. 오늘까지만 안방에서 재우고 내일부터 제대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버님들은 어제에 비하면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어제의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오늘의 새로운 피로가 더해지기도 했고, 내일 장거리 운전도 대비해야 했다. 어머님들은 그보다는 조금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셨지만 마찬가지로 어제보다는 일찍 누우셨다.


여전히 여행 같은 이 곳에서의 생활이, 내일 부모님들이 떠나시면 좀 실감이 날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