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시작인가

22.08.01(월)

by 어깨아빠

부모님들은 오전에 가셨다. 아침을 먹고 점심 먹기 전에 가셨다. 소윤이는 오히려 담담했다. 물론 진짜 속마음이야 아쉬웠겠지만 그렇다고 눈물을 꾹 참는 느낌은 아니었다. 의외로 시윤이와 서윤이가 슬퍼했다. 떼를 쓰는 것하고는 확연하게 달랐다. 서윤이는 계속


“할머니 가지 마여어어, 하버지 가지 마여어어”


라며 매달리더니 결국 눈물을 보였다. 펑펑 우는 게 아니라 삼키듯 우는 게 더 안쓰러웠다. 뭔가 서윤이의 보통 울음과 달랐다. 시윤이도 비슷했다. 울음을 참고 있었지만 참지 못해서 눈물이 흘렀다. 장인어른은 매달리는 서윤이를 안고 이야기를 하시다가 울먹이셨고, 양쪽 어머님들은 차 안에서 인사를 나눌 때 참던 울음이 터졌다.


‘이제 우리 가족의 주변에 정말 아무도 없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의 풍경을 깊이 관찰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고립감이 심해지는 기분이었다(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나는 이별의 당사자가 아닌 듯하지만). 신혼 때는 아내를 타지로 끌고 왔다는 미안함과 책임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온 가족을 끌고 왔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다. 물론 내가 끌고 온 게 아니라 모두의 상의와 기도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잘 이끌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심심찮게 느껴진다. 말로는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생하겠다며 유난을 떨며 살았지만, 사실 입만 살았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도움을 무지막지하게 받았다. 전국 단일권 시대에 고작 400km의 거리 가지고 너무 호들갑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다.


오후에는 새롭게 함께 할 처치홈스쿨(이 곧 어제 갔던 교회) 모임에 가게 됐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캠프를 한다고 했는데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K의 자녀들도 함께하는 거라 소윤이와 시윤이가 어색할 일은 없었다. 내가 제일 어색했다. K 부부 말고는 모두 초면이었다. 아내는 이런 어색함을 친숙함으로 승화시키는데 탁월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역시나 원래 소속되어 있던 아이처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교회 앞마당에서 물놀이도 했다. 물놀이야 아이들이 하는 거지만 뒤치다꺼리는 내 몫이다. 교회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게 가능해서 물놀이를 마치고 세 녀석을 차례대로 씻겼다. 별 거 아닌 일 같지만 막상 다 하고 나면 은근히 힘들다. 하긴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그 어떤 일도 거창하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걸 빼면 육아가 아니고.


간식으로 수박도 먹었다. 서윤이는 ‘이럴 거면 먹이고 씻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윗옷을 수박물로 촉촉하게 적셨다. K의 막내의 옷을 빌려서 갈아입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러고 나서도 또 엄청 뛰어 놀았다.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 그동안 못 만나고 영상 통화만 했던 한을 푸는 건지.


저녁은 K의 가족과 함께 먹었다. K 부부가 감자탕을 먹자고 했다. 별로 배가 안 고팠는데 그 얘기를 듣자마자 식욕이 솟구쳤다. 연애시절까지 포함해도 아내와 함께 먹은 건 딱 두 번 뿐인 음식이었다. 그거 못 먹는다고 죽는 거 아니니 당연히 아내의 취향에 맞췄지만, 그렇다고 기호가 바뀐 건 아니었다. 잠시 묻어뒀을 뿐.


아이들은 주먹밥을 먹인다고 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을 것 같았다. 주먹밥으로 대충(?) 때워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식당에 아이들 놀이터가 있었다. 각 집의 막내들만 빼고 나머지는 곧장 놀이터로 달려갔다. 서윤이도 가고 싶어 했지만 필사적으로 의자에 앉혔다. 서윤이가 가면 아내나 나도 가야 한다. 다행히 서윤이는 끈질기게 요구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불쌍해서 봐 준 것 같기도 했고.


배가 안 고플 것 같았던 아이들은 주먹밥을 빠른 속도로 먹어치웠다. 끊임없이 ‘더 주세요’를 외치면서. 하긴 어른 입은 네 개고, 아이들 입은 여섯 개였다. 아무리 애들 입이라고 해도 숫자를 무시 못 한다. 막판에 서윤이는 맨밥만 먹었다.


“아빠아. 두먹빱 또 두데여어어”

“아, 주먹밥? 잠깐만. 자 여기”

“아빠아아. 이거느은 두먹밥 아니다나여어어”

“아니야. 이것도 주먹밥이야. 주먹밥 모양이잖아”


소윤이와 시윤이, K의 두 자녀는 계속 뛰어 놀았다. 밥을 다 먹고 나올 때는 대왕암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가자고 조르는 건 아니었지만 쉬지 않고 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부모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가기로 했다. 다소 피곤하긴 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그럴싸한(?) 태도로 요구했고 잠깐 마주한 밤공기와 풍경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대왕암을 오고 가는 길은, 엄청 시원했는데 엄청 더웠다. 엄청 시원하고 세찬 바람이 불어서 ‘아, 정말 시원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땀은 송글송글 맺혔다. 유모차를 타야 하는 막내들은 엄마들과 함께 입구에 머물렀고 아빠들과 첫째, 둘째만 대왕암 끝까지 갔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이게 진짜 내 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수도권에서는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장엄한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도 문득 문득 감각이 무뎌졌다.


소윤이와 시윤이, K의 첫째는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친구인 K와 붙어 다니려고 하는 소윤이에게 계속 시윤이를 챙겨야 한다는 걸 주지시켰다. 소윤이가 망각하는 것도 있었지만 시윤이가 자꾸 자기 멋대로 가는 면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처치홈스쿨의 핵심 정신(?)인 ‘그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걸 가르치려면 끊임없이 관찰하고 알려줘야 한다. 아주 사소한,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나 싶은 순간까지.


대왕암 여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니, 생각만큼 오래 걸렸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꽤 오랜 시간 일을 쉬고 있는 건데, 출근할 때보다 더 피곤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옛 어른들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