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2(화)
아침에 서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허벅지에 생긴 두드러기가 오랫동안 그대로였다. 소아과에서 받은 약을 발라도 소용이 없길래 피부과에 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도
“이렇게 오래 갈 게 아닌데. 단순한 접촉성 피부염인데”
라고 하셨다.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럼 도대체 왜 안 낫는 건지 의문이었다. 다른 약을 처방 받아서 바르기로 했다. 아침식사는 빵집에서 빵으로 대신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직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게 어색하다. 주방이 내 주방 같지 않아서 그런가. 아침 댓바람부터 동네 빵집에 가서 빵을 먹었다.
K의 가족과 함께 놀러 가기로 했다. 거창한 건 아니었고 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곳의 카페에 갔다. 바닷가 앞 정도가 아니라 바다의 바위 위에 지은 듯한, 기가 막힌 위치의 카페였다. 통유리 전체에 바다 풍경이 가득 찼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우리처럼 큰 규모의 집단은 없었다. 거기에 아이가 여섯이나 되는 모임은 물론이고, 아이를 동반한 무리 자체가 거의 없었다.
가기 전부터 꽤 무거운 피로를 느꼈다. 아내도 나도 비슷했다. 아이들 없이 침대에서 아내와 둘이 잤으니 수면의 질이 좋았을 텐데 이상하게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 얼마 전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었다. 주일이라 교회에 가려고 운전을 하는데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15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는데 아내와 자리를 바꿨다.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미세한 두통도 있었다. 잠자리가 불편했나 싶었는데 아내도 나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걸 보니 누적된 피로가 허용치를 넘어섰나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일정을 취소하고 쉬어야 하는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움직이면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다.
아내는 카페까지 가는 내내 잤다. 아내는 물론이고 서윤이, 시윤이, 심지어 소윤이까지 모두 잤다. 다들 피곤했나 보다. 나도 졸음을 참느라 텐텐(약국에서 파는 캬라멜)을 몇 개를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도착할 때쯤 되니 무겁게 내려앉던 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카페에 들어가고 나서는 빠른 속도로 정상화(?) 되는 게 느껴졌다.
아내는 아니었다. 도착했을 때 속이 약간 울렁거린다고 하더니 결국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두통도 가라앉지 않는다고 했다. 겉으로 엄청 힘들어 보이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좀 지쳐 보이고 힘이 없어 보였다.
소윤이와 시윤이, K의 자녀들은 그렇게 자주 봐도 매일 반갑나 보다. 꽤 시끄러운 카페였는데 녀석들이 내는 목소리가 가장 잘 들릴 정도로 떠들기도 했다. 빵도 전투적으로 먹어치웠다. 내 자녀들이 어디를 가도 크게 한 몫 한다. 어쩜 그렇게 빵을 좋아하는지. 종류를 불문하고 달려든다. 어른들의 손을 멈칫하게 만든다.
아내는 몸이 생각보다 안 좋았는지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남은 일정이 많아서 미안해 했다. 그래도 꽤 멀리까지 왔는데. 그래도 당연히 쉬는 게 나았다. 아쉽지만 K의 가족과는 거기서 헤어졌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자녀들에게
“이제 내일도 볼 수 있잖아”
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실제로 거의 매일 보고 있다. 자녀들은 그래도 아쉬워한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토했다.
아내만 집에 내려 주고 난 아이들을 데리고 장을 봤다. 아니, 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했다. 아이들 저녁으로 먹일 계란 볶음밥의 재료를 샀다. 계란, 대파가 끝이었다. 온 김에 탄산수도 사고 두부도 샀다. 두부는 언제든 유용하게 쓰이는 식재료다. 닭다리살도 하나 살까 했는데 평소에 아내가 사던 게 어떤 건지 몰라서 못 샀다. 그러고 나서는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행정적으로도 울산 시민이 되었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일부러 시간을 많이 쓰고 왔다. 아이들 없이 좀 푹 자라고. 아내는 깨지 않고 계속 잤다. 중간 중간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서 숙면을 방해 하기도 했지만, 완전히 깨지는 않았다. 저녁으로 계란 볶음밥을 만들었다. 양을 진짜 많이 한다고 했는데 왠지 부족할 거 같았다. 소윤이가 벼르고(?) 있었다. 아빠의 볶음밥은 너무 맛있다면서, 많이 먹을 거라면서. 아이들을 떠 주고 내가 먹기에도 충분한 양이 남았지만 라면을 끓였다. 아이들이 얼마나 더 먹을지 가늠이 안 되기도 했고 뭔가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기도 했다. 역시나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몇 번을 더 떠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이 했는데 한 그릇 정도의 양만 남았다.
먹이고 나서는 씻겼다. 아내가 아프면 초인적인 정신력이 발휘되긴 하지만 굉장히 고단했다. 서윤이는 어제 처음으로 언니, 오빠와 함께 잤다. 대신 재워 주긴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서윤이가 우리(아내와 나) 방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엄마, 아빠를 찾아 오긴 했는데 차마 침대에는 올라오지 못했나 보다. 오늘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들어 봤다. 기도와 뽀뽀 등의 취침 전 의식(?)을 모두 마치고
“소윤아, 시윤아, 서윤아. 잘 자”
하면서 방에서 나왔는데 의외로 서윤이가 순순히 자는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끝이었다. 아마 계속 엄마가 없이 지내서 자는 것도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다. 한 번씩 ‘오늘은 언니, 오빠와 자야 한다’는 말을 툭툭 던졌던 것도 효과가 있었나 보다. 오히려 시윤이가 마지막까지 잠들지 못하고 들락날락했다.
아내는 정말 계속 잤다. 뭘 먹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몸살이 난 것처럼 아픈 것하고는 좀 달랐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고. 이사를 준비하면서부터 쌓였던 깊은 피로가 터진 듯했다. 부모님들이 가시면서 비로소 긴장이 풀리기도 했고. 생각해 보면 푹 쉬지 못하고 계속 빡빡한 일정이긴 했다. 차라리 푹 쉬고 재정비 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누워서 자는 건 처음 봤다.
다행히 나는 멀쩡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더 상태가 안 좋은 듯했는데, 난 완전하게 멀쩡했다. 갑자기 육아와 가사의 부담이 너무 집중돼서 다소 힘겹긴 했지만. 그렇게 고단했는데 난 또 불나방처럼 아이들 방을 찾았다. 아내 옆에서 자면 괜히 아내가 푹 자는 걸 방해할 것 같기도 했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냥 내가 아이들하고 자는 게 그리웠다. 이층 침대에서 자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매만지면서 자는 건 불가능하지만 바닥에서 자는 서윤이는 아직 가능하다. 토실토실한 손을 잡고 자는 그 기분이 그리웠다.
맨바닥이나 다름없는 서윤이 옆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