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주부 현장

22.08.03(수)

by 어깨아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서윤이는 내 옆에 없었다. 또 엄마를 찾아 안방으로 갔나 보다. 소윤이도 안 보였다. 시윤이만 자고 있었다. 시윤이는 나와 비슷하게 잠에서 깼는데 안방에서 아내의 기척이 들리자마자 바로 안방으로 달려갔다. 어제 잠들지 못한 것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혹시나 엄마가 깨면 엄마를 보지 않을까 싶어서.


감사하게도 아내는 어제보다는 훨씬 괜찮아졌다. 여전히 속이 불편하고 미세한 두통도 있었지만 어제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기력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제 제대로 먹은 게 한 끼도 없었다. 아침에는 먹는 둥 마는 둥 빵이었고, 점심에는 먹기는커녕 게워내기 바빴고, 저녁은 아예 굶었고.


아침에는 또 계란 볶음밥을 먹었다. 물론 아이들의 요청이었다. 어제 밤에도 먹었는데 뭘 또 먹냐고 그래도 괜찮으니 또 해 달라고 했다. 역시나 잘 먹었다. 아내도 드디어 먹었다. 기력이 없는 건 먹고 쉬어야 해결이 될 일이었다. 어제보다 기운을 차린 아내는 자꾸 뭘 하려고 했다. 오늘까지는 웬만하면 뭘 하지 말고 계속 쉬라고 했다.


요즘 주부 체험을 하는 기분이다. 특히 어제, 오늘. 딱히 뭘 하는 것도 없는데, 오늘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돌아서면 먹이고 치우고, 돌아서면 먹이고 치우고, 돌아서면 먹이고 치우고. 더군다나 아직 집에 할 일이 많이 보여서 그런 것까지 하다 보면 눈 깜짝 할 사이에 시간이 흐른다.


아침 먹고 별로 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어느새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났다. 원래 장이라도 봐서 뭘 해 주려고 했는데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근처 식당에 주문을 하고 내가 찾아왔다. 난 동태찌개, 아내는 미역국, 아이들은 콩국수였다. 난 어제 라면으로도 해갈하지 못한 칼칼하고 얼큰한 무언가를 향한 갈망을 담았다. 어제와 오늘의 나를 생각하면 한 끼 정도는 이기적인 음식 선택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생존을 위해 먹었다. 언제나 잘 먹는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잘 먹었고 서윤이도 아내의 미역국이 입에 맞았는지 아주 잘 먹었다. 가장 잘 먹은 건 바로 나였다.


“여보. 잘 먹네?”


아내가 자녀를 대하는 듯한 말투로 나를 흐뭇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정말 잘 먹긴 했다. 동태찌개 따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소식가도 고개를 돌리게 만들 만한 먹성이긴 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내내 내복 차림이었다. 집에서 안 나갔다는 얘기다. 오늘은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며칠 내내 이게 바닷가의 삶인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나가서 놀았으니까. 대신 소윤이와 시윤이는 K의 아내를 엄청 기다렸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K의 아내와 함께 올 K의 자녀들을 기다렸다.


“아빠. 00 이모는 안 오시나 봐여”

“엄마. 00 이모한테 연락 안 왔어여?”


K의 가족은 저녁 쯤 우리 집에 왔다. 아픈 아내를 위해 삼계탕을 끓여서 왔다. 물론 자녀들은 그저 만나서 좋아했다. 삼계탕만 전해 주러 온 거라 한참 머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간 건 아니었다. 자녀들의 아쉬운 마음을 생각해 꽤 앉아 있었다. 삼계탕을 전해 주러 온 것치고는 꽤 있었다.


K네 가족이 가지고 온 삼계탕을 일용할 저녁 양식으로 먹었다. 밥이 없었지만 하지 않았다. 귀찮았다. 삼계탕 자체가 보양식이니 밥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닭 한 마리를 다 먹었다. 삼계탕은 항상 ‘별로 안 먹을 거 같은데’로 시작했다가 ‘그걸 다 먹네’로 끝난다. 셋 모두 고기를 좋아해서 그렇다.


서윤이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언니와 오빠가 누운 방에 누웠다. 어제처럼 엄마나 아빠가 와서 재워 달라는 소리도 안 했다. 심지어 누우면 가장 금방 잠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직도 좀 어색한지 자꾸 떠들고, 장난치고, 핑계를 만들어서 나오고 그런다. 뭔가를 가지고 오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1층과 2층에서 고개를 빼고 대화를 나누다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 누웠다. 자기들도 민망했는지 막 웃었다. 웃음을 받아 주면서 너무 떠들지 말고 얼른 자라고 한 마디 하고 나왔다. 둘이 소곤대다 잠드는 재미도 나름의 추억이 될 거다. 아직까지는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니고 그게 아내와 나의 육아 퇴근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니 얼마든지 허용이 가능하다. 다만, 워낙 잠이 부족한(?) 아이들이라 최소한의 수면 시간이라도 확보해야 성장과 피로회복에 문제가 안 생길 거다.


아내는 확실히 어제보다는 기운을 좀 차렸는지 아이들을 재우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피곤해 하는 건 비슷했다. 처치홈스쿨도 쉬고 있고, 나도 집에 있는데 그토록 피곤한 걸 보면 역시 이사의 피로가 만만하지는 않았나 보다. 모르긴 몰라도 다시 혈혈단신이 되어 머나먼 곳으로 왔으니 그로 인한 정신적 긴장과 부담도 무시하지 못 할 거다.


물론 이전과는 다르게 자녀가 둘이나 늘어서 다섯 식구가 되어 돌아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