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과 적응의 시간

22.08.04(목)

by 어깨아빠

서윤이가 오늘은 아예 침대 위로 올라왔다. 아내와 내 사이에서 자고 있었다. 언제 올라왔는지는 모르겠다. 매일 새벽마다 엄마 품을 찾아오는 게 참 갸륵하다.


아내는 많이 회복됐다. 거의 정상에 가까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여전히 약간의 울렁거림과 불편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완벽히 건강한 기분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어제나 그제처럼 일상생활을 하기에 어려울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아내가 살 게 있어서 중고 거래를 했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이사, 정확히 말하면 ‘멀리 왔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다. 중고 거래의 동네 인증을 바꿀 때도 그랬고 거래를 하러 갈 때도 그랬다. 넘쳐나는 경상도 사투리 속에 우리가 쓰는 서울말이 너무 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물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점심은 밖에서 먹었다. 예전에 이곳에 살 때 갔었고 맛있었던 식당을 찾았다. 여러 곳에서 운영을 하는 식당이라 이전과는 다른 곳에서 먹었지만 맛있는 건 여전했다. 음식을 세 개나 시켰는데 부족했다. 시윤이는 계속 배가 안 찼다고 했다. 나도 비슷했다. 그렇다고 더 시키기는 조금 그래서 밖에 나가서 다른 간식을 더 먹자고 했다. 날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은 돈까스라 더 부족했나 보다. 아이들이 유독 잘 먹는 음식이 있다.


서윤이는 식사가 거의 끝났을 때쯤 잠에서 깼다. 서윤이 몫도 미리 따로 챙겨놨다. 그렇게 오래 잔 건 아니었는데 푹 잤는지 바로 밥을 잘 먹었다. 자기 몫으로 남겨 놓은 걸 다 먹었다. 식당에 공식적으로 쉬는 시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 말고는 손님이 없었다. 우리만 빠지면 쉬는 시간일 것 같은데 서윤이가 꽤 한참 먹어서 괜히 죄송했다.


다 함께 장도 보러 갔다. 집에서 밥 해 먹을 생각이 든다는 건 어떻게 보면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 집 같지 않던 집이 차차 내 집처럼 느껴지는 과정을 걷고 있다. 어제 내가 장을 본 건 그야말로 한 끼 때우기 위한 거였고 오늘 아내와 함께 간 게 진짜 장보기였다. 역시 지휘관이 있어야 안정감이 생기고 방향도 바르게 진행된다.


집으로 가기 전에 K의 집에 들렀다. K는 출근하고 없었고 K의 아내와 자녀들만 있었다. K의 자녀들은 모두 내복 차림이었다. 오늘 한 번도 안 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제 K네 식구가 우리 집에 들른 것처럼, 잠깐 들렀지만 들른 것치고는 꽤 오래 머물렀다. 빵을 사서 갔는데 역시나 내 자녀들이 객이 된 듯 많이 먹었다.


저녁 먹을 시간쯤 집에 돌아왔다. 점심을 양껏 못 먹어서 그런가 진작부터 배가 고팠다. 나만 충분히 못 먹은 게 아니었나 보다. 특히 시윤이는 밥을 몇 번이나 더 달라고 했다. 아내 나름대로는 많이 했다고 생각한 밥은, 한 끼 만에 동이 났다. 나도 많이 먹었고 시윤이도 많이 먹었다. 시윤이는 마지막에 거의 맨밥만 먹다시피 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가 너네 먹이려면 열심히 일해야 되는데 이렇게 놀아도 되나”

“왜여? 왜 아빠가 열심히 일해야 돼여?”


아내가 이제 안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유리통에 쌀을 보관한다고 하던데, 줄어드는 게 보이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네.


'아빠 일하세요. 우리가 먹잖아요. 아빠 일하세요. 우리가 먹어요'


패러디 노래를 내면 대흥행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잠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이웃들에게 이사 선물을 돌렸다. 아주 작은 선물이었지만 아이들을 무기(?)삼아 인사를 했다. 아이들이 인사를 하니 모두 반갑게 맞아 주셨다. 밤이었지만 여러 층을 오르며 인사를 했더니 금방 땀이 났다.


인사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시간을 보니 피로가 확 몰려왔다.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한테 괜히 좀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다소 다정하지 않고 무서운 말투를 장착하는 건 기본이고 조금만 말을 안 들어도 날카롭게 대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게 마무리되고 평온한 밤을 맞이하면, 그렇게 후회가 된다. 그거 조금 힘들다고 그렇게 못 되게 굴었나 싶다.


그래도 이해해 주고 똑같이 대해 주는 아이들이 고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