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5(금)
아내가 아침부터 분주했다. 내 생일이었다. 미역국은 어제 끓여 놨지만 다른 것도 열심히 만드는 것 같았다. 일부러 방에서 안 나가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비밀스럽고 바쁘게 움직였다. 편지를 쓰는 듯했다. 아침 상이 융숭했다. 미역국, 제육볶음, 계란말이. 그것도 이른 아침에. 아내와 세 자녀의 진심 어린 축하까지 더해졌다. 가족이 아니었으면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처럼 느꼈을 거다. 점점 그렇다. 생일이 무슨 대수냐고 말하는 어른들이 어떤 기분에서 그러는지 조금을 알 듯하다.
아이들이 내 선물을 못 샀다고 했다. 당연히 나는 안 받아도 상관이 없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꼭 내 선물을 사야 했다. 대신 나와 동행하는 건 안 됐다. 비밀리에 사야 했으니까. 원래는 서윤이를 재우면 그 시간에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만 나갔다 올까 싶었는데 그냥 다 함께 나가기로 했다. 내가 너무 답답했다. 나가고 싶었다.
대신 가서 따로 다니기로 했다. 같은 차로 다녀야 하니 아예 따로는 아니고 같은 건물에서 다른 층에 머물기로 했다. 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었다.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가고 난 잠든 서윤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다른 층으로 갔다. 좀 앉아서 쉴 곳을 찾았는데 마땅하지 않았다. 쇼핑몰 자체가 너무 활기가 없는 곳이었다. 유아휴게실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서윤이나 내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고객센터가 있다고 해서 거기는 좀 앉을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더웠다. 다시 유아휴게실이 있는 층으로 가서 화장실 앞 의자에 앉았다.
그랬더니 딱 서윤이가 깼다. 더 재워 보려고 차광막을 내리고 같은 곳을 빙빙 돌아봤지만 빼꼼하게 나온 서윤이의 발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아빠아. 엄마랑 언니랑 오빠늠여어?”
바로 엄마에게 가겠다고 울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내 선물을 다 샀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층으로 가서 만났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하느라 조심스러웠다.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 자주 맞이하는 상황이다.
점심은 빵을 먹기로 했다. 간단하게 먹고 저녁을 좀 일찍, 제대로 먹을 생각이었다. 예전(이곳에 살던 5-6년 전)에 맛있었던 빵집이 아직도 있어서 거기로 갔다. 요즘 5-6년 전 기억을 먹고 산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빵 위주로 몇 개를 골랐다. 간단하게 먹으려고 간 거지만 아이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신속하고 부지런하게 빵을 먹었다. 케이크도 하나 샀다. 소윤이는 자기 용돈으로 하트 모양 초도 하나 샀다. 첫째라 당연하게 여겨질 때가 많지만 벌써부터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지난 주말에 부모님들이 오셨을 때 대화를 나누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옛말에 ‘젓가락을 길게 잡으면 먼 곳으로 시집 간다’는 말이 있었다는 거다. 소윤이가 젓가락을 너무 짧게 잡은 걸 보고 시작된 대화였다. 그 말을 듣고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더 아래로 잡아. 더 짧게”
그러자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자기들은 이렇게 멀리 와 놓고는”
빵을 먹고 나와서 다시 차를 타려고 하는데 시동이 안 걸렸다. 보험사에 전화를 해서 긴급출동 서비스를 받았다. 그늘을 찾아 기다리긴 했는데 아내가 유독 힘들어 했다. 꼭 금방 쓰러질 것처럼 급격하게 지쳤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 정도로 덥지는 않았다. 그만큼 아내의 체력이 많이 처졌거나 몸이 지쳐 있는 듯했다. 집까지 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꽤 큰 수리가 필요해 보였다. 생일에 제대로 생일빵을 맞았다.
저녁에는 또 K네 가족을 만났다. 같이 모여서 저녁이나 한 끼 하려고 불렀다. 정말 가볍게, 짜파게티나 함께 먹으려고 불렀는데 맛있는 화덕 피자를 두 판이나 사 왔다. 정작 짜파게티는 팅팅 불은 데다가 뭔가 식사를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었다. 조미료의 향연인 음식이라 맛은 잘 보존이 되었지만.
생일 축하도 받았다. 소윤이는 덧신, 시윤이는 캬라멜을 선물했다. 물론 편지도 있었다. 심지어 서윤이도 편지를 건넸다. 낙서에 가까웠 아니 낙서였지만 내 편지라고 했다. 감사히 받았다. 소윤이에게는 내가 미리 언질을 줬고 시윤이는 순전히 자기 생각으로 산 거였다. 물론 아내의 도움과 유도를 따랐겠지만.
K네 가족과 생일을 함께 보내는 게 굉장히 특별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의외로 자주 겪었던 상황이다. 매년 이맘 때쯤 울산으로 휴가를 왔기 때문에 생일이 겹칠 때가 많았다. 그래도 휴가로 온 것과 완전히 거처를 옮긴 것과는 느낌이 다르긴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K네 가족을 따라 K네 집으로 갔다. K와 그의 아내가 둘을 데리고 갈 테니 밤에 영화라도 한 편 보라고 했다. 사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함께 있어도 얼마든지 영화를 보는 게 가능하다. 뭐 집에서 보는 거라면 서윤이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재우고 보면 된다. 서윤이까지 없었으면 진짜 밖에 나가서 영화라도 한 편 봤을지 모르지만 서윤이는 우리 곁에 남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신이 나서 갔다. 가기 전에 따로 불러서 ‘경거망동을 조심하라’는 의미의 가르침을 한 번 더 남겼다. K 부부가 너무 힘들까 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K 부부는 오히려 함께 있으면 아이들이 더 잘 놀아서 힘들 게 없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서윤이는 갈등하는 듯했다. 언니와 오빠를 따라 가고 싶다가도 엄마와 떨어지는 건 싫어했다. 결국 엄마 곁을 택했다. 서윤이는 언니, 오빠가 없는 방에서 혼자 잤다. 대신 오늘은 아내가 재워줬다. 그래도 기특하다.
서윤이를 재우고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있어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없으니까 괜히 특별한 기분이었다. 효녀 서윤이는 엄마와 아빠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