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8(목)
아이들도 이 집에 적응을 한 건지 오늘도 무척 일찍 일어났다.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알람은 꽤 이른 시간에 맞췄다) 서윤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서윤이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왔다. 소윤이가 서윤이 기저귀를 벗기고 팬티를 입힌 모양이었다. 덕분에 아내는 아주 이른 시간부터 서윤이의 오줌을 치워야 하는 일을 부여 받았다. 아내가 소윤이에게 ‘아침에 엄마가 일어나기 전에는 굳이 기저귀를 벗기지 않아도 된다’고 권면했다. 소윤이의 의도는 선했다. 선한 의도가 아내를 너무 일찍부터 부지런하게 만들었을 뿐.
아내는 오늘 친구 집에 가기로 했다. 아주 멀리. 거제도로. 원래 내가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하루를 자고 오기로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만 보내기로 했다. 150km에 육박하는 장거리 운전이라 굉장히 불안했다.
“여보. 뭐가 불안한 거야?”
아내의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는 못했다. 아내가 운전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안전하게 방어 운전도 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했다. 아내에게 웬만하면 장거리 운전은 맡기지 않는다. 예전에 서천에서 가족 모임을 하고 집으로 갈 때, 너무 졸려서 잠시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긴 게 아마 가장 긴 거리였을 거다. 그냥 불안하다. 아내가 못 해서 ㅇ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불혹을 바라보는 나에게 통화할 때마다 ‘운전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엄마의 심정과 같은 걸까. 참고로 엄마는 아예 면허도 없다.
앞으로 종종 갈 일이 생길 지도 모르니 연습하는 차원에서 아내에게 단독 장거리를 맡겼다. 이게 장거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내에게 고속도로 운전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을 귀가 아프도록 알려줬다.
“여보. 큰 차가 있으면 앞에도 뒤에도 있지 말고 그냥 피해. 가능하면 피해. 피하는 게 불가능하면 무리할 필요는 없지만 가능하면 피해. 큰 차가 아니어도 뭔가 싣고 가는 차가 있으면 가까이 있으면 안 돼. 천천히 가고. 빠르게 가지 말고. 또 고속도로에서 나갈 때 지나쳐도 되니까 괜히 급히 나가려고 하지 말고. 지나치면 그냥 조금 돌아가면 되니까 절대로 무리하게 나가려고 하면 안 돼. 톨게이트 나갈 때도 하이패스 차로로 안 가도 상관없으니까 무리하게 차선 바꾸려고 하지 말고”
아내는 나의 걱정이 느껴진다며 웃었다. 위험한 걸로 따지면 내가 몇 배는 더 위험하게 운전을 할 거다. 아무리 양보 운전과 안전 운전이 최고라지만 경험이라는 걸 무시하기는 어려우니 고속도로 운전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아내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침에 함께 나왔다. 아내는 나를 시내에 내려 주고 아이들과 함께 떠났다. 아내가 집을 나서면서 얘기했다.
“기분이 이상하네. 이 집도 정이 들었나”
집도 동네도 익숙해지긴 했다. 정이 들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정이 들고 있다고는 말 할 수 있다. 아내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여보. 가는 거 좋은 거 맞지? 여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 맞지?”
“어. 맞아. 그냥 아침부터 너무 피곤해서 그래”
아내가 왠지 신이 나지 않는 것 같아서 여러 번 확인했다. 어쩌면 불나방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아내의 친구도 남편이 출장을 가서 없었고, 나도 없고. 아내 둘이서 아이 여섯을 봐야 하는 게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친구를 만난다는 기대가 희망 회로를 가동했다. 이사 오기 전에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150km는 코 앞이나 마찬가지다.
“소윤아, 시윤아, 서윤아. 잘 갔다 와. 엄마 말씀 잘 듣고. 이모 말씀 잘 듣고. 여보도 조심하고. 도착하면 연락해”
아내와 아이들을 보내고 난 혼자가 됐다. 친구 남편(이자 나의 지인이기도 한)이 있었다면 나도 갔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내는 무사히 도착했다. 한시름 놨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는 한참 걸었다. 바닷가를 따라 아주 오래 걸었다. 거의 한 시간 반을 넘게 걸었다. 나중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너무 고된 여정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풍경이 너무 좋았다. 바다만 보면, 바다에만 가면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게 너무 좋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과 가까이 살아도 여전히 도시와 아파트의 편리함을 그리워하는 나를 자주 발견하지만, 그래도 바다와 산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그냥 좋다. 풍경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오늘은 많이 찍었다. 사진 실력이 비천해서 내 동공에 비치는 것과 너무 괴리가 심한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내가 간 곳도 자연과 가까운, 아니 자연 속이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었다. 난 가 본 적 없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그랬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숲 놀이터에 갔다면서 전화를 했다.
“여보. 여기 너무 좋아. 진짜 너무 좋다”
“울산보다 좋아?”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진짜 여기도 너무 좋네?”
아내는 거제의 사진을, 난 울산의 사진을 서로 보냈다.
“우리 서로 자랑하는 중? 수도권 촌놈들”
콘크리트 건물 숲을 산책하는 삶에서, 바닷가를 산책하는 삶으로 바뀐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만족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거제의 풍경보다 아이들이 궁금했다. 보고 싶었다. 아내와 연락을 많이 주고 받지는 못했다. 아내에게 열 시가 다 돼서 메시지가 왔다.
“이제 애들 재움. 휴 빡세다 엄청”
“이 시간을 위해서 오늘을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엄청 늦은 퇴근이었지만, 이제 시작일 거다. 메시지로, 통화로, 영상 통화로만 연락하다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됐으니 나름 설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집에서 혼자 자는 건 처음이다. 어디서 잘 지 고민하고 있다. 원래 자던 침대에서 잘 지, 소파에서 잘 지, 아니면 아이들이 자는 침대에서 잘 지. 거실에 TV가 있었으면 소파에 누워서 TV 보다가 잤을 거다.
내일은 오랜만에 방해 없는 늦잠을 자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