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7(수)
아이들이 무척 일찍 일어났다. 서윤이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이미 깨어 있었던 것 같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람이 울리고 얼마 안 돼서 깼다. 어차피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춘 거니까 잠을 방해 받은 건 아니었지만 괜히 더 자고 싶었다. 아침의 고요함을 활용하려고 일찍 일어나는 건데 고요는커녕 아주 소란스러웠다. 더 재우려고 해 봤지만 부질없었다.
아내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아내는 찜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여기 살 때 자주 먹었던 그 찜닭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난 아침에 먼저 나갔다. 아내가 점심시간에 맞춰서 나를 데리러 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전에 수요 예배에 다녀왔다고 했다. 덕분에 서윤이는 굉장히 이른 낮잠을 잤다.
찜닭은 순살로 시켰다. 뼈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꽤 크다. 월남쌈을 먹는데 누군가 옆에서 계속 월남쌈을 싸 준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순살 치킨은 그 정도의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특히 서윤이가 먹을 몫을 나눌 때 아주 좋다. 발라주는 과정이 사라짐으로 인해 식사 시간의 질이 조금 상승한다.
아내는 실망한 눈치였다. 나한테 계속
“찜닭이 원래 이렇게 단가?”
라고 물어봤다. 아내의 첫 질문에서 난 바로 느꼈다. 나와 아내 모두 엄청 배가 고팠기 때문에 그나마 좀 맛있게 먹었을 거다. 사실 난 그냥 찜닭 맛이었다. 아내는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이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아내가 아주 작은 철 수세미 부스러기 하나를 발견했다. 발견이라기 보다는 입에서 골라냈다. 아내는 여기서 완전히 마음을 접은 듯했다. 먹기 전에는 다 먹고 나면 새로 하나 포장해서 친구에게 준다고 했는데, 그것도 그냥 말아야겠다고 했다. 나중에 밤에 물어 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앞으로 거기 갈 일은 없을 거다.
아내와 다르게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모두 잘 먹었다. 순살이라 먹기도 편하고 달달한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게 맛있었나 보다. 서윤이도 장난을 안 치고 잘 먹었다. 요즘 자주 그러는 것처럼 시윤이는 배가 안 찼다면서 계속 밥이라도 더 달라고 했다.
한살림에 들러서 장도 봤다. 아이들은 함께 내리고 싶어 했지만 그냥 차에 있으라고 했다. 내가 너무 졸렸다. 아내가 장을 보는 동안 잠시 눈을 붙였다. 정말 잠깐이었지만 빠른 피로 해소에는 꽤 도움이 됐다. 사실 그렇게 피곤할 일이 없는데 매일 뭐가 그렇게 졸린지. 동네로 돌아올 때는 아내가 잤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으로 갔고 난 밖에 더 있었다.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니 저녁 무렵이 되니 해가 났다. 집에 가면 아이들과 동네 공원에 가 볼까 생각했다. 시윤이와 야구도 하고 애들 바람도 쐴 겸 나가 볼까 싶었다. 계속 고민은 했다. 아내는 집에서 쉬라고 하고 혼자 셋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괜찮을지 걱정이었다. 내가. 또 보나 마나 서윤이가 자기도 야구가 하고 싶다며 난리일 텐데 그게 통제 가능한 수준일지 짐작이 안 됐다. 그래도 일단 나가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아까 애들이랑 잠깐 둠뫼공원 갔는데”
아내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이미 공원에 들렀다고 했다. 물론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지금이니, 또 가도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두 손을 들어 환영했을 거다.
“얘들아. 아빠랑 둠뫼공원 또 갈까? 야구하러?”
라고 입이 안 떼졌다. 본능이었다. 입을 꾹 닫았다. ‘둠뫼공원에 가서 야구를 하려던 생각’은 하나님과 나만의 비밀이 됐다.
서윤이는 하루 종일 아기 변기에 오줌을 잘 쌌다고 했다. 팬티를 딱 한 번 갈아 입었다고 했다. 엄청난 발전이자 성장이었다. 이게 되나 싶을 정도로 진전이 없는, 아내에게 농담했던 것처럼 ‘강아지도 이것보단 잘 하겠는데?’ 정도의 상황이었는데 확 바뀌었다. 어제 급하게 산 아기 변기가 큰 몫을 했다. ‘내 변기’를 향한 애착과 친밀함 덕분에, 또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앉을 수 있는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했나 보다. 서윤이는 오줌을 한 번 쌀 때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랑을 했다.
“아빠아. 저 변기에 쉬 했더여어어어”
표정도 엄청 흐뭇했다. 그만큼 서윤이에게도 스트레스였다는 반증인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다른 게 미안한 게 아니라 오줌 쌌다는 소식에 너무 들리게 한숨을 쉬고 뻘쭘히 선 서윤이에게 차갑게 (다정하지 않게) 말한 게 미안했다. 서윤이도 다 알았을 텐데.
‘아, 엄마와 아빠는 내가 팬티에 쉬를 하면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러니까 변기에 오줌을 싸면 그렇게 좋아하지. 아무튼 아기 변기를 빠르게 마련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아내가 저녁을 나에게 부탁했다. 불고기용 고기가 있으니 그걸로 불고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내 요리는 야전의 요리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먹을 만한. 대신 누군가에게 대접할 만한 건 아니고 사랑이 넘치는 우리 가족끼리 먹을 만한.
아내는 불고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전골, 스키야키처럼 됐다. 아내는 좋아했다. 양배추, 양파, 버섯 등의 야채를 듬뿍 넣었다. 아내는 무슨 음식이든 야채가 많은 걸 좋아한다. 아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가 많이 고프지도 않았고 아내처럼 좋아하는 맛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다 먹기는 했지만 볶음밥을 먹을 때처럼 끊임없는 극찬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늘도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둘이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내가 먼저 둘이 들어가서 씻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귀찮았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좀 바닥에 뻗고 싶었다. 서윤이는 아내가 데리고 가서 씻겼다.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건 각오를 했지만 진짜 오래 걸렸다.
‘아직도 안 나오나?’
라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 정도로 한참 씻고 나왔다. 중간에 둘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걸 보면 장난도 많이 쳤나 보다. 그래도 잠시나마 한량처럼 바닥에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제안을 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자녀가 알아서 씻는 때가 오면 퇴근 이후의 삶이 무척 편해진다고 했던 어느 직장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편해졌다는 건 그만큼 자녀가 자랐다는 거고 자랐다는 건 언제나 감사와 아쉬움을 동시에 유발한다. 특히 요즘 소윤이를 볼 때 그렇다. 그럼 애틋하게 더 많이, 부지런히 씻겨 주고 그래야 하는데 그 순간에는 그게 안 된다. 다 지나고 여유로운 밤이나 돼야 이런 생각을 한다.
소윤이를 씻겨 줄 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은 육신의 안위를 쫓는 어리석은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