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6(화)
분명히 아내와 침대에 누워서 잤는데 새벽에 깼을 때는 거실 바닥이었다. 기억은 없었다. 다시 침대에 누우려고 갔더니 소윤이가 누워 있었다. 소윤이가 아내와 나의 틈을 비집고 들어 오니까 불편해서 거실로 나온 건지, 아니면 내가 먼저 거실에 나와 있어서 소윤이가 내 자리로 간 건지 궁금했다. 아무튼 다시 침대로 가서 소윤이를 가운데로 조금 옮기고 그 옆에 누웠다. 소윤이를 사이에 두고 자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시 자다 깼을 때는 아내가 없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거실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어제 소파가 들어왔는데 새 소파가 너무 좋았나. 아내도 나도 편한 침대를 두고 소파로 향했다.
오전에는 이런저런 일을 처리 하느라 시간을 썼다. 일단 차를 고쳤다.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다는 간단한 문제라고 해서 금방 고쳤다. 그러고 나서는 식기 세척기 수리를 받았다. 사실 벌써 몇 번 받았는데 계속 해결되지 않아서 다시 부른 거였다. 아내가 나도 같이 있어 주면 좋겠다고 해서 기사님 오시는 시간에 맞춰서 집으로 왔다. 새로운 부품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오후에 온다고 했다. 그때 다시 오신다고 했다.
서윤이는 여전히 치열하게 배변 훈련을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내와 나에게만 치열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서윤이도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른다. 팬티에 오줌이나 똥을 싸면 엄마와 아빠가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챘을지도 모르고, 침대나 소파에는 못 올라가지 못하게 하니까 뭔가 잘못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잠깐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몇 번이 오줌을 쌌다. 갈아입히자마자 싸기도 했고, 똥도 쌌고. 난 아직 너무 이른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내는 소윤이도 일주일 동안은 아예 진전이 없었다면서 계속 해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대단하다 싶었다. 난 잠깐 잠깐 겪는 것도 무척 힘들던데.
얼마 전에 시윤이가, 공부하던 한글 교재의 일정 단계를 모두 마쳤다고 했다. 시윤이가 그런 걸 막 드러내며 표현하지는 않지만 아내와 나의 눈에는 무척 뿌듯해 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게 보였다. 아빠에게,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소식을 전했다. 아내가 기념으로 선물도 사 주면 좋겠다고 했고, 시윤이에게 물어 보기 전에 혼자 생각하기로는 야구 글러브는 어떨까 싶었다. 시윤이가 요즘 야구나 축구를 해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기도 했고 아들과의 캐치볼은 나의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시윤이에게 물어봤다.
“시윤아. 시윤이 한글 다 단계 다 마쳤다고 했잖아”
“네”
“그래서 선물을 사 주려고 하는데 혹시 뭐 받고 싶은 거 있어?”
“음, 잠깐만여”
“응. 천천히 생각해 봐”
“저는 글러브. 글러브 받고 싶어여”
이렇게 마음이 통하다니.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게 같은 제품이면 조금 더 싸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선물의 맛’은 떨어진다. 오후에 일하러 나갔다가 마트에 들러서 바로 시윤이 선물을 샀다. 글러브와 배트, 공을 모두 샀다. 받는 시윤이보다 주는 내가 더 설렜다.
서윤이 선물도 샀다. 중고 거래로 유아용 좌변기를 하나 샀다. 무척 싸게. ‘자기 변기’가 있으면 조금이나마 애착도 가지고 훈련에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빠르게 마련했다. 소윤이 때 썼던 다이소 좌변기를 사려고 했는데 그건 이제 생산이 안 되는지 어느 매장에도 재고가 없었다. 덕분에 아주 귀여운 캐릭터 변기를 마련하게 됐다. 서윤이도 왠지 더 좋아할 것 같았다.
소윤이만 선물이 없었지만 이제 소윤이는 이런 상황을 모두 이해할 거라고 믿었다. 퇴근하고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선물을 주면서 소윤이에게
“소윤아. 괜찮지?”
라고 물어봤는데 소윤이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동생들의 신이 난 모습을 흐뭇하게 봤다.
아동용 글러브였지만 아직 시윤이에게는 좀 컸다. 오히려 소윤이 손에 딱 맞았다. 시윤이가 글러브질을 좀 어려워 하긴 했지만 나중에 넓은 곳에 나가서 던지고, 치고 잡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서윤이도 좋아했다. 변기가 아니라 장난감으로 여기는 듯 여기저기 가지고 돌아다니려고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두어 번 정도 그 변기에 앉아서 오줌을 싸는 것도 성공했다. 아주 미미한 양이긴 했다. 보다 나아진 접근성과 편리성, 애착을 갖기에 부족함 없는 외관이 보다 수월한 배변 훈련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었다.
“혹시 퇴근하고 30분 정도 둠뫼공원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아님 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내가 그럼 모르는 듯했다. 전화를 해서 얘기를 해 줬더니 몰랐다고 했다. 공원에는 왜 데리고 가라고 한 거냐고 물어봤는데 답은 단순했다. 아이들이 너무 원한다고 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서 답답했나 보다. 사실 나도 비만 안 왔으면 바로 글러브와 배트를 가지고 나가고 싶었다.
“소윤아, 시윤아. 비가 와서 공원은 못 가는데”
“아빠. 그럼 어디라도 가자여. 드라이브라도 하자여”
정말 간절했나 보다. 저녁을 먹고 좀 쉬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아내에게 커피와 빵도 사다 줄 겸 차로 20-30분 걸리는 곳까지 갔다. 일부러 좀 멀리 갔다. 그래도 명색이 드라이브인데 10분 타고 끝나면 섭섭할 테니.
아내의 커피와 빵을 사고 나서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에도 들렀다. 아이들에게도 먹고 싶은 걸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아빠. 왜여?”
“아, 그냥. 그래도 나왔는데 진짜 차에만 앉아 있다가 가면 너무 서운하잖아”
소윤이와 시윤이는 고래밥, 서윤이는 뽀로로 과자를 골랐다. 소박하다 소박해. 다른 걸 골라도 어차피 다시 놓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경험으로 학습한 결과겠지만.
“아빠아. 이건 언제 먹어여어?”
“내일. 아침에 밥 먹고 나서”
잠깐의 드라이브로 나름대로 욕구가 해소됐는지 다들 기분이 좋았다. 아내도 커피와 빵에 모두 만족했다. 아내가 커피와 빵을 찾기 시작한 걸 보면 또 한층 적응이 됐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