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없는 것도 그렇게 맛있게 먹다니

22.08.21(주일)

by 어깨아빠

서윤이가 아침부터 어제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일단 짜증이 싹 사라졌다. 어제는 대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원활하고 교양 넘치는 의사 소통이 가능했다. 엄마에게서 잘 떨어지기도 했다. 어제는 아주 잠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용납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잠시 나갔다 오는 것도 흔쾌히 허락을 했다. 나에게도 잘 왔다. 어제는 아빠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먼저 와서 안기기도 하고 평소처럼 애교를 부렸다. 무엇보다 얼굴이 달라졌다. 어제 자기 전까지만 해도 경련해서 입원했을 때의 얼굴 같았는데 오늘은 원래의 동글동글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도 내심 ‘저러다 언제 또 안 좋아질지 모르니 마음을 놓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만 데리고 예배를 드리러 갔다. 서윤이도 가고 싶다고 했지만 잘 설득해서 집에 있도록 했다. 어제 같았으면 씨알도 안 먹혔을 거다. 그냥 울고 소리 지르고 그랬을 텐데 이런 설득이 먹히는 것도 나아졌다는 증거였다. 대신 서윤이를 위한 선물로 케이크를 사 오기로 했다. 뭘 먹고 싶냐고 했더니 서윤이가 케이크를 말했다.


“케끼”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린이 예배가 일찍 끝났는지 중간에 예배당으로 올라와서


“전도사님이랑 먼저 밥 먹어도 돼여?”


라고 물어봤다. 예배를 마치고 식당으로 갔더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미 밥을 거의 다 먹고 난 뒤였다. 소윤이는 먼저 나갔고 시윤이도 조금 뒤에 누나를 따라서 나가려고 했는데 내가 붙잡았다.


“시윤아. 아빠 혼자 두고 가려고?”

“네? 저도 나갈래여”

“에이. 아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줘”

“왜여. 아빠 혼자 먹으면 돼져”

“아빠 심심하잖아. 아빠 혼자 놓고 가려고?”

“아이 진짜. 나가고 싶은데”


시윤이는 결국 날 기다려줬다. 소윤이였으면 오히려 화끈하게 ‘그래여. 기다릴게여’라고 했을 거다. 시윤이는 아마 나가라고 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을 거다. 고민하는 시윤이의 모습이 재밌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서둘러서 집으로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 더 집에 있고 싶어 했지만 혹시나 아내가 서윤이에게 고전하고 있을까 봐 지체하지 않고 돌아왔다. 다행히 서윤이는 계속 괜찮았다고 했다. 예배 드리다 중간에 잠들었는데 우리가 왔을 때도 여전히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잠든 지 꽤 됐을 때라 우리가 오고 나서 금방 잠에서 깼다. 자고 일어나서도 기분은 좋았다. 확실히 어제보다는 좋아졌다.


서윤이를 위한 케이크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준비했다. 마침 어린이 예배를 마치고 빵에다 초콜렛이나 과자 같은 걸로 꾸미는 활동을 했는데 그걸 서윤이 선물로 줬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직접 만든 케이크(는 아니지만)를 두 개나 받아 들고 기분이 무척 좋았다. 맛은 별로였는지 막상 열어서 먹었을 때는 몇 번 먹더니 안 먹겠다고 했다. 서윤이가 상상한 ‘생크림 케이크’와 많이 거리가 있는 ‘가짜 케이크’긴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다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가고 싶어 했다. 날씨가 너무 좋긴 했다. 해는 뜨거웠지만 바람이 너무 시원하게 불었다. 이렇게 여름이 가 버리는 것 같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당장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나도 나가고 싶긴 했지만 서윤이를 데리고 나가는 건 아직 무리였다. 그럼 서윤이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걸 서윤이가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가지 않을 건 아니었지만 서윤이에게 어떻게 입을 떼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서윤아. 언니랑 오빠랑 아빠는 잠깐 나갔다 올게. 알았지?”


그냥 정공법을 택했다. 당연히 서윤이는 자기도 가고 싶다면서 울먹거렸다. 그래도 잘 설득했고 이번에도 결국 받아들였다. 울지 않고 아주 기꺼이. 신기했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선물을 사 오기로 했다.


“서윤아. 아빠가 오면서 또 선물 사 올까? 비요뜨 알지? 요거트. 그거 사 올까?”

“비요뜨?”

“어. 비요뜨. 어때?”

“좋아여”


야구 글러브와 배트, 공, 잠자리채,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를 모두 챙겨서 차에 탔다. 서윤이가 현관에서는 다소 슬픈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했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했는지 베란다에 서서 차에 타는 우리에게 환하게 인사를 건넸다.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 가기로 했다. 거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좋은 곳이 있다고 했다. 정말 괜찮았다. 크기도 적당하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다가 자전거도 타다가 캐치볼도 하다가 방망이도 휘두르다가 잠자리도 잡다가 그렇게 놀았다. 한 두어 시간 놀았다.


중간에 서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아. 어디에여어?”


“아빠? 아 아빠는 지금 언니랑 오빠랑 놀고 있지. 서윤이도 나중에 다 나으면 여기 같이 와서 킥보드 재밌게 타자?”


아내가 끼어들어서 말을 했다.


“아빠. 지금 서윤이는 아빠랑 언니랑 오빠가 마트에 간 줄 알고 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놀러 간 게 아니라 마트에 간 거라고 알고 있었다고 했다. 아내 말로는 마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서윤이가 울먹거리는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아빠아. 지금 킥보드 타고 있떠여어?”

“아, 킥보드는 아니고 그냥 언니, 오빠랑 같이 있어”

“아빠. 저도 나중에 거기 마트 가면 킥보드 타자여어”

“아 서윤아. 마트에서는 킥보드를 못 타고 나중에 서윤이도 여기 같이 오자?”

“아빠아. 지금 어딘데여어?”

“아 지금 언니랑 오빠랑 같이 있어”

“뭐하고 있떠여어?”


어떻게든 수습을 해 보려고 했는데 언니를 닮아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서윤이는 여러 단서를 가지고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했다. 뭐 대충 얼버무리는 것으로 통화를 마치기는 했다.


아내가 저녁을 밖에서 먹자고 했다. 잠시 헤어졌다 만났더니 서윤이 얼굴이 더 정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하는 말이나 행동을 봐도 이제 아프기 전과 완전히 똑같았다. 어제가 제일 아프고 힘들었나 보다. 그래도 이렇게 마무리 돼서 정말 다행이다.


저녁은 동네에 있는 프랜차이즈 파스타 가게에서 먹었는데,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맛이 없을 수도 있나 싶은 곳이었다. 첫 숟가락을 뜨자마자 ‘이거 뭐지?’ 싶었는데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웬만하면 맛있게 잘 먹는데 도저히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이런 곳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이들은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었다. 내가 거의 안 먹었는데도, 오늘도 양이 아직 안 찼다면서 더 없냐고 물을 정도로 잘 먹었다. 이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집으로 오면서 과일과 빵을 좀 샀다. 서윤이에게 사 주기로 한 비요뜨도 샀다. 배가 안 찼다는 아이들을 위해 복숭아와 사과를 좀 깎아줬다.


“아빠. 빵은여?”

“일단 과일 먹고 그래도 배가 고프면 그때 먹어”


과일 먹고 나면 배가 좀 부르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빠. 빵도 주세여”


성장기 아이들 키우면 다 이런 건가. 그래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걸 보면 속이 다 시원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묵은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다. 늘 느끼지만, 진짜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는 기분’이기도 하고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다. 요즘 정말 무서운 기세로 먹는다.


애들 재울 때가 되니 내가 너무 피곤했다. 오늘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샤워를 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 아내가 서윤이 씻기는 것을 비롯해서 아이들 재울 준비를 도맡았다. 난 꿀을 한 양동이 부은 듯 달콤한 잠을 잤다. 아이들이 다 마치고 방에 들어갈 때쯤 일어났다.


다들 금방 잠들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중간에 꼭 한 번씩 화장실을 가겠다며 나오던 소윤이와 시윤이도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 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어제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며칠 된 줄 알았는데 고작해야 하루였구나. 하루 만에 서윤이가 이렇게 정상으로 돌아와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