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2(월)
어제도 자기 전에 침대 옆에 이불을 하나 깔았다. 새벽에 서윤이가 깨서 오면 침대로 올라오지 말고 거기서 자라는 의미였다. 요즘 자주 깔아 둔다. 새벽에 화장실 가느라 잠시 깼는데 서윤이 대신 시윤이가 거기 누워서 자고 있었다. 아이들 옆에서 자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2층에서 자는 소윤이 옆에 누울까 하다가 너무 좁을 것 같아서 바닥에 있는 서윤이 옆에 누웠다.
서윤이 옆에 누운 게 실수였다. 매트리스가 너무 작아서 잠자리가 영 불편했다. 자녀들끼리 따로 자고 난 뒤로 서윤이 옆에서 자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늘 유독 더 불편했다. 제대로 잠을 못 이뤘다. 아이들도 엄청 이른 시간부터 일어났다. 서윤이는 일어나자마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짜증의 연속이었다. 마치 그저께, 아팠을 때처럼 숨을 쉬듯 짜증을 냈다. 그래도 어떻게든 눈을 붙여 보려고,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거실의 상황을 외면하고 누워 있었지만 결국 잠들지 못했다. 다행히 내가 일어날 때 쯤에는 서윤이의 짜증이 좀 잦아들었다. 아내는 아침부터 진을 많이 빼서 힘들어 보였다.
아이들의 아침은 숭늉이었다. 어제 솥에다 밥을 했는데 누룽지가 좀 만들어졌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줬다. 얼핏 보면 맨밥에 깻잎장아찌 하나 놓고 먹는 모습이었지만, 엄연히 숭늉이었다. 숭늉이나 맨밥이나 뭐가 다를까 싶지만, 풍미가 다르니까. 무엇보다 아이들이 숭늉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집에서 나왔는데도 잠이 안 깨서 한참 동안 애를 먹었다. 일찍 일어난 게 문제가 아니라 (생각해 보면 원래 기상 시간과 비교해서 더 빠른 것도 아니긴 하다) 어제 너무 늦게 잔 게 문제였다. 어제만 늦게 잔 게 아니라 그 전날에도 늦게 잔 게 더 문제였고. 아이들 잘 때는 고사하고 지금보다 두세 시간만 일찍 자도 아침이 훨씬 개운할 거다. 아이들 탓을 할 필요가 없다.
서윤이의 안쪽 허벅지에 난 두드러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피부과에 한 번, 소아과에 한 번 갔는데 진단이 비슷했다.
‘단순 접촉성 피부염이고 심각한 것도 아니고 약 발라 주고 보습 잘 해 줘야 한다’
먹는 약도 처방을 받기는 했는데 안 먹였다. 바르는 약만 열심히 발랐는데 잠깐 나아지는 듯하더니 이번에 감기 증상을 겪으면서 다시 심해졌다. 다행히 서윤이가 많이 괴로워 하거나 심하게 긁지는 않지만, 꽤 넓은 부위에 울긋불긋하게 올라온 걸 보면 마음이 심란하다. 주변 사람들이 추천(?)해 준 소아과에 가 보기로 했다. 차로 40분 이상을 가야 해서 고정으로 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혹시나 명쾌한 해답이 나올까 싶어서 가 보기로 했다.
아내는 점심 시간 쯤 나가서 계속 밖에 있었다고 했다. 점심도 밖에서 먹고, 산책도 하고, 공원에서 놀기도 하고. 꽤 더운 날씨에 아이 셋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활보하느라 오늘도 적잖이 체력을 썼을 거다. 아니, 어쩌면 매일매일 가진 체력보다 많은 체력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내 시간에 맞춰서 내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시윤이는 자고 있었다. 저녁을 코 앞에 둔 시간이었으니 매우 늦은 낮잠이었지만, 아이들을 따로 재우고 난 뒤로는 늦은 낮잠을 향한 부담이 다소 줄었다. 그게 서윤이라면 약간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병원에 가는 동안 서윤이가 막 울고 소리를 질렀다. 카시트가 불편하다면서 팔을 뺐는데 그걸 다시 넣으라고 한 걸 트집 잡아서 그러고 있었다. 지난 번에 고친 에어컨이 또 고장이 나서 찬바람이 안 나왔으니 덥기도 더웠겠지만, 누가 봐도 생떼였다. 거제도에 갔을 때도 이런 식이었다고 했다. 앞으로 차에 타기만 하면 이럴까 봐 오늘은 이걸 꼭 훈육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계속 소리를 지르고 바르게 앉지 않는 서윤이에게
“강서윤. 소리는 지르지 마세요. 카시트에 바르게 앉으세요”
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고치지 않았다. 잠시 골목으로 들어가서 차를 세웠다. 눈치 빠른 서윤이는 잽싸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운전석에서 내려서 서윤이 쪽 문을 열었다.
“강서윤. 대답하세요”
“네. 아빠”
“카시트에서 팔 빼면 안 돼요”
“네. 아빠”
“이상한 자세로 앉는 것도 안 돼요”
“네. 아빠”
“소리도 지르고 신경질 내는 것도 안 돼요”
“네. 아빠”
“우는 건 괜찮지만 소리 지르고 짜증 내면 혼나요”
“네. 아빠”
그러고 나서는 또 그러지는 않았다.
병원은 아내와 서윤이만 갔다. 나와 소윤이, 시윤이는 근처에서 기다렸는데 산책할 만한 곳도 없었고 앉아 있을 만한 곳도 없었다. 어디에 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편의점이 하나 보였다. 마침 앞에 의자와 테이블도 있었다. 홈런볼 하나와 시원한 물을 사서 앉았다.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한 아내와 서윤이를 기다리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홈런볼 하나를 막 다 먹었을 때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역시나 비슷한 진단이었다.
‘접촉성 피부염이고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먹는 약을 쓸 수도 있지만 그러면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져서 안 좋다’
바르는 약을 처방 받았다. 그동안 발랐던 약 하고는 다른 약이긴 했는데 스테로이드 성분이 강력한 건 아니라고 하셨다. 심각한 게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면서도 시간이 약이라는 사실에 다소 허탈하기도 했다.
아내는 마트에 들르자고 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인터넷을 다시 설치했는데 그때 상품권을 받았다고 했다. 동네에는 큰 마트가 없으니 나온 김에 그것도 쓸 겸 들르자고 했다.
“여보? 든든한데?”
공짜로 생긴 상품권으로 필요한 걸 살 생각을 하니 든든하다는 뜻이었다. 마트에 도착해서 상품권 교환해 주는 곳으로 갔다. 무인 교환기에서 교환하라고 안내가 되어 있길래 거기에 바코드 번호를 입력했는데 교환이 되지 않았다. 판매처에 문의하라는 문구가 떴다. 아내는 고객센터로 가서 모바일로 받은 상품권을 보여줬다.
“아, 이거는 아마 백화점에서만 교환이 되는 거 같은데요? 보내주신 곳에서 백화점에서만 교환이 되는 걸로 보내주신 거 같은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배경 음악으로 깔리면 딱 좋았을 거다. 아내는 매우 허탈해 했다. 울산에는 그 상품권을 취급하는 백화점이 없다.
“뭐 부모님들한테 바꿔 달라고 하면 되지”
일단 저녁을 먹었다. 내가 너무 배가 고팠다. 점심을 대충 먹은 탓이었다. 아이들에게 정량 배급을 해 주고 나서, 평소와 다르게 내 몫을 오롯이 혼자 다 먹었다. 그래도 배가 안 찰 지경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아, 너무 배부르다’라고 얘기하지는 않았다. 시윤이는
“아빠. 돈까스 더 없어여?”
라고 물어봤다. 시윤아, 더 있었으면 아빠가 먹었을 거야.
밥을 먹고 나오면서 시윤이가
“어? 저거 내가 좋아하는 거다”
라면서 먹고 싶다는 티를 팍팍 냈다. 프레즐이었다. 나도 아내와 연애할 때 아내를 통해 입문했고, 아이들도 아내를 통해 입문한 그 프레즐이었다. 마침 나도 배가 덜 찼겠다 하나 사 줄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나나 아내의 몸에 들어가는 거야 뭐 그렇다 쳐도, 아직 좋은 걸 넣어줘야 할 아이들 몸에, 좋지도 않은 걸 넣어 줘 봐야 뭐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보고 나오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둘을 데리고 화장실에 갔고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계산대로 갔다. 우리(나와 소윤이, 시윤이)가 있는 쪽에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아내가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며 뭔가 망설이는 듯했다. 올라가는 입구가 어디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해서 이쪽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몸짓을 했는데도 뭔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건 순전히 나의 추측인데, 아내가 잠시 아까 그 프레즐을 사러 가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건 추정이다. 완전히 헛다리였을 가능성도 크다.
나는 매일 샤워를 하지만 아이들은 매일 샤워를 하지 않는다. ‘과도한(?) 야외 활동이 없는 날은 세면과 세수, 세족으로 대체’가 우리 집의 암묵적인 합의다. 아니, 우리 ‘집’이 아니라 아내와 나의 합의다. 오늘은 점심 시간부터 밖에 있었는데 ‘이 정도가 과도한 야외 활동이 아니면 도대체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마 이렇게 대답하겠지.
“그래도 어제 샤워 했으니까. 오늘 땀 그렇게 많이 안 흘렸잖아”
아내도 평소에 비하면 엄청 일찍 누웠다. 약간의 두통과 짙은 피로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 푹 쉬는 게 최고일 텐데 날이 밝으면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게 아내의 현실이다. 어두울 때 최대한 많이 자는 게 유일하면서도 최선의 해결책이다.
아내는 한살림에서 산 쌍화탕 한 첩과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