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3(화)
서윤이는 오늘도 아내와 나를 찾아왔다. ‘아내’를 찾아왔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테지만. 와서 순순히 바닥에 누운 게 아니라 아내를 깨웠다. 자기 옆에서 같이 자자고 하면서. 결국 아내는 바닥으로 내려가서 서윤이 옆에 누웠다. 시윤이는 2층으로 올라가서 누나 옆에서 잤다. 잠결에 올라간 건지 아니면 일부러 올라간 건지 나중에 물어봤는데, 자기 전에 올라갔다고 했다.
“아빠. 우리 맨날 엄청 늦게 잔다여어”
시윤이의 화법을 감안하면 진짜 ‘엄청 늦은’ 시간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눕자마자 자는 것도 아닐 거다. 꽤 오랜 시간 수다를 떨다가 자는 것 같았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몰라도, 어제는 2층에서 같이 자자는 얘기가 나왔을 거고. 둘이 자기에는 다소 좁았을 텐데 굳이 좁고 불편한 잠자리를 자처한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니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아침에 나가기 전에 아내에게 ‘오늘 차를 쓸 계획이 있냐’고 물었더니 ‘계획은 없다’고 하면서 차를 가지고 가도 된다고 했다. 당장 계획이 없더라도 갑자기 차를 가지고 나가고 싶거나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 번 더 물어봤다.
“여보. 차 쓸 거면 난 그냥 차 없이 가면 돼. 진짜 차 가지고 가도 돼?”
오히려 소윤이가 옆에서 ‘차는 두고 가라’고 성화였다. 오후에 어디라도 나갈 수 있으면 나가야 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차는 두고 나왔다. 난 내 한 몸이지만, 아내는 아이 셋까지 챙겨야 하니 나보다는 아내에게 더 필요했을 거다. 아니, 난 없어도 그만이었지만 아내에게는 아니었을 거다.
집으로 돌아올 때 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다행히 아주 조금씩 내렸다. 버스에서 막 내리려고 할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밖에 비 와?”
“어. 그러네”
“여보는 어디야?”
“나 이제 내려”
“진짜? 우산 있어?”
“아니, 없지”
“우리가 데리러 갈까?
“아니 괜찮아. 금방인데 뭐”
아내는 아이들도 나가고 싶어 하니 겸사겸사 우산을 가지고 나온다고 했다. 아내가 혼자 나오는 거라면 모를까 아이 셋과 함께 나와서 산책할 정도로 가벼운 비는 아니었다. 한사코 거절하고 집으로 갔다. 한 3분 정도 걸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모두 내복 차림이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조금씩 땀도 흘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치열하게 혹은 알차게 보낸 흔적이었다. 얼른 저녁 먹고 잠깐이라도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계속 비가 내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만 데리고 나가는 거라면 얼마든지 무시할 만한 비였지만, 서윤이도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게 문제였다. 아니 문제가 아니라 나갈 수가 없었다. 비 오는 날 유모차를 끄는 것만큼 번거롭고 힘든 일이 또 없다.
“아빠. 우리는 점심 좀 전에 먹었어여?”
“어? 좀 전에?”
“네. 엄청 늦게”
한 시간 쯤 전에 먹었다고 했다. 점심이 아니라 저녁이나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아내는 어제 산 고기로 제육볶음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아이들은 저녁을 먹지 않을 테니 고기는 나중에 쓰고 집에 있는 걸로 먹자고 했다.
“집에 있는 게 없는데? 여보?”
“그냥 김치랑 계란 넣고 김치볶음밥 만들면 되지 뭐”
냉장고에 남은 떡국 떡도 있었다. 그걸로는 아이들이 먹을 떡볶이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밥은 안 먹더라도 굶겨서 재울 수는 없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을 먹고 나서 잠시 비가 멈춘 걸 보더니 산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기상청 앱을 켜서 초단기 강수 예측을 봤는데, 곧 비가 내린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원하니까 차라도 타고 나갔다 올까 고민을 했다. 물론 속으로. 아내는 집에서 좀 쉬라고 하고 아이들만 데리고 나갔다 올까 싶었는데 아내가 먼저 입을 뗐다.
“얘들아. 오늘은 그냥 일찍 자자. 너네 요즘 맨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잖아. 오늘은 비도 오고 그러니까 일찍 자고 나중에 비 안 오는 날 또 산책 하자”
바로 고민을 접고 아이들을 씻겼다. 오늘은 내가 씻겼다. 알아서 씻으라고 하면 편하긴 한데 너무 오래 걸린다.
서윤이는 요즘 상대를 불문하고 불손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엄마나 아빠에게는 굉장히 짜증스럽고 떼를 쓴다면, 언니와 오빠에게는 빽빽 소리 지르면서 고집을 부린다. ‘초반’이라고 볼 수 있는 지금 바로 잡아 놔야 나중에 고생을 안 한다는 걸 여러 배움과 두 번의 선 경험을 통해 습득했다. 덕분에 요즘은 서윤이를 훈육하는 일도 많아졌다.
‘내가 내가’를 극복하는 것도 큰 과제다. 거의 모든 일에, 진짜 모든 일에 ‘내가 내가’를 외치며 엄마나 아빠의 손을 뿌리치는 서윤이와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기저귀 찍찍이 떼는 일, 로션 뚜껑 여는 일, 뭔가 비닐을 뜯는 일 등 아주 작고 사소한 일도 다 자기가 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여보. 너무 소윤이 같아”
“그러니까. 언니 어릴 때랑 똑같네”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고 한참 소파에 앉아 있다가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면서 나갔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더니 답답하다고 했다. 비도 오고 어두워서 걱정이 돼서 차라리 차를 타고 나갔다 오라고 할까 하다가, 비 오는 날에 운전하는 것도 위험하겠다 싶어서 그냥 있었다. 아내는 나간 지 5분 만에 돌아왔다.
“뭐야? 엄청 일찍 왔네?”
“비 떨어진다”
그 와중에 아내는 빵을 사 왔다. 이사 오기 전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프랜차이즈 빵을. 아직 마음에 맞는 빵 가게를 찾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런 곳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꿩 대신 닭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