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문방사우

22.08.24(수)

by 어깨아빠

서윤이는 어제도 우리 옆에서 잤다. 아내와 내가 막 자러 들어가려고 할 때 깨서 나왔다. 자비로운(?) 마음이 발동해서 서윤이에게 먼저 ‘엄마, 아빠와 함께 자겠냐’고 물어봤다. 서윤이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고 침대 옆에 이불을 펴 주고 거기 눕혔다. 황송하게도 안방 입성에 성공한 서윤이는 바닥에 혼자 눕는 것도 감사히 받아들였다.


새벽에는 내가 서윤이 옆으로 내려갔다. 조금 덥기도 했고 갑자기 서윤이의 손과 발이 고프기도 했다. 막상 옆에 누워서 손이나 발을 잡으려면 자세가 불편해지기도 하고 서윤이가 가만히 있지 않아서 오래 가지는 못한다. 그래도 잠시나마 서윤이의 살결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잠을 설치는 게 나름의 비용이라면 비용이다.


나와 아이들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성경책을 가지고 와서 폈다. 이런 장면을 찍어서 SNS에 올리면 이게 ‘홈스쿨의 아름다운 모습’이 되는 거다. 물론 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날은 성경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몸을 배배 꼬면서 투덜거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산만하고 부산스럽게 다른 데 신경을 쓰고 그러다 아침부터 얼굴을 붉히고. 이건 ‘홈스쿨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 되는 거고.


오늘은 그런 일이 없었다. 시윤이가 요즘 대충 읽는 습관(없는 조사를 넣는다든가, 있는 조사를 뺀다든가)이 생겼길래 그것만 좀 세세하게 짚어줬다. 내 나름대로는 시윤이의 기분을 잘 살폈다. 지나치게 세밀한 지적과 지도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밀착 지도의 효율이 떨어지지 않도록. 시윤이도 나름대로 잘 참는 게 느껴졌다.


아내와 아이들은 장도 보러 갔다 오고 동네 공원에서 놀기도 했다고 했다. 공원에서 놀고 온 것치고는 아이들이 굉장히 보송보송 했다.


“애들 다 씻었어?”

“어, 아까 씻었어”


배가 꽤 많이 고팠고 아내가 불고기 전골 같은 걸 만들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아이들이 이미 씻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반가웠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을까. 책을 읽어달라는 시윤이의 말에 흔쾌히 책을 받아들었다. 꽤 많은 분량을 읽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또 읽어달라고 했는데 역시나 제법 긴 분량을 기쁘게 읽었다. 중간에 시윤이의 질문이 쏟아졌는데 그것도 매우 성심성의껏 자세히 답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누운 지 두 시간이 다 되도록 안 자고 있다. 방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웬만하면 그냥 두고 있다. 아직은.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 주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지 못하는 대신,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재미와 추억이라도 만들라는 뜻에서. 다만 너무 매일 그러면 체력 회복에 문제가 생길 테니 아주 가끔씩 ‘오늘은 떠들지 말고 바로 자’라고 얘기하는 정도다. 오늘은 한참 두고 보다가 아내가 들어가서 아주 가볍게 ‘이제 자라’고 얘기했고, 그러고도 한참을 더 떠들었다. 역시나 한참 더 보다가 내’가 소윤아, 시윤아. 이제 얼른 자’라고 안내방송을 하듯 얘기했다. 그 뒤로는 조용해졌다. 진짜 자려고 하는 건지 아빠에게 들키지 않도록 소리를 낮춘 건지는 모르겠다.


아내는 요즘 밤마다 영어 공부(?)에 열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걸 미리 선행학습을 하는 건데 꽤 성실하다. 아까 시윤이에게 책 읽어줄 때 시윤이가 ‘문방사우’가 뭐냐고 물어봐서 대답을 해 줬는데 요즘 아내에게도 문방사우가 있다.


영어책, 휴대폰, 커피. 그리고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