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6(금)
오늘도 아내와 아이들의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집에서 나왔다. 현관을 나오기 전에 인사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또 인사한다. 베란다에 서서 아래에 있는 나를 향해
“아빠 안녀어어엉”
이라고 소리를 친다. 힘이 난다.
오늘은 아이들을 금방 다시 만났다. 지인 두 명이 책상을 직접 만들고 있는데 오늘 오후에 그 작업을 한다고 했다. 나도 함께 갔다. 각 집의 아내와 아이들도 나와서 만난다고 했다. 남편들은 목공실에, 아내와 아이들은 강변 공원에 있었다.
아내가 우리도 한 번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던 책상이었다. 내가 워낙 목공에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어서 안 하겠다고 했다. 다른 두 남편은 책상 만들기를 시작했고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이라고 했다. 책상을 만들기 위한 각 부분은 재단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 나무에 구멍을 뚫고 나사를 박고 하는 작업을 처음에는 그저 지켜봤다. 내 것도 아닌데 괜히 손을 댔다가 망치거나 틀어질까 봐 엄두를 못 냈다. 그러다 간단한 구멍 뚫기와 나사 박기를 도와 달라고 해서 그때부터 나도 움직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기름칠 하는 데 썼다. ‘스테인’이라고 하는 걸 잘라 놓은 원목에 발랐다. 이렇게 막 발라도 상관이 없는 건가 싶긴 했지만 다들 엄청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을 하는 느낌은 아니라 나도 점점 과감해졌다.
아내와 아이들은 바깥 공원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나와 나머지 두 남편)도 저녁 시간쯤 돼서 작업을 마쳤다. 아직 칠을 할 게 남았지만 일단 끝냈다. 옷에 묻은 톱밥 가루를 터는데 뭔가 보람이 느껴졌다. 육체 노동이 주는 성취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냥 ‘공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규모도 풍경도 환경도 너무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날씨까지 좋았다. 모두 자녀가 셋인 집이라 아이만 아홉이었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항상 괜찮다(?). 워낙 잘 놀기도 하고, 모두 오랜 시간 같은 가치관과 방향성으로 배움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라 말도 잘 듣는다.
아이들과 만나자마자 또 열심히 뛰었다. 아니, 많이 뛰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뛸 수 있도록 도와줬다. 축구도 했다. 소윤이는 아직 축구의 개념을 이해를 못하는 듯했다. 상대방 골대를 향해 공을 차거나 달리는 게 아니라, 공을 향해 달리고 가고 있는 방향 그대로 공을 찼다. 오히려 시윤이가 이해를 잘 하는 듯했다. 시윤이는 집념도 있었다. 몇 번이나 공을 뺏거나 막기도 했다. 말이 축구였지. 그냥 열심히 공 쫓아가서 차고 막고 그랬다.
저녁도 공원에서 먹었다. 그때 캠핑 의자에 앉았는데 마치 뜨거운 온탕에 들어갈 때 내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아니 저절로 난 건가.
“아이고오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앉는 거였다. 신음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했다.
아내들은 저녁을 안 먹었다. 자녀들을 남편들에게 맡기고 아내들끼리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다. 물론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었다. 남편들은 자녀들과 함께 교회로 갔다(남편 Y는 그 교회 목사님의 아들이다). 넓은 공간이 있어서 거기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Y가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 준다고 했다. 여러 영화가 후보로 등장했지만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작은 아씨들’, ‘샬롯의 거미줄’ 같은 영화는 소윤이가 보고 싶어 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싫다고 하는 자녀도 있었다. ‘나니아 연대기’, ‘천로역정’ 같은 영화는 다른 아이들이 보고 싶어 했지만 소윤이는 무서워서 못 보겠다고 했다. 결국 ‘이집트 왕자’가 선택됐다. 소윤이는 ‘이집트 왕자’를 본 적이 없었지만 일단 보겠다고 했다. 아마 계속 무서워서 못 보겠다고 하기가 미안했던 것 같다.
막 영화를 틀었는데 교회 청년들이 들어왔다. 모임이 있다고 했다. 교회의 게스트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많이 좁아지긴 했지만 아이들이 영화를 보기에는 충분했다. 아빠들이 마실 커피와 아이들과 함께 먹을 치킨도 샀다. 아이들이 치킨을 많이 먹지는 않았다. 대신 치킨 부스러기를 많이 먹었다. 마치 죠리퐁을 먹듯 한 손에 가득 움켜쥐고 입으로 털어 넣는 자녀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장 마지막까지 앉아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튀김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사실 맛있긴 했다.
영화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Y의 가족은 그 게스트룸에서 잤고, K와 나는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들은 아직 한참 더 놀다가 온다고 했다. 서윤이는 출발하기 전에 간단히 물로만 샤워를 했다. 오는 길에 잠들 것 같아서 그렇게라도 씻겼는데, 그러길 잘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곯아떨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씻기긴 해야 했는데 워낙 늦은 시간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몸만 씻자. 머리는 내일 감고. 미안해. 머리까지 말리면 너무 늦어질 거 같아서”
소윤이와 시윤이도 이제 ‘찝찝하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알고 느끼지만, 기꺼이 나를 이해했다.
아내는 엄청 늦게 돌아왔다. 아내가 돌아왔을 때 난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아니 졸음에서 수면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내가 오면서 오히려 잠이 좀 달아났다. 아내는 엄청 피곤해 보였다.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이 감기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