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성 게임의 허망함

22.08.28(주일)

by 어깨아빠

이사를 오고 나서는 주일 아침에도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교회가 차로 5분도 안 걸릴 만큼 가까워져서 그런가. 아무튼 다 준비하고도 시간이 남을 때가 많다. 꾸물거리지 말고 부지런히 먹고 준비해야 한다고 채근하는 건 똑같다. 아무리 여유가 많아도 방심은 곧 지각이니까.


서윤이가 지지난 주에 교회에 갔을 때는(지난주에는 아파서 못 갔다) 언니, 오빠와 함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면서 좀 칭얼댔다. 혹시나 오늘도 그러면 보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속으로 고민했는데 오늘은 또 순순히 아내와 나를 따라 올라왔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다가 지인의 가족과 함께 근처 대학교에 갔다. 가장 큰 이유는 ‘첫째들의 인라인스케이트 타기’였다. 둘째와 막내를 위해 야외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챙겼다. 공, 글러브, 배트, 킥보드, 자전거, 잠자리채. 오늘도 날이 뜨거웠다. 그늘이 아닌 곳에 있으면 여전히 한여름이었다. 아이들 여섯은 각자의 방법대로 잘 놀았다. 첫째들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운동장을 계속 돌았다. 둘째들은 자전거도 타고 킥보드도 타다가 마지막에는 야구에 심취했다. 아이들도 재밌었겠지만 나도 꽤 재밌었다. 그 더운 날씨에 불편한 옷까지 입고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서윤이도 오랜만에 킥보드를 탔는데, 이제 제법 요령이 생겼다. 손이 훨씬 덜 간다. 넓고 위험할 것이 없는 곳이라 혼자 타게 둬도 괜찮았다. 아내는 마음만 먹으면 가만히 앉아서 요양을 취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서 쉬는 아내를 본 소윤이도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했다.


“엄마가 제일 편하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내내 놀고 저녁도 함께 먹었다. 자녀가 셋인 집이 모였으니 두 가정이어도 대규모였다. 한참을 기다려서 자리를 잡았다. 지인의 막내가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서 다소 초조했지만(우리보다는 지인 부부가) 다행히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대로였다. 덕분에 굉장히 평화로운 저녁 식사시간이 됐다. 지인 부부가 무척 행복해 했다.


아내와 나는 제법 편안하게 저녁을 먹었다. 마침 아이들 쪽에 지인 부부가 앉아서 첫째와 둘째들을 챙기는 것도 지인 부부가 다 했다. 아내와 나는 서윤이만 챙겼는데 그마저도 처음에 돈까스와 밥을 좀 덜어 주고 나니 크게 챙길 게 없었다. 아니, 챙겨 주면 더 알차게 잘 먹겠지만 요즘은 잘 안 그런다. 우리 먹기 바쁘다. 서윤이도 이제 어느 정도는 알아서 잘 먹으니까.


바닷가도 걸었다. 아이들은 단계적으로 요청을 했다.


1단계 : 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다 / 안 돼

2단계 : 모래 놀이라도 하고 싶다 / 안 돼

3단계 : 모래라도 밟고 싶다 / 안 돼


모두 거절하고 바닷가를 걷는 것으로 합의(가 아니라 강제 결정)를 했다. 지인의 자녀들은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었다. 손으로 쭈욱 잡아 당기면 날개 같이 생긴 게 하늘로 솟구쳤다가 낙하산처럼 내려오는 장난감이었다. 혹시 팔고 있으면 자기 용돈을 내고 사겠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없었다. 대신 뽑기(달고나)를 했다. 산책을 할 때마다 뽑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는 핑계를 대고 지나치곤 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사람이 없으면 그때는 꼭 한 번 하자’라고 약속을 헸는데, 오늘 마침 한 사람도 없었다.


“이거 얼마에요?”

“한 판에 3,000원이요”


내가 어렸을 때는 50원이었는데 3,000원이라니. 미친듯한 단가 상승률에 말문이 막혔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지인의 첫째는 기꺼이 자기 용돈을 쓰겠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용돈을 집에 두고 왔다(사실 평소에 안 들고 다닌다). 둘은


“아빠. 집에 가서 드릴 테니까 일단 아빠가 내 주세요”


라며 당당하게 요구했다. 지인의 첫째는 자기가 다 쏘겠다고 했다. 본인을 포함해 네 명의 뽑기 요금을 내겠다는 말이었다. 용돈을 얼마나 모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많이 모았다고 해도 아까운 돈이었다. 1분도 안 될 뽑기의 극락이 지나가고 내일 아침이 되면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차용을 하기로 했다.


“소윤아, 시윤아. 다음에 00이 만나면 꼭 갚는 거야. 알았지?”


안 그래도 ‘대출 과잉’인 시대에 이 어린 시절부터 ‘쉬운 대출’을 경험하게 하다니. 다음부터는 이걸 좀 신경을 써야겠다. 내 돈이 아닌 돈을 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라고 말하지만 나도 대출 인생이네). 일단 오늘은 오며 가며 약속했던 것도 있고 하니 그냥 넘어갔다.


쪼르르 앉아서 뽑기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미리 얘기를 했다.


“얘들아. 근데 이거 실패했다고 막 울고 그러면 안 돼. 이거 성공하는 게 엄청 어려운 거야. 그러니까 하다가 실패했다고 울거나 그러면 안 돼. 만약에 부서지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야. 알았지?”


혹시나 부서지는 뽑기에 마음까지 부서져서 울고불고 난리가 날까 봐 미리 말을 했다. 지인의 자녀들이 먼저 받았다. 궁극의 비기인 ‘이쑤시개에 침 묻히기’는 코로나 시국이라 사용 금지라고 했다. 사실상 여기서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보면 된다. 지인의 두 아들은 각자 엄청 신중하게 이쑤시개로 뽑기를 뚫으려고 해 봤지만 어림없었다.


“아, 깨졌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뽑기가 부서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받았다.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소윤이는 첫 이쑤시개질을 쉽사리 하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그러다 아주 신중하게 틈 사이로 이쑤시개를 넣고 힘을 줬는데, 첫 이쑤시개질에 아작이 났다. 소윤이는 허무한 듯, 아쉬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시윤이는 어쩌다 보니 모양대로 잘 진행이 되다가, 당연히 박살이 났다.


“아, 아깝다. 꼬리만 잘 했으면 성공이었는데”


라고 시윤이는 믿고 있었다. 아이들이 아쉬움을 곱씹지 못하도록 일부러 소란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 아쉽다. 엄청 아깝다. 어쩔 수 없지 뭐. 뽑기 맛있게 먹으면 돼. 이거 엄청 맛있어”


다행히 다들 즐겁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아이들을 씻겼다.


“소윤아, 시윤아. 바로 화장실로 가서 옷 벗어”


약간 군대 문화인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게 모두를 위해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의 피로가 가득인데 괜히 시간을 끌어봤자 아이들에게 괜한 짜증만 낼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경험이 무수히도 많다. 대신 책 한 권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깔깔거리면서 뒤로 넘어갈 정도로. 보통 그 시간에는 낼 수 없는 기운을 동원해서 열심히, 재미있게, 성의 있게 읽었다. 덕분에 세 남매는 아주 기분 좋게 자리에 누웠다.


“이번 주말에 엄청 놀았네? 금요일부터?”

“그러니까. 피곤하다”


주말이 긴 느낌은 오랜만이네. 좋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