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3(토)
드디어 축구를 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거의 두 달 만이었다. 축구 없는 시간의 공백이 사라졌다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새롭게 적을 두고 축구할 곳을 찾은 거였다. 축구하는 시간이 토요일 오전 6시 30분이라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집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6시도 안 돼서 출발했다. 비도 꽤 많이 내렸다.
‘하아. 비도 오는데 이 아침부터 대체 내가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운동장에서 첫 경기를 뛰고 나니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너무 상쾌하고 후련했다. 폐가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일찍 일어나서 나오는 게 좀 괴롭기는 해도, 아내에게 육아를 떠넘기고 나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운 것도 좋았다. 다만, 축구를 하고 집에 오니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아침 겸 점심까지 먹었더니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잠이 쏟아졌다. 겨우 이겨내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만만하지 않을 거다. 적응의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인다. 서윤이 낮잠을 재우다가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들었다. 다행히 전화가 와서 금방 깼다. 아내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자고 있었다. 축구를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피곤한 시간이었나 보다.
낮에는 지인네 가족이 놀러 왔다. 자고 가기로 했다. 차를 타면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살아서 ‘굳이 왜? 내 집 두고?’라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지만, 다 이유가 있다. 사는 곳이 가까워지니 오히려 밤에 이야기 할 기회가 없었다. 아이들 재우고 늦은 밤까지 수다 떠는 재미가 쏠쏠한데, 집이 가까우니 ‘남의 집’에서 잘 이유가 사라진 거다. ‘애들 재우고 떠드는 시간’이 그리워서 굳이 모여 자기로 했다.
비가 와서 어디 나가지는 못했지만 자녀들은 집에서도 잘 놀았다. 놀다가 시간이 다 돼도 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어제 아내가 슬픔을 이기고 산 할인의 소고기였다. 집에서 두툼한 소고기를 굽는 건 오랜만이라 대충 기억을 더듬어 구웠는데 못 먹을 맛은 아니었다. 오히려 양이 너무 많아서 맛을 반감시킨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맛을 얻은 대신 바닥과 벽을 잃었다. 기름이 어마어마하게 튀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씻겼고 난 바닥과 벽을 씻겼다. 알코올 소독수를 뿌려가면서 최대한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다음에도 고기를 먹으려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의 120%를 발휘해서 치워야 한다. 오늘도 지인네 가족이 오는 게 아니었으면 벌어지기 힘들었을, 대대적인 고기 잔치였다. 기름기가 잔뜩 묻은 그릇도 수두룩하게 쌓였지만, 그건 식기 세척기가 있어서 두렵지 않았다.
아이들은 한 방에서 자겠다고 했다. 첫째들이 여덟 살이 돼서 한 침대에서 재우는 건 적절하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2층에서, 지인의 첫째와 둘째는 일층에서 자기로 했다. K(지인 가족의 남편, 아빠)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다고 했다. 꽤 한참 이야기를 했고 중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이야기가 끝나자 지인의 둘째가 엄마, 아빠와 자겠다면서 방에서 나왔다. 잠시 후에 혼자 남은 지인의 첫째도 나왔다. 결국 소윤이와 시윤이는 원래대로 1층과 2층에 각각, 지인네 가족은 작은 방에서 함께 잤다. 그렇게 함께 자게 돼서 신이 난다더니 이건 뭐지. 헤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건가.
우리 아이들은 모두 금방 잠들었는데 지인의 막내가 한참 걸렸다. 정말 한참 걸렸다. 낮잠을 안 자서 밤에는 금방 잘 줄 알았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잠투정도 없이 이곳저곳을 탐험하는 재미에 푹 빠졌는지 아예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꽤 오랫동안 어른 네 명 사이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랑을 받았다. 다만, 나에게는 오지 않았다. 나만 보면 눈을 피하거나 고개를 돌리고, 일부러 조금 가까이 가면 인상을 쓰면서 싫다는 의사 표현을 정확히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지인의 막내가 잠들었다. 그전에도 거실 귀퉁이에 앉아서 대화를 이어가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수다는 모두 잠든 후에 시작됐다. 고기를 든든히 먹어서 다들 배는 안 고팠다. 한치와 오징어가 한 마리씩 있어서 그걸 구웠는데 마요네즈가 더 빠른 속도로 없어졌다. 가끔 아이들이 뭔가 찍어 먹는 음식을 먹으면
“얘들아. 조금씩 찍어 먹어. 그건 그냥 맛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많이 찍을 필요 없어. 몸에 좋은 것도 아니고”
라고 말을 하는데, 언행불일치와 내로남불의 현장이었다. 참고로, 난 마요네즈를 싫어해서 한 번도 안 찍어 먹었다. 난 떳떳했다.
가까이 살게 되면서 엄청 자주 만났지만, 역시나 모두 재우고 나누는 수다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축구의 피로도 어느새 사라졌네. 내일이 되면 누적되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