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2(금)
장모님이 가시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쯤 아내와 장모님, 아이들과 만났다.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을 고려하면 저녁을 좀 일찍 먹어야 했다. 점심은 간단히 먹기로 했다. 빵집으로 갔다. 아내와 내가 옛날에 많이 갔던 곳이라고 했는데, 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빵은 맛있었다. 아내가 좋아할 만한 양질의 빵이 많았다. ‘간단히 먹기 위해’ 온 것치고는 꽤 많은 빵을 먹었다. 특히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누구 딸 아니랄까 봐 정말 열정적으로 먹었다. 내가 보기에는 빵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를 것 같았다.
장모님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주고 싶다고 하셨다. 시내에 있는 서점으로 갔다. 스티커북 같은 걸 사 주고 싶다고 하셨다. 아마 아내와 내가 동의만 했다면 아이들 눈이 뒤집힐 만큼 크고 좋은 선물(예를 들면, 고가의 장난감)을 사 주고 싶으셨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대안으로 선택하신 게 스티커북이었다. 뭐랄까. 실용성과 유익함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아이들의 쾌락(?)을 위한 선물이랄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러 책을 들춰보며 고민을 시작했다. 아내는 소윤이에게 가서 슬쩍 ‘그냥 책’을 권했다. 사실 이제 소윤이는 스티커북을 고를 만한 수준이 아니긴 하다. 소윤이도 흔쾌히 동의했다. 아내는 소윤이에게 추천할 만한 도서를 부지런히 찾았다. 대부분 품절이거나 절판이었다. 그나마 소설책이 재고가 좀 있었다. 아내와 나의 추천 도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소윤이에게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해 줬다. 소윤이는 재밌을 것 같다고 하기는 했지만, 다른 것도 일단 보겠다고 했다. 시윤이도 아직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의 진전이 없어 보였다. 의지와 열심을 내어서 고민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책을 살 건지 스티커북을 살 건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시윤아. 이제 골라야 돼.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계속 시윤이를 채근했다. 다 지나고 나니 ‘조금 넉넉하게 기다려 줄 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순간에는 좀 힘들기도 했다. 결국 시윤이는 그림책을 골랐다. 약간 쫓기듯 골랐다. 서윤이도 스티커북을 하나 얻었다. 소윤이도 결국에는 ‘만들기 책(?)’을 샀다. 아무튼 쾌락 도서(?)에 속하는 책이었다. 할머니가 사 주는 거니까 조금도 제지하지 않았다. 누리고 느껴야 할 때는 마음껏 느끼고 누리면 된다.
비가 계속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다가 세차게 내리다가를 반복했다. 장모님은 그저께, 어제 모두 딸과 손주를 위해 무언가를 계속 만들거나 치우느라 뭔가 제대로 구경 다운 구경을 못하셨다. ‘울산’에 있는 딸 집에 온 게 아니라, 울산에 사는 ‘딸’에게 온 느낌이었다.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압도적인 경치를 자랑하는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 거리는 꽤 멀었지만 갔다. 거기서 저녁으로 물회도 먹기로 했다.
카페의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대형 자본이 투입된, 특유의 멋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곳이었지만 경치는 좋았다. 주변의 카페가 대부분 그런 곳이었다. 바다의 풍경을 보는 시간과 장소에 값을 지불하는 곳이랄까.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서점에서 산 각자의 책을 보느라 생각보다 얌전히 있었다. 난 피로가 너무 몰려와서 막 졸았다.
저녁을 먹으러 간 곳에 아이들을 위한 음식은 전복죽 뿐이었다. 어제도 전복밥을 먹어서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안 좋은 음식을 또 먹이는 것도 아니고 누구는 비싸고 없어서 못 먹는 걸 연속으로 먹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물회와 회덮밥을 먹었다. 전복죽과 미역국에 후추가 잔뜩 들어가서 흠칫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잘 먹었다. 소윤이는 미역국을 잘 먹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전복죽을 잘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바로 공항으로 갔다. 공항의 규모도 엄청 작았고 사람도 없었다. 안의 풍경만 보면 기차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장모님이 탑승구에 들어가고 더 이상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공항이라는 걸 느꼈다. 거리를 생각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공항의 검색대가 주는 특유의 단절감이 있었다. 그곳에서 이별할 때 진해지는 슬픔이 있었고.
의외로 아이들은 즐겁게 웃으면서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아내도 덤덤해 보였지만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훔쳤다. 아마 장모님도 비행기가 뜨고 나서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가 마트에 가자고 했었다(공항에 가기 훨씬 전에). 슬픔에 잠기는 아내를 보니 ‘마트에 가서 장을 볼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마트는 내일 아침에 갈까? 여보 혼자 다녀오든지?”
“아니. 괜찮아. 가자”
“그래?”
“어. 지금 가야 할인하는 것도 있을 거 같고”
“슬픔보다 할인이 진하구나?”
만연한 슬픔 위로 잠시 미소가 스쳤다.
장을 보고 집에 왔는데, 엄청 깨끗했다. 구석구석 청결함과 깔끔함이 느껴졌다. 물론 장모님의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