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5(월)
오랜만에 아침부터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아니, 연락은 항상 하지만 전하는 소식이 오랜만이었다. 아침부터 짜증을 내고 다투는 자녀들 덕분에 아내의 목소리는 깊이 잠겨 있었다. 오전부터 시작된 아내의 고난의 육아는 점심 때까지 이어졌다.
“내가 집에서 애들이랑 밥 먹기 싫은 이유를 알겠네.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먹는데 몇 번을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서윤이도 응가하고”
고생하고 있다는 식상한 격려 말고는 달리 보탤 말이 없었다. 오랜만이라서 그랬는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오늘만큼은 아이들보다 아내가 더 답답해 보였다.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저녁 먹고 나서 포도와 무화과도 씻어줬다. 사실 둘 다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만큼 좋아한다. 아내는 포도도 무화과도 잘 먹지 않았다. 모든 것에 의욕을 상실한 사람처럼.
생각해 보니 아내 혼자 포도 한 송이를 다 먹었던 시절도 있었다. 신혼 때였는지 소윤이만 있을 때였는지는 모르겠다. 혼자 포도 한 송이를 엄청 맛있게 먹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끔 아이들이 자거나 없을 때, 오롯이 아내를 위한 과일을 준비해도 옛날처럼 먹지는 않는 거 같다. 그나마 빵은 아직도 옛날처럼 먹는 거 같기도 하고.
자기 전에 책을 읽어 줄 때, 열심과 성의를 다해 ‘웃기게’ 읽는 것으로 아이들을 향한 도리를 지켰다.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날씨가 아니었더라도 나가거나 다른 무언가를 할 여유는 없었다. 지난 주말에 그렇게 많이 놀았으니 안 그래도 되는데,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괜히 안쓰럽다.
비가 조금씩 굵어졌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이 가까워졌다고 했다. 내일 아침이 큰 고비라고 했다. 밤부터 벌써 뭔가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보.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아, 진짜? 어디?”
“자연드림 갔다 오려고”
“알았어. 운전 조심해. 천천히”
장 볼 게 있기도 했겠지만, 없었어도 나갔어야 했을 거다. 저러다 바람에 휩쓸려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뼈나 근육의 단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 몸이 흐물흐물한 느낌이었다. 아내는 꽤 한참 있다가 들어왔다. 친구와 함께 갔다 왔다고 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내가 보기에,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건 아내에게 가장 확실한 해소 방법이다. 그게 스트레스든 짜증이든 울화통이든 뭐든 간에 아무튼 뭔가 풀 때. 오늘은 나의 선물도 있었다. 얼마 전에 편의점에 갔더니 아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9월 한 달 동안 반값으로 판다고 했다. 저번에 사 오려고 했는데 집 앞 편의점에는 그 아이스크림이 없어서 못 사 왔다. 아내는 그걸 오늘 사 달라고 했다. 자기가 살 테니 돈만 보내라나 뭐라나. 흔쾌히 그러기로 했다.
내일 태풍이 심하다고 해서 나가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집에서 일을 할 계획이었다. 일은 할 예정이었지만 출근 부담이 사라졌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런 게 재택근무의 매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