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족없는 추석 연휴

22.09.09(금)

by 어깨아빠

포항에 사는 아내 친구 가족이 놀러 왔다. 집에 놀러 온 건 아니고 동네에. 아니, 동네도 아니지. 행정 구역 상 우리가 살고 있는 ‘시’로. 좋다는 얘기를 듣기만 하고 가 본 적은 없었던 어느 공원에서 만났다.


생각보다 날씨가 뜨거웠지만 다행히 곳곳에 그늘이 제법 있는 곳이었다. 이름은 공원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놀이터 때문에 가는 곳이었다. 보통의 놀이터 보다는 조금 특색이 있는 곳이었다. 어디를 가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짚라인도 있고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미끄럼틀도 있고. 그늘을 찾아서 앉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늘 밑에 앉는 게 가능했지만 나와 아내 친구의 남편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옆에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라인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기 좋도록 매끈한 바닥을 깔아 놓은 곳이었다. 아내 친구의 첫째는 딸이었고 일곱 살이었다. 소윤이와 함께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는데 엄청 빠르고 잘 탔다. 아마 소윤이가 꽤 당황했을 거다. 그동안 함께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사람은 대부분 자기보다 미숙했고 느렸다. 오늘도 동생이니까 당연히 자기가 더 잘 타고 빠를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추측이긴 하지만 적잖이 당황했을 거다. 심지어 아내 친구의 딸이 체력도 훨씬 좋았다. 더위에 취약한 소윤이는 한두 바퀴 돌면 쉬려고 앉았는데, 아내 친구의 딸은 언니에게 또 돌자면서 손을 잡아 끌었다.


시윤이하고는 야구를 했다. 오늘은 나와 둘이 한 거라 지난번처럼 재미있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재밌게 했다. 시윤이와 운동을 하면 오묘한 쾌감과 기대, 소망 같은 게 샘솟는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아들과 함께하는 삶을 상상하게 된다. 소윤이하고는 그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윤이하고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언젠가 시윤이와 함께 축구를 하러 가는 날이 온다면 (둘 다 정식 회원으로) 너무 좋을 거 같다. 옛 어른들이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면 느끼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저녁은 시내의 어느 분식집에서 먹었다. 아내 친구의 남편이 아는 곳이라고 했는데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우동과 김밥을 주로 먹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서 자다가 거의 다 먹었을 때 쯤 깼다. 남은 꼬마김밥을 줬는데 너무 잘 먹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남은 김밥은 한정적인데 서윤이의 식욕은 사그라들지 않고, 그렇다고 더 시키기에는 너무 많고. 서윤이는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얼렁뚱땅 정리를 하고 일어났다. 다행히 서윤이도 흐름에 잘 휩쓸려서 따라왔다.


카페에도 잠시 들렀다. 사서 나올 생각이었는데 마침 야외 자리가 나서 앉게 됐다. 처음 공원에 갔을 때만 해도 뜨거웠는데 해가 질 무렵이 되니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겉옷을 입었다. 카페로 가는 길에 서윤이 유모차를 내가 끌었는데 장난을 좀 친다고 유모차를 뒤로 확 젖혔다. 앞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게 해서 유모차를 확 기울인 거다. 평소에도 자주 하는 놀이(?)였고 서윤이도 항상 좋아했다. 오늘 처음으로 유모차를 놓쳤다. 젖혀진 유모차가 그대로 넘어갔고 서윤이도 뒤통수를 땅에 부딪혔다. 다행히 심하게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서윤이는 놀랐는지 무척 서럽게 울었다.


“서윤아. 미안. 괜찮아?”

“아니여”

“아파? 놀랐어?”

“놀라떠여”


처음이었다. 이런 류의 실수를 한 게. 평소에 자주 끌던 유모차가 아니어서 익숙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내 악력이 약해진 건지. 아무튼 다음부터는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윤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다. 우리는 잠시 중고서점에 들렀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원래 잡화점(이라고 하니 너무 촌스러워 보이지만, 상호를 밝히지 않고 기록하려니 이게 최선이네)에 가 보려고 했다. 어디라도 들렀다가 가기를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 간 곳이 서점이었다. 서윤이와 함께하는 서점이나 도서관은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지만, 일단 갔다. 유모차도 있고 아내와 내가 함께였고, 잠시 들를 계획이었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책을 한 권씩 샀다. 시윤이는 계속 자동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뒤적였다. 그런 책이 나쁜 건 아니지만 시윤이에게는 이제 그림책이 다소 수준이 안 맞는다. 그렇다고 글만 잔뜩 있는 책은 아직 너무 버거울 테고. 애매한 시기다.


“시윤아. 이건 어때? 시윤이가 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직접 읽어도 되고 아직 읽기에 너무 힘들면 아빠나 누나가 읽어줘도 되잖아. 시윤이가 좋아하는 동물 이야기인데”


시윤이는 그림책만 고집하지는 않았다. 내가 권한 책을 흔쾌히 집어 들었다. 귀가 밝고 눈치가 빠른 서윤이는 자기도 책을 살 거라고 했다. 집에 뽀로로 책(사실은 스티커북)이 있으니 그걸 보라고(?) 했다. 아직 뽀로로 책을 향한 애정이 남았는지,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지 않겠다고 했어도 결과는 똑같았겠지만.


아내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내일도 열심히 놀아야 했기 때문에 (특히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오늘은 좀 일찍 자라고 했다. 아내는 연휴인데 놀지 못하는 걸 아쉬워 했지만 (계속 놀고 있지만 여기서 아내의 ‘논다’는 건 애들 재워 놓고 밤에 나와 뭔가를 하는 것을 말하는 거다) 그래도 일찍 자라고 했다. 안 그러면 내일 늦게까지 노는 데 지장이 생길 테니.


말이 일찍이지 그래도 열한 시가 넘어서 들어갔다. 놀지 않는 날(일이나 육아를 해야 하는 날)에도 몸 상태 조절을 안 하는데 놀기 위해서 몸 관리를 하는 게 좀 웃기긴 했지만, 일은 아무리 쳐내도 쌓이지만 노는 건 쳐내면 돌아오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