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0(토)
지인의 집에서 하루를 자기로 했다. 덕분에 낮에는 계속 집에 있었다. 아, 참. 아침에 축구를 하러 갔다 왔구나. 추석 당일이었지만 축구 열망이 끓어오르는 이들이 있었나 보다. 난 풋살은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취소가 되었으면 했는데, 열정적인 누군가가 사람을 모았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공을 차고 왔다.
축구를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막 아침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아내가 사 놓은 밀푀유 나베 밀키트가 오늘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의리있는 아내는 나와 함께 먹으려고 아이들과 함께 먹지 않고 기다렸다. 아침 겸 점심인 시간이긴 했지만 어쨌든 첫 끼를 굉장히 그럴 듯하게 먹었다.
점심에는 파스타를 먹었다. 파스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서윤이는 일단 낮잠을 재우고, 그 사이에 내가 만들었다. 대접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지 몰라도 사랑이 넘치는 가족용으로는 그럭저럭 먹을 만한 수준이었다. 사실 내 요리의 대부분이 그렇다. 거기에 장모님이 사 주신 새우까지 있어서 재료 덕을 많이 봤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청 맛있게 먹었고 나와 아내도 아주 만족스럽게 먹었다. 의리의 파스타랄까.
요동치는 카페인 욕구를 캡슐 커피로 달래기는 했지만 ‘남이 타 주는 커피(돈 내고 마시는 맛있는 커피)’에 미치지는 못했다. 지인네 집에 가기 전에 잠시 집 근처 카페에 들러 커피를 샀다. 사실 난 커피 맛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메리카노는 뜨거운 커피를 마셔야 진짜 맛을 안다고 하는데 난 사계절 내내 주야장천 아이스만 먹으니까. 아내의 라떼를 먹어 보고 판단하는 편이다. 오늘 마셨던 커피는 나름 괜찮았다.
커피를 사서 바로 지인네 집으로 갔다. 그 뒤로는 딱히 육아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놀았다. 이제는 서윤이도 크게 손이 가지 않는 느낌이다. 지인의 막내(아직 걷지 못하는)와 비교하면 서윤이는 거의 ‘만능’에 가깝다. 배변훈련을 하고 있으니 거기에 조금 더 집중하면 일이 많아지겠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에 비하면 굉장히 느슨하게 하는 편이다. 서윤이를 배려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아내와 내가 번거로울 만한 상황을 피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느슨해졌다. 특히 오늘처럼 남의 집에 방문할 때는 더욱 그렇다. 상황과 조건을 불문하고 팬티를 입혀야 서윤이도 혼란스럽지 않을 텐데,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 자녀도, 지인의 자녀도 모두 재우고 퇴근을 얻은 시간이 저녁 아홉 시였다. 육아 퇴근 시간을 계확하는 건 아니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 잠정적으로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빠른 시간이었다. K(지인 부부의 남편)가 튀김을 해 준다고 했다. 작년 여름 휴가 때도 튀김을 해 준 적이 있다. 유해 화학 물질에 장기간 노출 되는 게 실제적으로 육체에 해롭다면, 기름 냄새에 장시간 노출되는 건 정신 건강에 해롭다고 본다. 작년 여름에도 꽤나 고생을 했던 기억(물론 내가 아니고 K)이 있는 터라 고마우면서도 걱정스러웠다. 그나마 아이들이 조금 빨리 잠든 게 동력이 됐다.
역시나 수다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새벽) 한 시까지만 얘기하자고 하고 자리를 정리했는데, 다들 잘 준비를 하고 나서 다시 거실에 앉았다. 마치 1차를 마치고 2차를 가는 회사원처럼. 두 시가 다 돼서 자리에 누웠다.
우리도 K의 가족도 완벽하게 현실 감각을 느끼지는 못했다.
“꼭 여름 휴가 온 것 같다”
이게 모두의 정서였다. 문득 문득 신기하다. 내가 이 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