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1(주일)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아이들은 모두 아침 식사를 마친 뒤였다. 평소에 비하면 꽤 늦은 시간까지 푹 잤는데도 예배 시간에는 졸았다. 피곤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자꾸 졸았다. 목사님께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아내가 예배 시간 내내 갖은 애를 썼지만 (아내가 손도 주물러 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소용이 없었다. 아내는 주보에 필담을 적었다.
“부부가 쌍으로 졸고 자빠졌네”
아내도 많이 졸았나 보다. 거기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무사히(?) 예배를 마치고 나서 조금 빠르게 교회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오후에 K의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러니까 K의 아내이자 아내의 친구인 K양(공교롭게도 부부의 이니셜이 모두 K)의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정리하자면 K네 가족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는데 우리 가족이 꼽사리(일기에 비속어를 사용하는 걸 선호하지 않지만, 이만큼 적확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표현을 찾지 못했다)를 낀 거다.
가뜩이나 공간 감각이 없는 나에게는, 도무지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곳으로 갔다. 산세와 경치가 수려한 곳이었다. 고개를 15도 정도만 들고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와아”
하는 감탄이 나올 만한 곳이었다.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되고 자연에 파묻힌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그런 풍경에 우리 가족이 있는 것보다 K의 가족 모임에 우리 가족이 함께한다는 게 더 어색했다. 그 누구도 우리를 ‘불청객’처럼 대하지는 않았지만 괜히 한 번씩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조금도 그런 게 없는 듯했다.
계곡에서도 한참을 놀았다. 내가 본 계곡 중에 가장 깨끗한 계곡이었다. 그렇게 맑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투명했다.
“너무 심하게 놀지는 마. 바지만 젖게 놀아. 다 젖으면 너무 추워”
라고 나도 K도 얘기하기는 했지만,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예상했다. 아예 물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게 아니고서는, 일단 발을 담그면 바지가 젖고, 바지가 젖으면 윗옷이 젖는 건 거스르기 어려운 순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네 명의 자녀(각 집의 막내는 엄마들과 함께 베이스 캠프에 머물렀다)는 모두 흠뻑 젖었다.
젖는 건 대수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도. 아무것도 없고 그저 돌과 물만 존재하는 계곡에서, 아이들은 꽤 긴 시간을 아주 즐겁게 놀았다. 특히 시윤이는 훨씬 더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소윤이는 여기서도 뭔가 규칙을 만들고 모으는 걸 선호했다면 시윤이는 그냥 막 뛰어다녔다. 아무튼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연을 누렸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그저 흐뭇했다.
어느새 저녁이었다. 점심도 워낙 풍성하게 먹어서 아직 저녁을 먹을 만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때가 되었으니 먹긴 해야 했다. 아이들에게는 소고기를 구워서 주고, 어른들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저녁이 되니 모기의 습격이 무척 거세서 다들 쫓기듯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서 짐을 정리했다.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았는데도 집에 오는 길에 잠이 쏟아졌다. 간신히 잠을 물리쳤다.
소윤이는 오랜만에 이를 뺐다. 그동안 아랫니만 몇 번 뺐는데 처음으로 윗니가 흔들렸다. 세 개의 이가 흔들렸는데 그 중에 하나를 먼저 뺐다. 언제나처럼 실을 묶고 하나, 둘, 셋을 센 다음 이마를 ‘빡’ 치는, 전통의 방법을 사용했다. 오늘은 울지 않았다. 나도 경험이 많아져서 최대한 뜸을 덜 들이고 순식간에 시술(?)했다. 지난번에는 쓸 데 없이 뜸을 들이다가 소윤이를 울렸다. 이가 빠지니 좀 어려 보였다. 여덟 살에게 ‘어려 보인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이제 완전히 사라진 거 같아서 아쉬운 ‘아기미’가 흐릿하게나마 살아난 듯한 느낌이랄까. 새로 난 아랫니가 고르지 않아서 좀 아쉬웠는데 윗니는 고르게 났으면 좋겠다.
자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물어봤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재밌었어?”
“네. 너무 재밌었어여”
“뭐가 제일 재밌었어?”
“계곡에서 논 것도 그렇고 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던 거 같다. 둘 다 만족도가 엄청 높았다. 아내와 나에게도 뭔가 따뜻한 시간이었다. 포근한 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거 같고. 자연도 누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정도 누리는 시간이었다.
갔다 와서도 우리가 여기 끼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