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없고 유모차도 없고

22.09.13(화)

by 어깨아빠

아내는 어제 무척 늦게 왔다. 아니 어제 온 게 아니라 오늘 온 셈이네. 새벽에 자다 깼을 때 아내는 안방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이불도 없이 굉장히 추운 듯 잔뜩 웅크리고. 다시 잠들었다가 깼을 때는 서윤이도 함께 누워 있었다. 아내는 침대에 자리가 없어서 (내가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누워서) 바닥에 누웠을 거고, 서윤이는 ‘웬일로 엄마가 바닥에 있네? 오예’이러면서 엄마 옆에 누웠을 거다.


오랜만에 차를 가지고 나갔다. 차가 없어진 아내와 아이들의 기동력이 상당히 많이 저하됐다. 사실상 기동력을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마 남은 기동력이라면 유모차였을 텐데 그 유모차도 차에 실려 있었다. 그걸 깜빡하고 그냥 들고 나왔다.


내내 집에 있던 아내는 늦은 오후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중간 지점인 어느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아내는 그때 깨달았다. 유모차가 없다는 걸. 사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아이들 없이 걸어서 가면 10분 정도면 충분히 가는 곳이니까. 다만 유모차가 없다는 게 아주 큰 변수였다. 서윤이는 아직 오래 걷는 걸 잘 못한다. 처음에는 혼자 걷겠다고 하다가도 금방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안아달라고 한다. 서윤이는 잠깐만 안아도 숨을 차게 만드는 무게까지 자랐다. 정신이 없어서 차근히 듣지는 못했지만 놀이터에서 친구네 집에 갈 때 엄청 고생스러웠다고 했다. 물론 대부분의 지분은 서윤이가 가지고 있었고.


아내는 친구네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집에 비지찌개 끓일 준비를 해 놨으니, 나는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다만 아내의 기동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였기 때문에 좀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 하필 낮에 지인에게 자전거를 하나 얻어서 그게 차에 실려 있었다. 퇴근하면서 바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싣느라 트렁크에 있던 조수석과 아이들 자리에 막 던져 놨다. 집에 들러서 차는 놓고 유모차만 가지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저녁을 일찍 먹고 날 기다리는 줄 알고 그랬는데 아내와 통화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다시 짐을 정리하고 차를 가지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갔다.


아이들은 아직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소윤이와 서윤이만 먹고 있었다. 소윤이는 금방 다 먹고 자리를 떴고 서윤이만 남았다. 뭐에 홀린 듯 서윤이의 남은 밥을 내가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 주고 있었다. 아마 나를 보자마자 ‘아빠아아아악. 아하하하학학학’ 하며 반기는 모습에 그랬나 보다. 아무튼 서윤이는 배가 찬 건지 아니면 밥이 먹기 싫었는지 아무튼 그다지 열심히 먹는 태도가 아니었는데 그나마 내가 떠 주니까 꾸역꾸역 먹었다.


나도 저녁을 먹게 됐다. 아내 친구의 남편은 퇴근이 늦어서 아직 오지 않았을 때였다. 가뜩이나 남편도 없이 혼자 아이 셋과 밤 시간의 육아를 해야 하는 집에 다섯 명이나 쳐들어가서(?) 메뚜기 떼처럼 밥과 반찬을 축 내는 게 조금 미안했다. 나를 의식한 건지, 냉동 돈까스의 양이 꽤 많아 보였다.


“아, 여보가 차 가지고 와서 좋네? 차 안 가지고 왔어도 밤바람 맞으면서 걷는 것도 좋았겠지만”


걸으면 15분, 차로는 5분 정도의 거리다. 걷나 차를 타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육아 퇴근이 임박한 시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내는 집에 와서 아이들을 모두 자기가 씻겼다. 내가 씻기겠다고 했는데도 괜찮다고 하면서 한 명씩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하긴, 나도 적극적이지 않긴 했다. 입으로만 ‘내가 씻길게’라고 했지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들어 보니, 아내는 집에서 나가기 전에도 꽤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역시나 아내는 언제나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보, 오늘 애들 다 씻겨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