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그 후

22.09.16(금)

by 어깨아빠

자면서도 아내의 상태가 어떤지 신경이 쓰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당연히 아내는 자고 있었다.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나 표정, 들리는 숨소리로 짐작해 보건대 잠을 잘 잔 듯했다. 안 깨고 깊이, 푹 잔 듯했다. 몸도 어제보다 훨씬 좋아졌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냥 매일 옆에 누워서 자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비과학적인 직감 같은 게 있다. 아내가 잠깐 깼다. 역시 예상대로 많이 괜찮아졌다고 했다. 대신 머리 전체가 아주 묵직하다고 했다. 그건 평소에도 자주 겪는 증상이었다. 아무튼 어제보다 나아진 건 당연하고 정상에 가까워진 것도 분명했다. 아내는 다시 잠들었다.


혼자 거실로 나왔는데 서윤이가 혼자 깨서 나왔다. 가끔 이렇게 서윤이만 혼자 깨서 나오면, 엄청 달달하다. 그 시간에 서윤이와 나누는 대화나 스킨십이 너무너무 치명적이고 매력적이다. 누가 보면 막내만 편애하는 거 아닌가라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녹아내린다. 내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시간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내 옆에 앉아서 장난을 치던 서윤이가 내 배를 만지며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아. 배가 많이 커졌네?”


글쎄. 그게 기준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커진 건지’ 아니면 ‘원래 컸는지’로 달라지겠지. 아주 조금씩이라도 어제보다 큰 오늘, 오늘보다 큰 내일의 규칙에 충실하고 있긴 하지. 내가 나가고 나면 혼자 깨어 있을 서윤이에게


“서윤아. 아빠 이제 출근해야 하니까 엄마 옆에 바닥에 가서 누워 있어”


라고 얘기했다. 서윤이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바닥에 누웠다. 일을 하다가 아내가 일어났을 시간 즈음에 다시 전화를 해서 아내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더 나빠지고 그런 건 없었다. 아이들도 협조적인 듯했다.


갑자기 일정이 변경돼서 점심 시간에 집에 들르게 됐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예고를 하지 않고 온 거라 다들 놀랐다.


“오잉? 아빠? 왜여? 왜 왔어여?”


시윤이는 아내와 공부를 하고 있었고, 소윤이와 서윤이는 놀고 있었다. 시윤이가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시장 바닥이었다. 거기에 갑작스럽게 아빠까지 등장했으니 시윤이의 집중이 더 분산됐다. 그 와중에 시윤이의 정신과 시선을 다시 책으로 이끌고 가르치려는 아내의 수고가 갸륵했다. 아내는 시윤이가 보이지 않게, 몇 번이나 어금니를 꽉 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참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시윤아. 집중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앞으로 계속 이럴 거야. 그런 상황에서도 집중하는 걸 잘 연습해 봐”


여섯 살 아이에게는 너무 앞서가는 조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집의 방향성은 이렇다. 처치홈스쿨을 하는 많은 가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고상한 독서실 환경을 조성하는 건 구조적으로 어려운 얘기일지 모른다. 그럴 거면 차라리 과감하게 포기하고 전쟁통 같은 상황에서도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게 낫다. 나에게 적합한 환경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습관 따위는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점심으로 볶음밥을 만들었다. 만만한 게 볶음밥이다. 아이들이 유난히 좋아하기도 하고. 밥솥에 남은 밥을 다 넣었는데도 각자 그릇에 덜고 나니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새삼 다섯 식구의 한 끼 식사량이 많다는 걸 느꼈다.


난 점심만 급히 먹고 다시 나왔다. 오후 일정을 소화하고 조금 빨리 퇴근했다. 함께 일하는 K(어제 반찬 만들어 준 아내 친구의 남편)와 다시 만났다. 각각 세 자녀를 동반하고. 아빠 둘이 아이 여섯을 데리고 바닷가를 산책했다. 각 집의 막내들은 유모차에 태웠고, 첫째와 둘째들은 어떻게든 달려나가려고 난리였다. 그만큼 신이 났다. 횡단보도에 서서 기다리는데 맞은 편 가게에 앉은 어떤 사람이 우리를 바라 보면서 이렇게 얘기했다(입 모양으로 추측).


“아빠 두 명이 애들을…”


우리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인데 좀 특별해 보였나. 저녁도 먹었다. 돈까스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수월했다. 아내들이 그립거나 빈 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막내들의 공이 컸다. 첫째와 둘째들은 아예 한 식탁에 앉혀서 알아서 먹도록 했고 막내들은 아빠 옆에 앉혔다. 서윤이도 잘 먹었고 K의 막내도 잘 먹었다. 덕분에 아빠들도 잘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교회로 갔다. 교회까지 꽤 걸어야 해서 그 자체가 나름의 산책이었다. 다들 그 산책만으로도 즐거워 했다.


아내는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로 오기로 했다. 예배가 시작되었지만 아내가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내가 데리고 있었으니 아내가 늦거나 못 오는 이유는 하나였다.


‘잠들었구나’


아내는 20-30분 늦게 왔다. 예배가 끝나고 물어보니 역시나 잠깐 잠들었다고 했다. 아내는 집에서 졸았고 난 교회에서 졸았다. 보통 밤에는 잘 안 조는데 오늘은 너무 졸았다. 뭔가 쉴 틈 없이 계속 움직인 게 피곤하긴 했나 보다.


아직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했다) 아내는 예배를 마치고 와서 일찍 누웠다. 나도 일찍 누우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