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이라니, 내가 골절이라니

22.09.17(토)

by 어깨아빠

새벽같이 일어났다. 축구를 하러 가려고. 심지어 일찍 가면 한 경기를 더 뛸 수 있어서 최대한 일찍 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일어날 때 굉장히 피곤했는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개운했다. 벌써 적응을 한 건가. 축구를 향한 열망이 다른 본능을 모두 잠재웠나.


마지막 경기 중반 쯤 공을 쫓아가다 넘어졌다.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땅을 짚었는데 엄청 아팠다. 당장은 왼손을 어떻게 하지 못 할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곧 죽을 것처럼 아픈 건 아니었다. 아무튼 꽤 심한 통증이기는 했다. 축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자동차의 창문 버튼을 못 눌렀다. 힘이 안 들어가고 아파서.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또 좀 괜찮아졌다.


아내와 아이들은 막 아침을 차려서 먹으려던 중이었다. 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할 때도 왼손을 쓰기는 어려웠다. 뭔가 심상치 않기는 했지만 ‘곧 나아지겠지 뭐’라고 생각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아내의 손목 보호대를 찼다. 통증이 막 더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정상일 때와 비교하면 심각하게 비정상이긴 했다.


아이들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교회로 갔다. 처치홈스쿨 개강 예배가 있었다. 예배를 다 드리고 점심으로 햄버거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아빠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들기로 했다. 아빠 선생님이라고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손목의 통증이 견딜 만했다. 힘을 쓰지 않으면 통증도 없었다. 가만히 두면 아프지는 않았다. 오른손으로 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최대한 거들기는 했지만 크게 도움은 안 됐다. 아내가 합류해서 내 몫을 대신했다.


햄버거를 다 만들어 갈 때부터 통증이 급격히 심해졌다. 그 와중에 오른손으로 햄버거를 들고 악착같이 먹었다. 먹을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당시의 내 모습이 다소 한심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햄버거를 다 먹고 나서는 통증이 극에 달했다. 가만히 있어도 아팠다. 손목은 물론이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주말이라 근처에 문을 연 정형외과는 딱 한 곳 뿐이었다. 전화를 해서 진료를 하는지 확인을 하고 병원으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를 내려 주고 갔다. 오늘 개강 예배에 오지 못한 선생님네 집에 햄버거를 전달하러 갔다.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일단 나 혼자 병원에 들어가서 진료를 받았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데 혼자 왼손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해서 직원 분의 도움을 받았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진료실에서 다시 부르지 않았다. 한참 후에 간호사 한 분이 오시더니


“강지훈 님. 오른손도 사진 한 번 찍을게요”


라고 하셨다. 뭔가 가벼운 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오른손 사진을 찍고 나서는 금방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하나씩 설명을 해 주셨다.


“음, 여기 보이시죠? 이게 주상골이라는 뼈예요. 타는 배 있죠? 그 배 모양이라고 해서 배 주자를 써서 주상골이라고 하는 건데 여기 보시면 뭔가 깨끗하지가 않죠? 골절이 의심이 돼요. 안 좋은 건 이 주상골이라는 뼈가 정형외과 의사들 사이에서 가장 안 붙는 뼈 세 가지 중 하나로 꼽혀요”


그 뒤에도 설명은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주상골이라는 뼈에 금이 갔거나 부러진 것 같은데 그건 CT를 찍어서 봐야 정확히 판단이 가능하다. 월요일에 큰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 봐야 하는데 아마 수술을 권할 거다. 잘 안 붙는 뼈다’


였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당황스러웠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딘가 금이 가거나 부러진 건. 일단 임시로 반깁스를 하고 진통제를 처방 받아서 나왔다. 햄버거 배달을 마친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막 진료실에서 나왔을 때 병원으로 왔다. 아내에게도 자세히 설명을 했다. 이때도 통증은 무척 심했다. 왼손을 어떻게 둬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잠이 쏟아졌다. 몸이 아프니까 잠이 오나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제 늦게 자고 오늘 일찍 일어나서 축구를 하고 왔으니, 졸린 게 당연했다. 손목이 멀쩡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통증이 조금 사라졌다. 진통 주사와 약 덕분인지 아니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적임 감소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아무튼 통증이 약해지니 그나마 좀 살 만했다.


통증이 약해지긴 했어도 아예 없어진 건 아니었다. 가만히 뒀을 때 덜 아픈 정도였을 뿐, 조금이라도 힘을 주려고 하면 바로 아팠다. 왼손으로 아무것도 못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왼손으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건, 대부분의 일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면, 서윤이의 기저귀를 갈아 주거나 뒤처리를 해 주는 것, 아이들을 안아 주는 것, 하다 못해 혼자 옷을 벗고 입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아내가 모든 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 상황’으로 귀결됐다.


이때까지도 마음이 착잡했다. 아내에게도 많이 미안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분주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수술을 하든 어떻게 하든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정상인’의 몫을 감당하고 싶었다. 아내는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그냥 여유를 가지라고 했다. 아내는 단 한마디도 염려하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방에서 자고 있을 때는 거실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사실적인 기록을 위해 밝히자면, 아이들이 막 뜨겁게 기도하고 그러지는 않았다고 했다. 주로 아내의 기도였고 오히려 서윤이는 자기도 허벅지에 두드러기가 났으니 그것도 기도해 달라고 했다나 뭐라나). 이러니 내가 ‘아내 의존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저녁을 먹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있었다. 아내는 정신력을 발휘해서 ‘나 홀로 주말 육아’를 씩씩하게 감당했다. 아이들 씻기는 것도 물론 아내의 몫이었다. 뭐라도 보탬이 되어 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식상한 소감이지만, 한 손을 못 쓰는 게 사람을 이토록 무능하게 만든다는 걸 실감했다.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좀 차분해 지면서 평화로워졌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태도와 자세도 결정했다. 아내가 함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통증도 낮보다는 더 가라앉았다. 아내와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할 정도로 기력이 회복됐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서 꽤 늦은 시간이 됐다.


아내 덕분에 굉장히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다. 아내는 내가 밤에 불편할 수 있으니 바닥에 누워서 자겠다고 했다. 괜찮으니 침대에서 자라고 해도 한사코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