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8(주일)
다행히 자고 일어나서 손목의 통증이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왼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동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일상의 전반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처럼 지내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다만 여전히 아내의 수고가 크긴 했다. 아니, 큰 정도가 아니라 내 몫의 95% 이상이 아내에게 넘어갔다. 왼손 사용이 불가능한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많은 일을 했다. 아주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그래도 어제보다는 뭔가를 많이 하려고 했다. 아내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 스스로를 위한 행동이었다. 사실 이 몸으로 아내를 도와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스스로 너무 무기력해졌다. 진짜 환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오른손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했다.
대표적인 게 운전이었다. 어제는 다 아내가 했다. 얼마든지 오른손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보. 괜찮아? 내가 해도 되는데”
“아, 괜찮아”
평소에도 대부분 핸들을 두 손으로 잡지 않는다. 그걸 비롯해서 유모차를 든다든지 가방을 든다든지 서윤이를 안는다든지 하는 것에 모두 내 오른손을 보탰다. 그랬더니 조금 쓸 모 있는 사람이 된 듯했다. 아, 그렇다. 어제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까 어찌나 쓸 모 없는 사람 같던지.
오늘도 예배 후 점심으로 수육이 나왔다. 어제 햄버거를 먹을 때처럼, 오른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가며 수육을 흡입했다. 축 늘어뜨린 왼팔이 굉장히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서윤이는 우리(아내와 나)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밥 먹을 때도, 밥 먹고 나서 잠시 쉴 때도 계속 함께 있었다. 한 번씩 언니와 오빠를 따라 놀러 가겠다고 했지만 잘 설득해서 우리 옆에 있게 했다. 서윤이는 시야에서 벗어난 곳으로 보내는 게 아직은 불안하다. 사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좀 그렇기는 하지만, 언제나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소윤이와 시윤이는 허락하게 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땀범벅이 되어서 돌아왔다.
오후 예배와 목장 모임까지 마치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 교회에서 나왔다. 태풍이 온다고 했다. 벌써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아내는 지난 며칠 간 커피를 못 마셨다면서 오늘은 꼭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했다. 누가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스스로 며칠 간 커피를 못 마셨는지를 꼼꼼하게 설명했다. 오늘 커피를 마셔야 하는 당위성을 입증하듯.
시내까지 나가기에는 바람이 생각보다 거셌다. 스산했다. 딱 이 표현이 정확하겠다. 하늘은 흐리면서 어둡고 바람은 엄청 세게 불었다. 바로 경보음이 울리면서 ‘대국민 재난 경보’ 같은 게 들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그냥 집 근처의 카페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난 당연히 사서 집으로 가자는 건 줄 알았는데 아내는 오랜만에 잠깐 앉았다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로 하고 카페로 갔는데, 사장님이 먼저 문을 열고 나오셨다.
“아, 저기 오늘은 태풍이 심해진다고 해서 영업을 마쳤어요. 문도 너무 세게 흔들리고 그래서요”
“아, 진짜요? 테이크아웃도 안 되나요?”
“아, 그럼 테이크아웃은 해 드릴게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라도 마실 수 있는 게. 사장님은 서비스라면서 디저트를 두 개나 주셨다. 집에 오니 이상한 날씨의 기운은 더 강해졌다. 일찌감치 창문을 모두 꽉 닫았다. 얼마 전 태풍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해서 괜히 겁이 나기도 했다.
저녁은 간단하게 주먹밥으로 먹였다. 내가 만들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하루 사이에 한 손으로 하는 일의 능숙도가 많이 향상됐다. 물이 닿는 일은 여전히 모두 아내의 몫이라 아이들 씻기는 건 아내가 맡았지만, 머리를 말리는 건 내가 할 수 있었다. 왼쪽 겨드랑이에 드라이기를 끼고 방향을 맞추면서 오른손으로 시윤이 머리를 털었다. 소윤이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드니까 아내가 했다. 샤워도 혼자 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담는 비닐봉지에 왼팔을 넣고 묶어서 방수 토시를 만들었다. 불편하기는 해도 혼자서 씻는 것도 가능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래 봐야 미봉책이었다. 결국 다 아내의 손을 거쳐야 했다. 어제보다 더 아내에게 미안했다. 앞으로도 꽤 그럴 걸 생각하니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