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입원전야

22.09.19(월)

by 어깨아빠

밤새 바람이 무척 세게 불고 재난 경보 문자가 여러 차례 왔다. 딱 봐도 엄청난 풍속이었다. ‘초속 28m/s는 가로수가 뽑힐 정도의 강한 바람입니다. 외출을 자제해 주십시오’ 라는 문자도 왔다. 평소였으면 그냥 집에 있으면 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오전에 진료 예약을 잡아놨다. 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이 많이 됐다. 워낙 바람이 세고 위험하다고 하니까 겁이 났다. 수시로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베란다에 나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여보.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러게. 어떻게 해야 되나”


속 편하게 내일 가도 됐지만 그러면 이후의 일정이 또 조금씩 늦어지는 게 싫었다. 막상 눈에 보이는 바깥 상황이 예보에서 말하는 것만큼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가기로 결정하고 택시를 불렀는데 계속 안 잡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한 대가 잡혔고 급히 준비해서 나갔다. 아내는 한 쪽 팔을 못 쓰는 남편을 혼자 보내는 게 영 안쓰럽다며 걱정을 했다.


“여보. 괜찮아. 걱정하지 마”


우산을 펴는 순간 바람이 우산을 접으려고 했다. 바람이 강력하긴 했다. 우산이 필요 없다더니 정말 그랬다. 이렇게 태풍이 강력하니 ‘혹시 의사 선생님이 안 나오시는 건 아닐까’, ‘병원에 사람이 없으니 바로 오늘 입원하고 수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대한민국은 달랐다. 병원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래도 미리 예약을 하고 간 거라 엄청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진료와 엑스레이, CT 촬영을 순서대로 마쳤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아, 일단 골절이 맞고요. 대신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수술도 간단하고 예후도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긴 하네요. 내일 입원하시고 수요일 오전에 수술하시면 됩니다”


바로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도 했다.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어차피 수술은 피하기 어려웠고 그나마 빠르게 일정이 잡혀서 다행이었다. 다 예상했던 일이니 놀랄 건 없었지만 아내는 문득 문득 ‘진짜 내일 입원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드는 듯했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아내의 입원과 수술을 세 번이나 경험했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출산할 때(시윤이는 자연분만이었지만). 아내는 처음이었다. 나도 엄청 오랜만이었다. 대학생 때 수술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왼팔이 아픈 게 은근히 체력을 갉아먹는 모양이었다. 한 것도 없었는데 엄청 피곤했다.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는데 서윤이와 거의 동시에 잠들었다. 깨는 건 서윤이가 훨씬 먼저 깼고, 난 한참을 더 자다가 일어났다. 시윤이가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지르는 걸 듣고 깼다. 아이들은 자석 블록을 하고 있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서로 다투고 있었다.


“얘들아. 자석 블록 통에 담아. 이제 우리 집에 자석 블록은 없어”


자석 블록을 꺼내기만 하면 다툼이 생겼다. 서로 양보하는 일이 없고 자꾸 싸우고 뺏고 그랬다. 강력한 훈육의 일환으로 자석 블록을 버릴 거라고 공포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불러서 세워 놓고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아내가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이들의 귀를 피해서 살짝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했다.


“여보. 근데 소윤이랑 시윤이는 좀 억울할지도 몰라. 서윤이가 워낙 얄밉게 뺏고 망가뜨리고 그랬거든”

“아, 그래?”


조금 미안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사과하고 자석 블록 폐기 정책은 수정되었다고 얘기를 해야겠다.


오후가 되니 태풍의 기세가 좀 잠잠해졌다. 오히려 해가 나고 날씨가 엄청 화창해졌다. 바람은 여전히 세게 불었지만 스산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바람도 쐴 겸 장을 보러 나갔다. 좀 멀리 갈까 하다가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갔다.


시윤이가 피자를 먹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에 먹었던 ‘그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치킨도 그때 함께 먹었던 곳에서 주문하려고 했는데, 치킨 가게도 피자 가게도 모두 휴무였다. 치킨과 피자를 먹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근처 시장에 가 보기로 했다. 바람을 쐬면서 구경도 하고 먹을 만한 게 있으면 사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떡볶이와 순대, 납작 만두, 튀김, 닭강정이 오늘의 저녁이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꽤 많이 남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 또한 착각이었다. 서윤이는 생각보다 닭강정을 엄청 많이 먹었고 시윤이는 생각보다 순대를 엄청 많이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생각보다 떡볶이도 잘 먹었다. 거의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저녁을 거의 다 먹었을 때 K 가족이 잠시 집에 들렀다. 한 30분 남짓 앉아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 시간을 아주 알차게, 꽉꽉 채워서 놀았다. 그 짧은 시간에 뛰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여행 계획도 세우고 그랬다. 헤어질 즈음에는 어김없이 이런 얘기가 나왔다.


“아, 소윤이랑 시윤이 오늘 우리 집에서 가서 자면 좋겠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수술하는 날, 아내가 병원에 오겠다고 했다.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 아이들을 잘 챙기라고 했지만 아내는 한사코 오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K네 집에 맡긴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날을 무척 기대했다. 아빠의 수술은 잊은 듯했다. 아니, 애초에 기억된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내일 내가 입원하는 게 전혀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혼자 보내는 게 영 마음이 안 좋다면서.


“여보. 괜찮아. 내일은 나 완전 쉬는 거야. 수술하고 나서야 아프겠지만 내일은 완전 쉬는 거지. 힘든 건 여보가 힘들지”


적어도 내일은 휴양이나 마찬가지다. 홀로 남아 아이 셋을 돌봐야 하는 아내가 걱정될 따름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지. 조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