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병원에

22.09.20(화)

by 어깨아빠

입원하는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나왔다. 병원에는 어제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그냥 진료를 받으러 왔으면 마음이 굉장히 심란했을지도 모른다.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어차피 입원해야 하니까 느긋했다. 조금 기다렸더니 어느 간호사 선생님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쭉 설명해 주셨다. 입원 수속은 한참 뒤였고 일단 피 검사와 심전도 검사, 흉부 엑스레이 촬영, 폐 기능 검사 등을 먼저 해야 했다.


“여보. 이제 가. 시간 한참 걸리겠네”

“어, 그래야겠다”


사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갔어도 되는데 아내는 못내 마음이 쓰였는지 굳이 내려서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얘들아. 잠깐 이리 와 봐. 우리 가기 전에 아빠 위해서 기도하고 가자”


병원 구석 의자에 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차례대로 나를 위해서 기도했고 아내가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여보. 누가 보면 뭐 엄청 큰 수술하는 줄 알겠네”


멋쩍어서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세상에 어떤 일도 당연한 건 없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일이어도 아무 탈 없이 지났으니 ‘작고 하찮은’ 일이 되는 거다. 아직 엉성한 아이들의 기도가, 심지어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는 서윤이의 기도도 소중하다. 그 기도가 모여서 ‘작고 하찮은’ 일을 만드는 거라고 믿는다. 진짜 나 혼자였으면,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니까 자꾸 가라고 하는 거지.


‘아빠 힘내세요’ 노래도 부르기는 했는데 다소 건성이긴 했다. 후렴만 불렀는데 그나마도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채로 불렀다. 떠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배웅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순서대로 여러 검사를 마치고 병실도 배정받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정말 환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환자가 아닌 건 아니지만.


병실을 배정받은 후에는 심장 초음파와 MRI를 찍는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 사이 팔에 링거도 꽂고 점심도 먹었다. 링거를 꽂아서 불편함이 가미되니 한층 환자의 느낌이 났다. 할 게 없으니 침대에 누웠더니 잠이 솔솔 왔다.


심장 초음파를 받을 때는 아내 생각이 났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마다 초음파로 콩이, 온이, 롬이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30분 동안의 촬영을 마치고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설명을 해 주셨다. 사실 설명은 아니었고 ‘별 이상 없으니 걱정 마시라’였다. 다 정상이라고 하셨다.


MRI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서윤이 생각이 많이 났다. 그 조그만 몸을 가지고 이 거대한 기계 안에서 굉음을 버텨냈던 게 참 기특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 누구든, 이 기계 안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참 신기한 건, 그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고막을 때려도 누워 있으니 잠이 왔다. MRI 촬영도 무사히 마쳤다. 결과는 못 들었다.


수술 동의서도 썼다. 아내가 출산할 때, 보호자의 자격으로 자주 들었던 내용이었다. 여러 비급여 항목에 관한 설명과 이를 이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물었다. 아내가 어제 ‘무통주사나 진통제 같은 건 무조건 해’라고 했던 걸 떠올리며 다 신청했다. 이런 설명을 들을 때마다 ‘의료 행위’와 ‘상업행위’ 그 어딘가에 있는 듯한 기분이 느껴져서 썩 유쾌하지는 않다. 더군다나 오늘 설명을 해 주신 간호사는 유독 후자의 냄새를 폴폴 풍기셨다. 수완이 없으신 건가.


이것까지 마치고 나니 정말 할 게 없었다. 그렇게 큰 병원도 아니어서 마땅히 산책할 만한 곳도 없었다. 병실에 나와서 앉아 있을 만한 곳도 없었고. 그래도 올해 초, 서윤이의 보호자로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병원이 크고 좋아도 내 자식이 아픈 걸 보는 것보다는 직접 아픈 게 낫다는 걸 새삼 느꼈다. 세 번이나 큰 일을 치르느라 이와 비슷한 (사실은 이보다 더 힘든) 경험을 한 아내도 계속 생각이 났다.


“시윤이는 너무 한결같네. 여보 없는 시윤이”


힘들다는 말이었다. 사실 아내가 제일 고생이다. 칠칠맞은 남편 덕분에 난데없이 독박육아라니.


아내는 오후에 친구와 만나서 (물론 자녀들도) 동네 공원에서 놀다가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괜찮은지, 힘들지는 않은지 물어보지 않았다. 요즘 즐겨보는 ‘성시경 유튜브’에서 성시경 님이 자기 맛집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하는데, 첫 입을 먹고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맛있지 뭐”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힘들지 뭐”


내일은 아내가 아이들을 지인에게 맡기고 병원에 온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그렇다 쳐도 서윤이가 걱정이다. 아직 똥과 오줌을 가리지 못하니 굉장히 손이 많이 갈 거다. 내 자녀의 뒤처리도 힘든데 남의 자녀의 뒤처리는 말을 해서 무엇하랴. 생각해 보니 시윤이도 그렇다. 더군다나 시윤이는 스스로 창피해서 말을 안 하고 참을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시윤이에게는 미리 말 좀 해 달라고 했다.


아내는 내일 애들 맡길 때 함께 줄 반찬을 만든다고 했다. 사실 아이 세 명 맡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긴 하다. 피로 엮인 할머니, 할아버지도 세 명을 한 꺼번에 맡으면 극도의 피곤함을 호소하신다.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고 보탬이 되고자 아내가 수고하고 있다. 운동하면서 ‘다치면 나만 손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치면 나도 손해고 아내는 더 손해’가 맞다.


애들이 엄청 보고 싶을 줄 알았는데, 아내가 제일 보고 싶네. 내일도 혼자 있어도 되니까 오지 말고 아이들 잘 챙기라고 했었는데, 막상 온다고 하니 엄청 좋긴 좋네. 내일 간다고 하면 무척 아쉬울 거다. 겉으로 티는 안 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