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도 좋고 가도 좋은 아내

22.09.21(수)

by 어깨아빠

아내가 아침 일찍 아이들을 맡기고 병원으로 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난 괜찮으니 애들과 있으라고 말했고 진심이었지만 막상 아내가 오니 좋긴 좋았다. 처음이었다. 결혼하고 아내가 간병인(?)의 역할을 하는 건.


수술은 오전이었다. 아내가 병원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수술실로 갔다. 난 침대에 누워서 병원 천장의 석고판과 조명을 보며 이동했고 아내는 침대를 따라 걸었다. 너무나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별 느낌이 없었는데 막상 ‘진짜 수술 환자’처럼 이동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여보. 잘 갔다 와”

“응, 갔다 올게”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도 꽤 기다렸다. 아내 생각이 많이 났다. 밖에 있는 아내가 아니라, 소윤이와 서윤이를 낳을 때의 아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끝나고 나서도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때마다 나의 간병 활동은 적절했는지 되돌아 보게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손과 발을 결박당했다.


“마취 가스입니다”

“네”


서너 번 들이 마시고 나서는 기억이 없다. 다시 깼을 때는 아내와 간호사 선생님이 보였다. 엄청 정신이 없고 그러지는 않았다. 손목의 통증은 조금 깊게 느껴졌다. 두 시간 동안 자지 말라고 했고, 여덟 시간 동안 먹지 말라고 했다.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예전에 수술했을 때(대학생 시절), 엄마에게 짜증을 냈던 게 생각났다. 말도 못 했는데 스케치북에다 글까지 써가며 짜증을 냈다. 언제 잘 수 있냐, 언제 먹을 수 있냐. 참 철이 없었다.


아내가 옆에 있으니 졸리지도 않았고 배가 많이 고프지도 않았다. 다만 손목의 통증이 좀 심해서 진통제를 놔 달라고 했다. 진통제가 들어가고 나서 통증도 한결 나아졌다. 아내와 함께 계속 병실에 있었다.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눈을 좀 붙였다. 아내도 간이 침대를 펴고 눈을 좀 붙였다. 피곤한 걸로 따지면 아내가 나보다 훨씬 피곤했을 거다. 나야 수술을 받았을 뿐, 하는 것 없이 푹 쉬었지만 아내는 치열한 육아의 전선에 있다가 왔으니까.


아이를 맡아 준 K 부부가 중간 중간 아이들 사진과 소식도 전해줬다. 아이 여섯(K네 자녀 셋, 우리 자녀 셋)을 데리고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바깥으로 나들이도 갔다고 했다. 기꺼운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청 힘들었을 거다. 비빌 만한 언덕인 부모님들 곁에 살아서 웬만한 일에도 자녀를 맡기는 건 걱정을 안 했다. K 부부에게 새삼 고마웠다.


K 부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내도 너무 수고스러울 거 같아서 아내에게 일찍(?) 가라고 했다. 혼자 지내는 게 전혀 어렵지 않은 상태였다. 통증도 많이 가라앉았고 몸 상태도 괜찮았다. 아내는 싫다고 했다. 아무리 멀쩡해도 환자복 입은 남편을 두고 가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나 보다. 아예 자고 간다는 걸 ‘정말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겨우 말렸다. 아내는 금식이 풀릴 때쯤 가기로 했다.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저녁으로 나온 건 아내가 대신 먹었다. 난 빵이나 우유를 사서 먹기로 했다.


아내와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병원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저녁으로 먹을 빵과 우유도 샀다. 바로 집으로 가고 싶었다. 병원으로 돌아왔다가 아내는 바로 다시 나갔다. 내 커피를 사러. 아내는 이런저런 군것질거리도 함께 사 왔다.


“여보. 나 주상골 골절 다이어트 한다니까?”

“뭐래”


그러고 나서 아내는 갔다. 아내가 가니 아쉽기도 했지만 아이들 곁으로 엄마를 보냈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잘 놀고 저녁으로 치킨과 피자를 먹었다고 했다. 세 자녀 모두, 단 한 번도 엄마나 아빠를 찾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가 떠나기 전에 잠시 통화도 했는데 다들 노느라 너무 신이 난 듯했다.


아빠의 수술 덕분에 친구들과 신나게 나들이 하고 놀아서 너무 좋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