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5(목)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잠이 충만한 상태였을 때 아내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그냥 잠결에 내는 소리인 줄 알았다. 정신이 조금도 들지 않은, 완전한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렸다. ‘왜 그러지? 어디 아픈가?’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잠에 취해 있다가 번뜩 정신을 차린 건, 아내의 신음 소리가 나의 잠을 완전히 깨울 만큼 강력하고 컸기 때문이다.
“여보. 왜 그래? 어디 아파?”
“머리가 너무 아파”
두통은 아내의 고질병이다. 아무런 규칙성을 가지지 않는 일상 중에 찾아 오기도 하고, 생체 주기에 따라 규칙적으로 찾아 오기도 한다. 아내에게 두통은 반갑지는 않지만 굉장히 익숙한 존재다. 웬만한 두통에는 ‘아, 또 때가 됐구나’라고 반응하는 것이 보통이다. 오늘은 달랐다. 두통의 강도가 다른 것 같았다. 아내가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정말 ‘데굴데굴’ 구르면서 통증으로 호소했다. 연애시절부터 따지면 13년을 봤으니 꽤 많이 본 건데, 내가 본 아내의 두통 반응 중에 가장 격렬했다.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이렇게 아픈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다. 아내는 어떻게 하지를 못했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침대로 올라왔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서 이리저리 구르다가. 아내를 따리 이리저리 옮기며 목도 주무르고 손도 주무르고 머리도 누르고 했지만, 사실상 무의미한 행위였다.
덜컥 겁이 났다. 마음 속으로는 급히 기도를 하면서 휴대폰을 들고 네이버를 띄웠다. 무의미한 검색질을 하다가 금방 휴대폰을 껐다. 모든 병이 마찬가지겠지만 초기 증상은 ‘지나고 보면’ 다 맞아떨어진다. ‘지나기 전에’ 찰떡같이 ‘이거구나’라고 예상하기 어려운 게 문제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고민 뿐이었다.
‘병원에 가 봐야 하나’
‘그냥 일시적인 통증인가’
‘올해 초부터 서윤이가 아프더니 이것도 연장선인가’
‘이곳의 병원은 믿을 만할까?’
온갖 잡생각과 기도, 막연한 염원이 뒤엉켰다. 아내는 구토도 했다. 음식물은 하나도 없었고 위액만 넘어왔다. ‘차라리 코로나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일하는 지인에게 오전에는 출근이 어려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루 종일 어려울 것 같다고 보낼까 하다가 일단 오전으로 한정했다. 아직 직장인 DNA가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실용성 없는 직장인 DNA가 원망스러웠다. 큰 폭풍이 지나고 나니 다소 잠잠해지긴 했다.
“여보. 좀 괜찮아?”
“어? 어”
아내는 거의 말을 못했다. 기운이 없는 건지 정신이 없는 건지. 아내는 일단 잠든 것처럼 고요해지기는 했다. 살포시 이불을 덮어 주고 거실로 나와서 소파에 앉았다. 한 번씩 방 문을 열고 아내가 ‘살아있는지’ 확인을 했다. 웃긴 표현일지 모르지만 진심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내가 확인을 할 때마다 어딘가를 꼼지락거렸다. 아마 깊이 잠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소시서 남매도 차례대로 잠에서 깼다. 차례대로 현재의 상황을 고지했다.
“소윤아(시윤아, 서윤아). 지금 엄마가 많이 아프셔. 머리가 많이 아프시대”
안방에는 웬만하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엄마를 찾아서 꾸역꾸역 안방으로 들어가려는 자녀는 없었다. 서윤이가 조금 엄마를 그리워 했지만 이해를 한 건지 아니면 아빠가 말을 하니까 듣는 건지 들어가지는 않았다. 서윤이는 워낙 소윤이 같아서, 모든 걸 알고 이해할 거라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된다.
아내도 엄청 심했을 때보다는 한결 나아졌다고 했다. 기운은 전혀 없었지만 두통의 강도가 약해지기는 했다. 다만 ‘뻐근한 느낌’, ‘묵직한 느낌’으로 표현이 가능한, 뭔가 불쾌한 기분은 여전하다고 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건 마치 ‘제왕절개로 출산한 산모’처럼 엉성하고 느렸다.
아내는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서 요양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사실 엄청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굉장히 피곤했다.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오전 내내 소파에 누워 있었다. 큰 분쟁 없이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노는 소시서 남매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 소윤이는 나름대로 자기 할 일도 알아서 챙겼다.
“여보. 괜찮아?”
“어. 아까보다는 좀 낫네”
“오후에 괜찮겠어? 애들이랑?”
“어, 괜찮아. 갔다 와”
“힘들 거 같으면 얘기해. 오늘 쉬면 되니까”
“아니야. 괜찮아”
오후에는 일을 하러 나가기로 했다. 새벽에는 그동안 경험한 적이 없는 통증이 찾아온 느낌이었다면, 점심시간 무렵에는 ‘그동안 여러 번 경험했던’ 정도의 통증(두통)이었다. 단순히 잠잠해진 게 아니라 경험해 봤던 영역으로 들어온 거다. 그래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평소와 똑같은 상태는 아니었다. 한 것도 없었는데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아내가 아이들 점심을 챙기는 건 어려워 보였다. 집 근처 김밥 가게에서 김밥을 사다 놓고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한 번 더 당부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엄마가 아프시니까 오후에 너희가 좀 많이 도와줘. 알았지?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오늘은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아니까 평소보다 많이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나왔다.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는데 서윤이 재우러 들어갔고 그 김에 좀 잘 거라고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또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아직 누워 있어?”
답이 없다가 한 시간 쯤 뒤에 답이 왔다.
“누워 있다가 서윤이 훈육하느라 일어났어요”
아, 이것이 홈스쿨 하는 엄마의 일상인가. 그 메시지를 보내고 나도 곧 집으로 돌아왔다. 서윤이는 땀 범벅이었다. 훈육의 시간을 보내느라 그렇다고 했다. 아내는 그 어느 때보다 기운이 없고 지쳐 보였지만 새벽에 워낙 강력한(?) 시간을 겪어서 상대적으로 안심이 됐다.
아내 친구이자 지인 부부의 아내가 반찬을 해 놨다고 했다. 남편 편으로 보낸다는 걸 사양하고 직접 가지러 가겠다고 했다. 아픈 엄마와 함께 지내느라 하루 종일 나름대로 고생했을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바람 쐴 시간을 주고 싶었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였고 바람도 꽤 시원하게 불어서 괜찮아 보였다. 가서 반찬만 후다닥 받아 오는 거라고 얘기했는데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좋아했다. 잠깐이라도 보는 것도 좋고, 잠깐이라도 나가는 것도 좋은 모양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는 내내 방방 뛰었다. 산책에 굶주렸던 강아지처럼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고 웃고 촐랑거렸다. 데리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윤이는 땅을 밟지 않고 유모차에만 있었지만 그래도 좋아했다. 언니와 오빠가 노는 걸 보면서 많이 웃었다.
지인의 집에 아주 잠깐 들어갔다. 물 한 잔 마시고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머물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오늘은 이변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이나 행동에 미련을 두지는 않았다.
덕분에 저녁을 쉽게 해결했다. 아내는 많이 먹지는 못했다. 아주 조금, 살기 위해 먹는 정도였다. 점점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라서 다행이긴 했지만 혹시 단순한 두통이 아니고, 다시 심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머리에서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새벽의 아내의 모습이 너무 심각해서 상상의 나래가 많이 뻗어갔다.
잘 준비를 모두 다 하고 책을 읽어 주려고 했다. 서윤이가 고른다고 하길래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기들끼리 갑자기 사다리 타기를 하겠다고 했다. 책 고를 사람을 사다리 타기로 결정하겠다는 말이었다. 사다리 타기를 그려 주면서 ‘꽝’도 하나 넣었다. 꽝이 나오면 책을 안 읽고 자는 걸로 정했다. 공교롭게도 꽝이 나왔다. 당연히 진짜 안 읽어 줄 생각으로 넣은 건 아니었다. 재미를 위해 넣은 요소였는데 하필 그게 나온 거다. 다섯 개의 초성 퀴즈를 낼 테니 그걸 모두 맞추면 책을 읽어주겠다고 했다. 물론 이것도 결과와 상관없이 읽어 주려고 했다. 첫 번째 문제는 맞추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제는 틀렸다. 소윤이는 시간과 힌트를 조금 더 달라고 조르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글로는 설명이 잘 안 되지만 소윤이 특유의 ‘눈물 포인트’가 있다. 주로 자기 뜻이 잘 관철되지 않거나 뭔가 많이 아쉬울 때 보이는 눈물인데 부모의 입장으로 항상 따뜻한 반응을 해 주기 어려울 때도 많다. 오늘도 비슷했다. 게다가 오늘은, 다소 소윤이의 억지스러운 면도 있었다. 조금만 기다렸으면 모두가 즐거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다소 단호하게 바로 게임을 중단했다. 소윤이는 퀴즈를 못 맞힌 게 아쉬워서 우는 거라고 했다. 이런저런 설명과 훈육(?)을 했다. 꼭 맞혀야 즐거운 게 아니고 맞히는 과정에서 웃고 즐기면 되는 거라고, 틀려도 즐거울 줄 알아야 진짜 즐거운 거라고, 맞혀야만 즐거울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거라고. 즐거우려고 시작했던 책 읽기와 퀴즈가 눈물 바람으로 끝났다.
아내에게도 일찌감치 들어가서 자라고 했는데 낮에 하도 누워 있어서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애들 눕히고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아내가 소파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여보. 편하게 누워서 자”
“어? 어. 아니야. 잠깐 졸았네”
그러고 나서도 또 졸았다. 그렇게 자고도 그렇게 조는 걸 보면 몸이 많이 힘들긴 했나 보다. 아내도 그때는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서 잠이 안 오고 뒤척이는 거 아닌가 염려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깨지도 않고 아주 깊이 자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아내가 최대한 편히 자길 바라는 마음으로, 난 바닥에 누웠다. 기왕 바닥에 누운 김에 이런 생각도 했다.
‘오늘 새벽에는 서윤이가 깨서 왔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