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딸하고 데이트네

22.09.24(토)

by 어깨아빠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오히려 새벽에 잠을 못 자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쓸 데 없었다. 잠은 계속 잘 잤다. 오히려 아침에도 늦게까지 잤다. 아내가 무척 피곤해 보였다. 하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눈을 뜬 지 얼마 안 된 시간에도 매우 피곤해 보였다. 무엇보다 비염 증세가 심했다. 코와 눈을 간지럽히는 비염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다.


아내는 다소 빠르게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윤이의 낮잠이 큰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아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누워야 했다. 서윤이가 자든 안 자든 아내가 자는 건 확실해 보였다. 서윤이와 아내가 방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바람 쐬러 갈까?”

“어디로여?”

“그냥 바닷가에. 산책하러”

“그래여”


바로 옷을 입고 준비해서 나왔다. 서윤이가 잠에서 깨면 많이 슬퍼할 것 같았지만 잔 사람은 자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작은 연습장과 색연필을 챙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있을 때 그리기 책을 보고 뭐든 따라 그릴 때가 많다. 자연이라는 좋은 소재를 보고 ‘조금 더 멋진 그림’을 그려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단 챙겼다.


오늘도 날씨는 기가 막혔다. 그냥 걷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그런 날씨였다. 게다가 보통의 좋은 날과 비교하면 훨씬 선명하고 깨끗했다. 눈이 닿는 곳 어디든 그 경계선이 확실하게 보일 정도로 먼지가 없었다. 태풍이 휩쓸고 간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바닷물도 유독 파랬다. 이사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동안 정말 숱하게 본 풍경인데, 볼 때마다 감탄스럽고 황홀하다.


많이 걷지 않고 가장 가까운 백사장 어딘가에 앉았다.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 겸 의자에 앉았다. 집에서 챙겨 온 과자 한 봉지를 열어서 나눠 먹었다. 병원에 있을 때 간식으로 먹으라며 아내가 사 온 과자였다. 병원에서는 아무런 식욕도 불러일으키지 않더니 바닷가에 앉아서 먹으니 어찌나 꿀맛이던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과자를 다 먹더니 모래밭으로 달려갔다. 모래 놀이가 그렇게 재밌나 보다. 어디를 가든 모래만 있으면 일단 주저앉아서 만지고 싶어 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래 놀이를 하고 난 그냥 경치를 감상했다. 주말 낮이었지만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한적한 바다가 풍기는 고유의 색이 너무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스케치북과 색연필은 꺼내 볼 생각도 안 했다. 계속 모래 놀이만 했다. 그림은 안 그릴 거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뭐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본다는 것도 아니고 모래를 만지면서 놀겠다는데 그것도 얼마나 자연친화적인 행동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자연을 소재로 미술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더 작위적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장자리가 부드럽게 갈린 조개껍데기를 여러 개 주워왔다.


잠에서 깬 서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 말로는 깨자마자 엄청 슬퍼했다고 했다. 서윤이는 나에게 지금 어디냐면서 자기도 아빠한테 가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올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대신 아내는 서윤이의 마음을 빵으로 위로했다. 빵을 사러 나간다고 했다.


우리(나, 소윤이, 시윤이)도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주워 온 조개껍데기를 모두 가지고 가기는 어려우니, 각각 세 개씩 고르라고 했다. 고민하며 고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기다리는데 누가 아는 체를 했다. K네 가족이었다. 산책하러 나왔다고 했다. 서로 신기했다. 동네 산책하다가 동네 사람 만나는 게 그리 신기할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가까이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동네 산책하다가 우연히 만날 정도로 가까이 살고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만난 김에 일행이 됐다. 어차피 저녁에는 겹치는 일정이 있었다. 빵을 사러 나온 아내와 서윤이도 동네 근처의 공원에 있다고 했다. 다 함께 거기로 갔다. 공원에 잠시 앉았다가 우리 집으로 옮겼다.


각 집의 남편들과 첫째들은 저녁에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했다. 교회를 통해서 보게 되는 뮤지컬이었다. 학령기 이상의 자녀부터 동반이 가능한 뮤지컬이라 아쉽게도 둘째들은 함께 가기 어려웠다. 미리 말을 하기는 했어도 둘째들의 아쉬움은 여전했다. 시윤이에게는


“나중에 아빠랑 데이트 따로 하자. 우리 축구 보러 가자”


는 약속으로 위로를 했다. 공수표가 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알아 봐야 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시즌 막바지인 걸로 알고 있다. 아빠와 누나가 나가는 순간까지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K의 차를 타고 함께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어린이 뮤지컬은 아니었다. 성인 뮤지컬이지만 동반이 가능한 거라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할지는 의문이었다. 소윤이는 너무 무서워서 못 보겠다며 울거나 나가자고 할 수도 있었다. 뮤지컬이라는 걸 아이들과 함께 보는 게 처음이었다. 소윤이도 기대와 설렘,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역시나 아이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건 어려웠다. 대충 어떤 내용이라는 정도라도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다. 뮤지컬이라는 걸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나도 워낙 오랜만에 이런 걸 봐서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소윤아. 어땠어? 이해가 됐어?”

“아니여. 이해는 잘 안 됐어여”

“무섭지는 않았어?”

“무섭기도 했는데 괜찮았어여”


끝나고 저녁도 함께 먹었다. 돈까스와 우동을 먹었다. 역시나, 자녀들은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K의 아내와 둘째, 셋째는 여전히 우리 집에 있었고 우리(남편들과 첫째들)가 도착하자마자 짐을 챙겨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