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3(금)
어제 강력하게 ‘퇴원 의사’를 밝힌 덕분인지 새벽에 오는 간호사 선생님마다
“오늘 퇴원하시는 거죠?”
라고 물어보셨다. 실제로 그 뒤의 일정도 퇴원에 맞춰 진행됐다. 뭔가 남다르고 특출한 사람은 병원에서도 자기만의 일상을 만들어 갈 테지만, 난 아직 그 정도의 깜냥이 안 되나 보다. 할 일이 없으니 틈만 나면 눕게 되고 눕게 되니 환자 같고 그러다 보니 갈수록 늘어진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 일주일을 더 있다가 집에 가나 오늘 집에 가나 회복 여부에 큰 차이가 날 거 같지는 않았다. 물론 일상으로 복귀하면 아무래도 손을 더 쓰게 되기는 하겠지만 반대로 병원에 있을 때보다 활력과 생기가 돌아서 회복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퇴원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별 거 없었다. 퇴원 정산 잘 하고 약 잘 받고 2주 후에 방문 예약만 잡으면 끝이었다. 혼자 퇴원 수속을 밟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병원으로 온다고 했다. 그 사이 난 옷을 미리 갈아입고 짐을 정리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런 비슷한 기분을 언제 느껴봤나 싶었는데, 군대였다. 마치 먼저 전역하는 전역자의 심정이었다. 물론 그때처럼 전우애를 나눈 건 아니었지만.
드디어 기나긴 3박 4일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사 주고 싶어서 ‘맛있는’ 돈까스 가게를 제안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배가 많이 안 고프다고 했다. 일단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늘어지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바늘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팔도 너무 좋았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금방 피곤이 몰려왔다. 병원에 있을 때 주된 일과라고는 먹고 맞고 눕는 게 전부였는데 왜 피곤하지 싶었다. 아무튼 눕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안방 침대에 가서 누웠고 거의 바로 잠들었나 보다. 잠에서 깼을 때는 불이 꺼져 있었고 문도 닫혀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자고 일어난 것 같았다. 아내야말로 피곤했을 텐데 아내는 여전히 독박육아에 가까웠다. 아니, 독박이었지 뭐.
저녁은 밖에 나가서 먹기로 했다. 소윤이가 돈까스(아까 그 돈까스 가게 아님) 얘기를 해서 그걸 먹을까 하다가 내가 ‘고기’를 제안했다. 남편과 아빠 없이 고생한 아이들을 위한 기력보충이랄까. 소윤이는 그래도 돈까스가 먹고 싶다고 했고 시윤이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이거든 저거든 상관이 없다고 했다. 나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돈까스로 결정이 났다가 나가는 순간 변경됐다.
“여보. 그럼 우리 그냥 갈비 먹으러 가자”
처음 가 보는 곳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이들과 함께 먹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고기는 고기인 만큼 내가 마음껏 먹으면 최종 결제 금액에 큰 차이가 난다. 오늘은 마음껏 먹지는 않고 매 순간 자제하며 먹었다. 오늘은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자리였으니까. 내가 보기에는 아내도 별로 안 먹은 것 같았는데 아내도 배가 부르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보기에도 많이 먹었고 실제로도 엄청 배가 부르다고 했다.
먹고 나와서 잠시 바닷가도 걸었다. 바람이 선선하니 걷기에 아주 좋았다. 한 여름 휴가철 때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고 한가해서 좋았다. 뽑기(달고나)도 한 판씩 시켜줬다. 설탕을 녹이는 단계까지는 직접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시윤이를 어리게 보신(실제로도 어리지만) 사장님께서 시윤이의 뽑기는 더 꾹 눌러 주셨다. 덕분에 (혹은 얼떨결에) 시윤이는 하트 모양 뽑기를 성공했다. 사장님이 미리 만들어 두신 뽑기 하나를 보상으로 받았다.
난 계속 유휴 인력이었다. 산책을 할 때도 서윤이 유모차를 밀지 못했고 집에 와서도 대부분의 일은 아내의 몫이었다. 한 손으로도 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뭔가 몸이 많이 무거웠다. 다 아내가 했다.
아이들을 눕히고 오랜만에 맞는 아내와의 밤 시간이었다.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너무 졸렸다. 낮잠을 그렇게 달콤하게 잤는데도 또 잠이 몰려왔다. 잠깐 소파에 누웠는데 그게 거의 밤잠이었다. 한참을 자고 깼을 때, 아내는 열심히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여보. 미안. 내일부터는 나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될 게. 오늘은 들어가서 자야겠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갔는데도 잠이 안 오기는커녕 바로 또 잠들었다. 뭐지. 병원의 눕는 생활에 젖은 건가, 아니면 온전치 못한 팔이 은근히 영향을 미치는 건가, 아니면 오랜만에 편안한 집에 와서 긴장이 풀린 건가.
계속 이러면 곤란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