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6(월)
처치홈스쿨 개강하는 날이었다. 개강 예배는 지난 번에 드렸고 오늘은 실제로 2학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마침 다른 지역에서 참관을 오시기로 해서 오늘은 내내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에 조금 일찍 나와서 먼저 교회로 가서 아내와 아이들이 올 때까지 일을 조금 했다.
생각보다 조용하고 차분했다. 위(경기도)에서 처치홈스쿨을 할 때는 항상 바쁘고 치열한 분위기였는데 여기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함께하는 가정의 수가 적어서 (당연히 자녀의 수도 적고) 그런 걸지도 모르고, 아빠 선생님이 함께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나 말고도 아빠 선생님 한 명이 계속 함께 있었다).
‘이 정도면 아내가 할 만 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사 오기 직전에, 처치홈스쿨을 하고 온 날의 아내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항상 녹초 그 자체였다. 오늘은 첫 날이라 그렇다 치고 계속 하다 보면 여기도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그때보다는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의 태도도 비교적 양호했다. 모든 시간에 성의 있게 잘 참여하고 태도도 좋았다. 관건이라고 볼 수 있는 서윤이도 엄청 괜찮았다. 서윤이가 징징거리거나 우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을 정도로 대체로 협조적이었다. 장난(인지 고의인지 애매하긴 하지만)이 지나친 시윤이가 다른 자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종종 있기도 했다. 장난이든 실수든, 혹은 악의적 가해든 얼마든지 그럴 수는 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시윤이는 진심 어린 사과가 아직 어렵거나 하기 싫은 듯했다. 매우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사과로 상황을 넘기려고 했다. 잘 지켜보다가 한 번씩 훈육을 하면 또 그게 속상하다면서 울기도 했다. 아마 평소에 아내에게는 훨씬 더 힘든 태도로 반응했을 거다.
처치홈스쿨 일정을 마치고 소감을 나눌 때, 아내는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너무 좋네요. 사실 하나도 안 힘든 것 같아요”
어찌 하나도 힘들지 않겠냐마는 그만큼 몸과 마음의 안정을 누렸나 보다. 아내는 오늘 하루를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참관 오신 가정도 가고, 원래 함께하는 한 가정도 가고 K의 가정과 우리만 남았다. 점심 때 먹은 떡만둣국이 남아서 저녁에도 그걸 먹고 가기로 했다. 그것만 먹기에는 아쉬우니 치킨도 시켰다. 자녀들은 먼저 저녁을 먹이고 어른들이 먹으려고 자리를 잡았을 때 누군가 외쳤다.
“어? 00이 똥 쌌어여”
순간 나도 모르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윤이가 아니라서. 분명히 00이라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서윤이가 똥을 싸는 듯한 자세였다.
‘설마 아니겠지’
00이의 부모인 K가 가서 기저귀를 확인했다.
“어? 00이 아닌데? 서윤이 같은데?”
라고 하면서 서윤이 엉덩이도 확인했다. 설마가 사람 아니 부모 잡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막 저녁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난 깁스와 붕대로 고정한 나의 왼팔을 아내에게 보여 주며 얘기했다(보여 주지 않아도 보이지만 굳이 더 가까이 들었다).
“여보. 내가 지금 닦아 주기가 어려워”
“어, 알아. 내가 할 게”
손목이 부러진 게 처음으로 좋았다. 참고로 서윤이는 기저귀가 아니라 팬티를 입고 있었다. 기저귀에 싼 똥과 팬티에 싼 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실제로도 심정적으로도.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난 닭다리를 물어 뜯었다. 닦는 사람은 닦더라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화장실에 갔던 서윤이가 팬티와 바지를 들고 나에게 왔다.
“아빠아아. 뺀띠 입어 주데여어어”
얼마든지. 그 정도야. 아내는 화장실에서 뒤처리(똥 묻은 팬티 세척)를 하고 있었다.
“아. 식욕이 없어졌네”
화장실에서 돌아온 아내가 주저앉으며 얘기했다. 진실이었지만 거짓이었다. 어느샌가 아내는 떡만둣국으로 만든 죽과 치킨을 누구보다 열심히 먹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까 엄청 피곤했다. 여전히 난 다친 왼팔을 핑계로 이후 과업에서 열외였다. 아내가 아이들을 모두 씻겼다. 난 뭐라도 하려고 드라이기를 들고 시윤이 머리를 말렸다. 그게 끝이었다. 어차피 소윤이의 긴 머리는 한 팔로 말리는 게 어렵다.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씻기고 소윤이의 머리를 말리는 동안 거실에 누워서 졸았다. 누우니까 곧장 잠이 쏟아졌다. 교회에서 하루 종일 처치홈스쿨을 함께 했던 게 피곤하긴 했나 보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아니 오히려 훨씬 더 피곤했을 텐데 아내는 아이들이 눕기 전까지 한시도 쉬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어도 처치홈스쿨 첫 날이라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건지 아니면 너무 쉴 틈 없이 쭈욱 달려서 그랬던 건지, 아내는 두통을 호소했다. 당장 심한 건 아니었지만 점점 심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전, 극심한 두통 때문에 새벽에 깨서 구토까지 했을 때처럼 아플까 봐 걱정이었다. 아픔의 강도도 염려가 됐지만 강한 두통이 너무 자주 나타는 게 더 걱정이었다.
아내가 먼저 들어가서 자고 난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갔다. 바닥에 누웠다. 부디 푹 자고 두통 없이 지나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