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만큼 피곤하도록 알차게

22.10.08(토)

by 어깨아빠

당연히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났다. 그런 아이들에 맞춰서 장인어른도 새벽같이 일어나셨다. 장인어른은 아침부터 아이들도 봐 주시고 부지런히 뭔가를 하셨다. 지난 번에 오셨을 때 안방에 있는 화장실 스위치 덮개가 좀 헐거웠던 걸 계속 생각하셨나 보다. 아예 덮개와 그 안에 들어가는 부분을 구해서 오셨다. 웬만한 곳에서는 팔지 않았고, 철물점에서 어렵게 구하셨다고 했다.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장인어른은 각종 도구를 활용해 꽤 심혈을 기울여 교체를 하셨다. 다만 다른 스위치들과 모양이 다르기도 했고 뭔가 아귀가 딱 맞지도 않았다.


‘가영이가 보면 과연 모른 척하고 지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아내라면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이질감과 매끄럽지 않은 마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재시공을 요청했다. 이것이 딸의 당당함인가. 장인어른은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다시 공구를 드셨다. 안타깝게도 점심 먹으러 나갈 시간이 다 돼서 재시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점심은 시내(자꾸 시내라고 하니까 좀 웃기지만, 엄연히 시내이긴 하니까)로 나가서 먹었다. 차로 20분 정도 가야 했는데 마침 서윤이의 낮잠 시간이 겹쳤다. 밥 먹을 때 자는 것보다는, 밥은 배불리 먹고 커피 마실 때 자는 게 언제나 최선이다. 잠들까 봐 걱정이었는데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다. 옆에 탄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들 틈이 없었다. 식당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밥도 잘 먹었다. 다만 너무 졸려서 평소보다는 훨씬 덜 열심히, 조금 먹긴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잘 먹었고.


식당에서 카페까지도 한 2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아내가 모두에게 공표했다.


“자 여러분. 우리 잠시 이야기를 줄이고 조용히 합시다”


아내의 말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모두 이해했다. 당사자인 서윤이만 빼고.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카페로 이동했다. 서윤이는 금방 잠들었다. 서윤이가 자는지 보려고 뒤를 봤는데 소윤이만 빼고 모두 자고 있었다. 시윤이는 물론이고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장거리 운전과 이동의 여파였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위해서 조금 더 돌아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서윤이는 카페에 도착해서도 바로 깨지 않았다. 가뭄에 단비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오후의 피로를 잠시 떨쳐냈다. 소윤이, 시윤이는 역시나 먹을 걸 다 먹고 나니 답답해 했다. 앉은 자리 옆 쪽에 나가서 놀 만한 야외 공간이 있었다. 날씨도 너무 좋았다.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서 한참을 놀았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같은 걸 하자고 했다. 그럴 만한 공간이 아니기도 했고 그 정도로 뛰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칸씩 전진하기를 했다(가위바위보 해서 계단 한 칸씩 오르기 같은 거다). 그 단순한 놀이에도 엄청 즐거워했다. 옆에 다른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가 우리를 굉장히 재밌게 구경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굉장히 민망하다. 나중에는 그 아이 아빠도 앉아서 우리를 쳐다봤다.


서윤이는 한참 자다가 깨서 빵을 좀 먹고 밖으로 나왔다. 할아버지와 함께. 어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할아버지를 많이 반겼던 서윤이는 오늘도 할아버지에게 딱 붙어 있었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에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할아버지의 마음도 녹아내렸다. 할아버지를 찾아서 손을 잡고, 할아버지 무릎 위에 가서 앉고, 할아버지가 안 보이면 바로 찾고. 장인어른에게 너무 황홀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었다. 떠나는 날의 후폭풍은 잠시 잊더라도.


잠시 한살림에 들러서 장을 보고 대왕암으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꼭 가 보고 싶어 했고, 먼 곳까지 온 누구에게든 가장 보여 드릴 만한 곳이기도 했다. 밖에 안 나가면 손해일 정도로 날씨가 좋기도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너무 피곤하고 힘드실까 봐 걱정이었지만, 적당한 거리와 시간을 고려해서 움직였다. 출렁다리도 건너고 내가 좋아하는 지점도 갔다. 난 등산 캐리어를 멨다. 서윤이는 내 등에 업히자마자


“좋다”


라고 얘기하며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런 걸 보니 힘이 나서 벌떡 일어났지만 유효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뭔가 자세가 안 좋은 건지 금방 어깨가 아파졌다.


해가 금방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저녁에는 회 파는 곳을 찾아 헤맸다. 장모님이 꼭 회를 사 주고 싶다고 하셨다. 바닷가의 괜찮아 보이는 횟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마감이 됐다고 했다. 집 근처의 평이 좋은 횟집에 가려고 했더니 거기도 사람이 많이 와서 마감이 됐다고 했다. 전국체전이 열리는 기간이라 단체 손님이 많은 듯했다. 갈 곳을 잃은 우리는 방황을 하다가 해수욕장에 있는 횟집에 급히 들어갔다. 아이들 먹을 건 전혀 없어서 양해를 구하고 돈까스를 사 왔다. 돈까스를 찾으러 가는 길에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주문한 회 사진이었다. 너무 괜찮다는 건지 별로라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는데 아내에게 바로 메시지가 이어서 왔다.


“애피타이저로 먹고 치킨 사 가서 집에서 먹기로 함”


양이 너무 적다는 말이었다. 장모님의 마치 누구와 싸운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사 온 돈까스가 맛있었다. 사실 난 회 맛을 잘 모른다. 나름 신선하고 맛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맛이 아닌 듯했다. 심각하게 적은 양과 빈약한(거의 없는) 밑반찬(스끼다시)이 문제였다. 남은 회는 내가 다 먹었다.


아이들은 일찍 재웠다. 집에 가자마자 씻기고 눕혔다. 내일도 늦게 잘 예정이니 오늘은 일찍 자서 피로로 인한 각종 질병의 유발을 방지하는 차원이었다. 서윤이는 자기 전에 팬티에 똥을 살짝 쌌다. 아내가 전해 주는 똥의 양상을 들어 보니 본 경기가 아니었다. 신호탄과 같은 똥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니 일단 재웠다. 아내와 장모님은 대화에 함께할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셨고 난 샤워를 했다. 샤워하는 동안 밖에서 서윤이 울음소리도 들리고 소윤이 소리도 들리길래 안 깨고 또 나와서 장난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려고 누웠던 서윤이가 안 자고 서서 돌아다니길래 소윤이가 똥을 쌌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고, 거실에 계시던 장인어른이 서윤이의 똥과 똥팬티를 수습하고 계셨던 거다. 내가 나왔을 때는 이미 서윤이 엉덩이를 다 닦고 팬티도 어느 정도 처리한 뒤였다. 아내와 장모님도 곧 복귀하셨다. 서윤이는 팬티도 할아버지가 입혀줘야 한다며 울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조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약간 미소를 띠고 계셨다. 이것이 진정한 내리사랑이다. 난 아직 멀었다.


폭풍 아닌 폭풍이 지나가고 두 번째 날 밤이 찾아왔다. 장인어른은 어제보다 더 빨리 방으로 들어가셨다. 누적되기만 하고 풀 시간은 없는 피로를 버티지 못하셨다. 아무리 피로가 쌓이고 쌓여도 즐거워 하셨다. 오늘 하루, 서윤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곱씹고 전하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