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9(주일)
서윤이는 장모님과 장인어른 사이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언니, 오빠와 헤어질 때도 따라가겠다며 입을 삐죽거리다가
“할아버지랑 같이 예배 안 드려?”
라고 했더니 고민도 없이 돌아서서 장인어른의 손을 잡았다.
오늘따라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단 점심은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함께 드셨다. 아내는 식당 당번이었다. 사실 어제도 교회에 와서 식사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못 온 거다. 오늘은 약간의 배식과 설거지를 담당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동부 예배를 드리고 나서 먼저 밥을 먹고 있었다. 나와 서윤이, 장인어른, 장모님이 함께 먹었다. 서윤이는 장인어른이 담당하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떠 먹여 주셨다. 중간에 서윤이가 먼저 스스로 먹겠다며 숟가락을 가지고 갔을 때를 빼면 다 먹여 주셨다. 유한한 시간에 손주와 사랑을 나누는 장인어른이 애틋해 보였다.
오후 예배도 드려야 했다. 난 저녁에 빠지기 어려운 성경공부 모임도 있었다. 원래 아내와 아이들은 오후 예배는 안 드리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처치홈스쿨 특송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오후 예배를 드려야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먼저 집으로 가서 좀 쉬시겠다고 했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에 다시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휴식이 필수이긴 했다. 서윤이는 할아버지가 왜 안 보이냐면서
“하야버지 보고 딥따”
라며 입을 삐죽거렸다. 서윤이가 원래 이렇게 할아버지를 좋아했나 싶었다. 장인어른은 서윤이 생각이 가장 많이 나고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마음이 통한 건가. 아무튼 서윤이는 마치 계속 할아버지와 살았던 것처럼 할아버지를 향한 각별한 정을 드러냈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후 예배를 마치고 목장 모임까지 하고 집으로 갔다. 나도 목장 모임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잠시 날 불러냈다. 모임을 하도 있을 때는 웬만하면 부르는 일이 없어서 의아했다. 나가 보니 소윤이도 함께 있었다. 소윤이가 시윤이에게도 잘못된 행동을 했고, 그걸 훈육하려고 했더니 너무 적극적인 반항까지 해서 내 손에 넘기겠다는 거였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소윤이와 함께 교회 어딘가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윤이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정말 엄마가 말한 것처럼 행동했는지. 그렇다고 했다. 엄청 따끔하게 혼을 냈다. 아니 혼을 냈다기 보다는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지금 니가 한 말과 행동이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고 속상하게 했는지, 사랑한다고 백 번 얘기하는 것보다 이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엄마를 기쁘게 하는 거라고. 나가면 엄마와 시윤이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라고 했다. 소윤이는 많이 울었다.
오늘따라 성경공부가 평소보다 좀 늦게 끝났다. 중간 중간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쯤 끝날 거 같냐는 질문과 피곤해서 불통이 된 시윤이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아이들도 엄청 피곤하긴 했을 거다. 며칠 째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으니까. 평소에도 비슷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셨을 때는 조금 더 늦게 자고 조금 더 빨리 일어난다. 의지를 가지고. 그 ‘조금’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특히 시윤이에게는.
성경공부가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식당으로 갔다. 매운 닭갈비와 쭈꾸미를 먹었다. 아이들은 전복 솥밥을 먹었는데 장인어른과 장모님, 특히 장모님은 자꾸 아이들이 먹을 게 없다면서 아쉬워하셨다. 막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 놓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이고 싶으셨나 보다. 그 와중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부르지도 않다’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아쉬운 마음을 증폭시켰다. 우리(아내와 나)에게도 제대로 된 걸 한 번도 못 사주셨다면서 아쉬워 하셨다. 아내와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고, 아이들도 귀한 음식을 충분히 배부르게 먹었지만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바람에는 한참 못 미쳤나 보다.
피곤한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계속 나의 신경을 살살 긁었다. 게다가 더 이상 아내가 힘들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본능적 행동 기제가 발동됐다. 집에 와서도 굉장히 사소한 걸로 티격태격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와 계시는 동안에는 최대한 훈육을 하지 않고 꾹 참았다)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강력하게 경고했다. 그만 다투라고. 그러자 아내가 내게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내에게도 다소 차갑게 반응했다.
‘아니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는 건데 갑자기 와서 다른 소리?’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원래 오늘 밤 늦게라도 가려고 하시다가 계획을 수정하셨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셨다.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 치킨을 한 마리 시켰다. 아내와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장모님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아내는 ‘엄마의 전적(먹고 싶다고 하고 안 먹기)’이 화려하니 정말 드시고 싶으면 시켜라’고 얘기했다. 결국 한 마리를 시켰다. 별로 생각이 없다고 말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아내와 내가 잘 먹었다.
내일 다시 장거리 운전을 하셔야 하는 장인어른은 내일을 위해서 일찍 주무셔야 했다. 피곤하기도 엄청 피곤해 보이셨다. 장인어른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소파에 누우셨다. 딱딱한 바닥에서 주무시는 게 불편한 것도 이유였지만 대화의 장에서 퇴장하는 게 아쉽기도 하셨을 거다.
못 해 줘서 아쉽기만 한 장인 어른, 장모님과 고생만 하고 가시는 것 같아 죄송한 우리(아내와 나)의 마음이 교차하는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