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압과 저기압이 만났을 때

22.10.12(수)

by 어깨아빠

아내가 아침부터 몸이 무겁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천근만근이라는 표현을 썼으니 꽤 힘들다는 뜻이었다. 아침에 교회에 가서 일을 하다가 수요예배를 드리려고 했다. 집에서 준비하느라 한창 바쁠 시간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엄청 낮았다. 출발하려면 조금 더 걸릴 거 같았다. 아내와 통화를 마치고 집으로 갔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내는 엄청 저기압이었다. 무슨 (큰)일이 있었는지, 그냥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건지 묻는 나의 물음에도 답이 없었다. 아내의 눈가가 조금 붉어 보였다. 운 건지 피곤해서 그런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소윤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는데 심각하게(?) 큰 일은 없었던 거 같았다. 아내는 계속 기분이 안 좋았다. 마치 나와 다툰 것처럼.


나도 더 이상 아내에게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예배를 드리고 점심도 교회에서 함께 먹었다. 그때도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아니, 않았나. 아무튼 나도 점점 기분이 안 좋아졌다. 점심을 다 먹고 오후 일정을 소화하려고 교회에서 나가는데 아내가 쫓아 나왔다.


“여보. 괜찮아?”

“뭐가?”

“아무렇지도 않아?”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무런 건 여보 아니었나?”


차를 타러 가는 길이라 길게 얘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고 헤어졌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다시 교회로 가서 남은 일을 처리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아직 교회에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책이라도 갈까 했는데 생각보다 일 마무리가 늦어져서 무산됐다. 아내는 저녁에 성경공부가 있기도 했다.


차가운 기류가 흐르지는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다소 건조한 공기였달까. 필요한 대화를 나눴지만, 필요한 대화만 나눈 건 아니었다. 필요한 대화만 나눈 건 아니었지만 유쾌하도 밝은 기운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집에 와서 장모님이 갖다 주신 밑반찬과 지난 번에 먹고 남은 짜장으로 저녁을 먹었다. 아내는 별로 밥 생각이 없다고 했다. 친구가 싸 준 감자 스프를 먹고 교회에 갔다. 그 전에 소윤이는 앞니를 하나 더 뺐다. 이제 앞니 세 개가 나란히 빠진 상태가 됐다.


엄청 피곤했다. 소파에 누워서 입으로 아이들의 과업을 지시했다.


“소윤아, 시윤아. 들어가서 양치하고 손, 발 씻어”

“아빠 그러다 잠드는 거 아니에여?”

“아, 아니야”


아니긴. 조금 있다가 소윤이가 날 깨웠다.


“아빠”

“어. 어. 소윤아. 아빠 코 골았어?”

“네. 크르릉 크르릉 이렇게”

“아, 너무 피곤하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모두 평소와 다름없이 자기 할 일을 마치고 자리에 가서 누웠다. 새삼 기특했다. 엄마가 없어도 그렇게 말도 잘 듣고 잠도 잘 자다니. 특히 서윤이가 기특했다.


아이들이 꽤 빠른 시간에 들어가서 누웠기 때문에 나도 부지런히 움직였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리석게도 그러지 않았다. 피곤을 핑계 삼아 한참을 소파에 누워서 시간을 흘러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