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1(화)
아내는 오늘도 아침부터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자녀들의 다툼, 시윤이의 변화무쌍한 태도 등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기도해 달라고도 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찬양을 듣고 있다고도 했고. 바빠서 메시지도 제대로 못 읽고 나중에 차근차근 읽었다.
오후에 잠시 집에 들러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하고 있는 일에 필요한 사진을 찍어야 했다. K의 첫째도 함께 했다. 꽤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전문가가 아닌데 제법 그럴싸한 사진을 찍어야 하는 K와 나도 힘들었지만, 연출된 사진을 위해 자세와 표정을 연기해야 하는 아이들도 힘들었을 거다. 그렇다고 어디 스튜디오에 가서 찍고 그런 건 아니라 노는 기분이었을 거다. 함께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 K의 둘째나 나의 막내 서윤이를 생각하면, 복에 겨운 고생이었다. 서윤이는 오늘도 혼자 남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서윤아. 아빠가 선물 사 올게. 뭐 사 올까?”
“으응?”
“선물. 서윤이 무슨 선물 받고 싶어?”
“케끼”
“어? 뭐?”
“케끼이”
“뭐라고? 아빠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네”
“케끼이”
옆에서 듣고 있던 서윤이가 번역해 줬다.
“아빠. 케이크 말하는 거에여”
서윤이에게 케이크를 사 오겠다고 약속하고 나왔다. 마지막에 카페에 있었는데 나오면서 쿠키와 브라우니를 하나씩 샀다. 함께하지 못한 서윤이와 K의 둘째를 위한 선물이었다.
저녁을 K네 식구와 함께 먹기로 했다. 장모님이 불고기를 해 먹으라고 재료를 잔뜩 보내셨는데 우리 가족만 먹어서는 한참 걸릴 양이었는지 아내가 K네 식구와 함께 먹자고 했다. K의 아내와 나머지 자녀는 우리(나와 소윤이, 시윤이, K, K의 첫째)보다 먼저 우리 집에 가 있었다.
어른 입이 네 개, 아이 입이 여섯 개(K의 막내의 입은 아직 한 개로 치기에는 과하지만)니까 항상 한 솥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고기보다 야채가 월등히 많은, 야채 전골에 고기가 살짝 곁들여진 불고기 전골이었다. K의 막내는 이제 옹알이가 다양해졌다. 그 말인즉, 자기 주장과 고집도 세졌다는 말이다. 오늘은 아기 의자에 앉지 않겠다면서 계속 울었다. 여러 먹거리와 장난감으로 유혹을 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K와 그의 아내가 번갈아 가면서 안고 먹였다. 동시에 자리에 앉아 있었던 순간이 거의 없었다. 그냥 ‘분주함’, ‘정신없음’ 그 자체였다.
역시 착각이었나. 요즘 서윤이가 더 어릴 때 사진을 보면서 ‘아, 이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정말 자주 하는데, 좋은 기억만 남아서 착각하는 건가. 어쩔 수 없는 망각의 동물인가. 타 죽는 걸 알면서도 뛰어드는 불나방인가. K와 그의 아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니 ‘굳이 그 때로 안 돌아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밥 먹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도 사 줬다. 원래 집에 오기 전에 사 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사 주려고 했던 가게가 이미 문을 닫아서 못 사 줬다. 아이들이 잊었으면 그냥 오늘은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는데 아이들이 몇 번이나 물어봤다. 어른은 망각의 동물이고 아이는 기억의 동물인가 보다. 집 앞 편의점에 가서 투게더를 샀다. 그릇에 큰 두 숟가락 정도씩 덜어줬다. 카페에서 사 온 브라우니와 쿠키도 함께 넣어줬다.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성분을 보면 안 사 주는 게 맞는데, 아이들이 먹는 걸 보면 몇 번이고 더 주고 싶다.
오늘도 한 팔로 열심히 애벌 설거지를 하고 그릇들은 식기 세척기에 넣었다. 손목의 통증은 많이 사라지고 근력도 꽤 회복됐지만 깁스가 젖으면 안 되니까 물이 닿는 일은 할 수가 없다. 완전한(?) 설거지는 하기가 어렵지만 애벌 설거지 정도는 한 팔로도 충분하다. 그 사이 아내는 아이들을 씻겼다. 그러고 보니 서윤이의 똥과 오줌 분출이 조금 줄어든 것 같다. 물론 내가 없는 낮 시간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나 보다.
모든 걸 다 마치고 나니 엄청나게 피곤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라도 일찍 자려고 했는데 결국 비슷한 시간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