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3(목)
일을 하루 쉬고 대구에 가야 했다. 대구에서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오전에 모이기로 한 거라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이들은 아내가 밥에 김을 싸서 아침으로 먹였다. 아내와 나는 김밥을 사서 차에서 먹었다. 바쁘긴 했어도 평일에,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약간 여행 같았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무서운 경보음이 울렸다. 계기판에서는 빨간 등이 번쩍였다. 냉각수 온도를 표시하는 바늘이 미친 듯 날뛰었다. 그러고 보니 냉각수 경고등이었다. 뭔가 타는 냄새도 나기 시작했다. 달리던 중이라 너무 당황했다. 다행스럽게도 2km 앞에 휴게소가 있었다. 일단 거기로 들어가서 차를 세웠다. 보닛을 열어 봤더니 냉각수가 샜는지 엔진룸에 온통 물이었다. 냉각수 통은 거의 비어 있었다. 아내도 나도 얼떨떨했다. 30분 가량 사고가 마비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지”
만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의 카센터를 찾아봤다. 또 다행스럽게도 마침 우리 차의 제조사 수리센터가 근처에 있었다. 거기 전화를 해서 임시 조치로 수돗물을 붓고 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당연히 확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다 불이 나면 큰 일이니까.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기도 했고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렇게 했다. 수돗물을 냉각수 통에 부었더니 바로 줄줄 샜다. 어디에서 누수가 되는지는 확실히 알게 됐다. 최대한 새지 않도록 이음새 부분을 조이고 출발했다.
무사히 도착했다. 기사님은 일단 냉각수 통을 바꾸면 될 거 같다고 하셨다. 다만 거래하는 부품 업체에 재고가 없어서 다른 부품 업체에 있는지 문의를 했는데 만약에 없으면 내일 찾으러 와야 한다고 했다. 한 5분 뒤에 답변을 들었다.
“아, 없다는데요”
“그럼 내일 수리가 되는 거죠?”
“네”
수리에 관해서는 선택하고 말고의 여지가 없었다. 대구까지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였다. 대구에 가는 걸 취소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버스, 기차, 렌터카 등의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검색하고 나서 결정을 했다. SRT를 타고 동대구역에 가서 대구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울산역에서부터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가기에 결코 만만한 건 아니었지만 기왕 그렇게 된 거 즐기기로 했다. 화창하고 맑은 날씨가 세뇌를 도왔다.
“얘들아, 그냥 여행이라고 생각하자. 덕분에 기차도 타고 대구 지하철도 타잖아. 날씨도 너무 좋고”
나도 억지가 아니었고 아이들도 즐겁게 반응했다. 올 때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대구까지 가는 건 금방이었지만 거기서부터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게 꽤 힘들었다. 재밌었지만 힘들었다. 2시간 여의 긴 여정 끝에 목적지 근처에 내렸다. 원래 만나서 점심을 먹는 거였는데 우리는 늦어서 함께 먹지 못하고 따로 먹었다. 분식집에 들어가서 돈까스와 라볶이, 오므라이스를 시켰다. 맛은 없었지만 다들 너무 배가 고파서 맛있는 것처럼 잘 먹었다.
모임은 계속 실내(교회)에서 진행됐다. 힘들거나 애를 쓸 일이 전혀 없었다. 딱 하나, 서윤이의 배변만 빼면. 오줌이야 어느 정도 때가 되면 먼저 데리고 가면 됐지만 똥은 그게 아니었다. 마침 서윤이는 방귀를 분출하며 거사가 임박했다는 걸 알렸다. 아내가 몇 번이나 화장실에 데리고 갔지만 결국 싸는 건 실패했다. 아내는 그냥 기저귀를 채웠고, 얼마 안 돼서 거나한 게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른 언니(누나), 오빠(형)들과 놀았다. 뭘 하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깔깔거리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저녁도 먹었다. 찜닭을 배달시켜서 먹었는데 우리 가족은 점심이 부실했던 탓인지 다들 잘 먹었다. 아이들도 아내도, 나도.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가족별로 따로 먹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가족과 함께 먹었으면 우리가 너무 잘 먹어서 민망할 뻔했다.
다 끝나고 나니 가는 길이 걱정이었다. Y네가 우리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너무 비효율적인 동선이었다. 가는 길도 아니고 오롯이 우리 때문에 2시간이나 더 소모해야 했다. 한사코 거절했는데 기어코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결국 울산역까지 얻어 탔다. 진심으로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 거절한 거였지만, 덕분에 너무 편하게 오긴 했다. 갈 때처럼 환승에 환승을 거듭해야 했다면 몇 배는 더 큰 피로가 쌓였을 거다. 울산역에서 집까지도 한 시간이었다. 버스를 탔는데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물론이고 아내도 잠들었다. 내려야 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10분 정도 걸어야 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눕혔고 시윤이와 소윤이는 필사적으로 깨웠다.
언제나 집은 천국이었지만, 오늘은 더 강력하게 천국이었다.
“와 소윤아, 시윤아. 집 너무 좋다. 그치?”
“맞아여”
오늘 하루가 새삼 놀라웠다. 차가 갑자기 그렇게 된 것도, 그 와중에 대구까지 다녀 온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