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7(월)
아내가 나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어제 자기 전에 꼭 깨워 달라고 했다. 오늘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나와 함께 큐티를 할 거라고 했다. 아내가 아침에 늘어지게 자는 편은 아니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그렇다고 그토록 일찍 일어나는 게 쉬운 사람도 아니다. 나름대로 큰 결단을 한 거다. 내 아침을 챙겨 주겠다거나 그저 나를 배웅하기 하기 위한 이유였다면 깨우지 않았을 거다. 과연 그렇게 일찍 일어나고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일단 깨웠다.
이제 아내와 둘이 자기 때문에 알람 소리에 그렇게 예민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이들이 알람 소리에 깰 일이 없으니) 여전히 그러고 있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알람 소리가 울리자마자 바로 껐다. 아내는 의지가 강했는지 내가 두어 번 몸을 흔드니까 바로 눈을 떴다.
“알람 울렸어?”
“어, 울렸지”
“난 전혀 못 들었네”
아내와 함께 소파에 앉아 큐티 책을 펴고 묵상을 시작했다. 아내는 한 번씩 꾸벅꾸벅 졸았다. 안쓰러웠다. 아이들이 한 두세 시간 있다가 일어난다고 하면 그 사이 잠깐 다시 눈을 붙이겠지만, 나의 자녀들은 그럴 리가 만무하다. 더군다나 처치홈스쿨을 하는 날이었다. 피곤을 이기는 데 혹은 잊는 데 처치홈스쿨을 하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집에 있는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뭔가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하루였다. 아내가 짠해 보이긴 했어도 같이 아침 시간을 보내니 좋긴 했다. 오늘은 웬일로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모두 깨지도 않았다.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했다.
집에서 나온 지 한 시간도 안 됐을 때
“오늘의 1번은 강서윤”
이라며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피곤에 허덕이는 느낌은 아니었다. 서윤이는 콧물과 기침은 여전했지만 기분은 좋다고 했다. 확실히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직 잔다고 했다. 지난 주말에 열심히 놀아서 피곤했나 보다.
함께 일하는 K가 퇴근하는 길에 삼겹살을 사 간다고 했다. 맛있어 보였다. 아는 집사님이 사 주신 고기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도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오늘 저녁은 뭐죠?”
“그러게. 새싹비빔밥을 먹고 싶은데 메인이 없네. 참치?”
“고기 구워 먹을까?”
“사서?”
“소고기?”
“소고기가 있어요?”
“미국산 소고기. 다 먹었나?”
“아. 얼마 없는데. 점심 메뉴로 하나 썼고. 부챗살 200-300g 정도?”
“아 그럼 그냥 풀떼기 아니 새싹비빔밥 먹어요”
고기를 사서 구워 먹을 정도의 열정은 없었다. 아이들은 냉장고에 있던 순살 치킨도 잘라서 넣어줬다. 아내와 나는 참치를 넣었다. 아내가 계란 프라이도 했는데 네 개만 했다.
“아 맞다. 우리 다섯 명이지”
나도 그럴 때가 많다. 유독 계란 프라이를 할 때 그런 착각을 자주 한다. 지금 쓰는 프라이팬에는 계란 다섯 개를 올리지도 못한다. 나는 계란 따위 안 먹어도 되니 아내에게 먹으라고 했는데 아내는 한사코 나에게 계란을 줬다. 홀로 있는 계란은 그저 닭의 알일 뿐이지만 비빔밥의 계란은 용의 머리와 같은 것인데, 그걸 기꺼이 넘겨 주다니. 아내의 사랑을 확인했다.
서윤이는 상태가 좀 나아졌는데 시윤이가 마치 서윤이처럼 콧물을 흘렸다. 나도 비슷했다. 소윤이는 원래 그렇고. 오히려 아내가 비염이 사라졌다. 최근에 한참 비염을 달고 살았는데. 아무튼 다들 정상이 아니었다. 큰 일교차를 동반하는 환절기의 영향인 듯했다.
엄청 피곤했다. 항상 ‘엄청’ 피곤해서 굳이 엄청 피곤하다는 걸 언급하는 게 다소 민망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독 더 엄청 피곤했다. 저녁 먹고 쏟아지는 잠을 어떻게 하지 못해서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 자야겠다는 의지가 발동되기 전에 몸이 알아서 잠으로 이끌었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아내가 모든 마무리를 다 했다. 밥 먹은 거 치우고 그릇 씻는 것부터 아이들 씻기는 것까지. 아이들은 퇴근한 아빠와 밥만 함께 먹고 (그나마도 난 먼저 먹고 일어섰다) 아무것도 함께 하지 못하고 바로 눕게 됐다. 소윤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왜 미안하냐고 물었다. 아빠가 퇴근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소윤이는 역시나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아여. 아빠”
‘내일은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들하고 조금이라도 놀아야지’
라는 비겁한 다짐만 했다.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고 나서.
바로 자고 싶었지만 할 일이 많았다. 아내에게도 부탁할 일이 있었다. 선물을 포장해야 했다. 포장지가 넉넉하지 않은 탓에 아내는 정확한 재단을 거친 후에 포장을 했다. 아내답다고 생각했고 아내여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했으면 보나마나 포장지가 모자랐을 거고 그나마도 허접스러웠을 거다.
“여보. 미안하네”
“뭐가?”
“아, 계속 잠만 자다가 밤에는 일까지 시켜서”
물론 아내는 ‘기꺼이’, ‘싫은 티 안 내고’ 내 일을 대신 해 줬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비빔밥의 계란을 양보하는 부부의 사랑이다. 이 신혼 애송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