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8(화)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아내가 스웨터를 하나 던져줬다. 스웨터가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콧물이 반응했다. 중동의 기름처럼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오전과 낮에는 야외에서 일정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때는 좀 나았다. 자연의 바람과 볕을 쬐는 게 비염 완화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느낌으로는 괜찮았다. 야외 일정을 마치고 실내에 들어오니까 또 폭발했다.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께와 어저께 내내 퇴근하고 나서도 조느라 아무것도 못 한 게 미안해서 오늘은 힘을 냈다. 아내는 무척 힘들어 보였다. 너무너무 힘들다고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도 안 힘들고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표정과 움직임이 대신 말해줬다. 낮에 애들을 데리고 근처 공원에 나갔다가 금방 들어왔다고 했다. 그때 아내가 보낸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여보 시윤이가 지맘대로라 그냥 들어옴”
‘자기’도 아니고 ‘지’라고 표현한 것이 아내의 마음과 현재 상태를 대변했다. 계속 자기 멋대로인 시윤이를 상대하는 것도, 그런 시윤이와 엄마 사이의 긴장을 보며 더불어 긴장하는 소윤이가 안쓰러운 것도 모두 아내를 지치게 하는 요소였다. 거기에 불시에 똥을 갈겨대는 서윤이까지.
“여보. 오늘 나갔다 와”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면 외출이고 뭐고 별 기대도 욕망도 안 생기게 마련이다. 반 강제로 떠밀듯 아내를 내보냈다. 아내는 주방에서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 나갔다. 나가고 보니 그릇이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게 애벌 설거지만 한 건지 아니면 아예 설거지를 마친 건지 알기 어려웠다. 애벌 설거지만 한 거였다면 식기세척기에 넣었을 텐데 모르니까 그냥 뒀다.
아이들 하고도 열심히 놀았다. 몸으로도 놀고 입으로도 놀고 책도 읽고.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다. 나의 코 고는 소리로 가득 찼던 어제와 다른 풍경이었다. 오늘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의지를 냈다. 역시 사람은 의지의 동물이던가. 의지의 원천이었던 아이들을 자리에 눕히고 나니 거짓말처럼 의지가 사라졌다. 소파에 드러누워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아마 좀 졸기도 했던 거 같다.
아내는 친구와 함께 카페에 갔다. 아내는 친구와 함께 먹고 남은 조각 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우리 집에 화분이 몇 개 있다. 소윤이가 애정을 가지고 기르는 화분인데 한참 물을 안 주면 줄기며 이파리며 힘을 잃고 추욱 늘어진다. 그러다 물을 조금이라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줄기와 이파리에 힘을 딱 주고 꼿꼿하게 선다. 아내가 딱 그 모양이었다. 나갈 때는 오랫동안 물을 받지 못한 식물처럼 힘이 없더니, 들어올 때는 물을 받은 식물처럼 빳빳했다.
아이들을 따로 재우기 시작한 뒤로는, 아내가 나가도 내가 할 일이 특별히 더 많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나에게 고맙다면서 외출의 공로를 나에게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