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별로였으나 끝은 좋았던 나들이

22.10.20(목)

by 어깨아빠

처치홈스쿨 식구들과 경주로 나들이를 갔다. 아내는 아침 일찍부터 도시락을 쌌다. 우리 가족이 먹을 건 물론이고 다른 가족과 나눠 먹을 양까지 챙겼다. 덕분에 아내는 출발하기도 전에


“아, 되다”


라며 지쳤다. 난 어제 감기 약을 먹고 싹 낫기를 바랐는데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뭔가 찌뿌둥했다.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점심시간이 안 됐을 때 불국사에 도착했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기대하고 갔는데 아직 푸릇푸릇했다. 게다가 평일이라는 걸 잊게 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경상권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보다 서울말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 불국사가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관광지라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오히려 엄청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기대했다. 그래도 요즘은 날씨가 웬만한 허물을 덮는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앉아서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있었다. 세 가정이었는데 아이는 여덟 명이었다. 아내는 아이들 챙기느라, 어른들에게 반찬 나누느라 첫 술을 뜨는 게 오래 걸렸다. 아내의 소시지와 볶음김치는 매우 인기가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한 보람을 느낄 만했다.


시윤이는 집에서 나오기 직전에 꽤 오래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길게 걸릴 일은 아니었다. 싫은 소리를 들은 시윤이가 보이는 태도와 표정 때문에 길어졌다. 시윤이는 온 몸으로 ‘반항’을 표현했다.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었더라도 부적절한 태도였을 텐데 심지어 마땅한 이유도 없었다. 그냥 ‘반항(은 너무 거창해서 내 아들을 폄훼하게 만들지만)’이었다. 최근에 몇 번 관찰하기는 했다. 꼭 다뤄 주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한참 얘기를 했다. 표정만 봐도 어느 정도는 판단이 된다. 시윤이가 표정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면.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말을 잘 안 들었다. 너무 신이 나서 흥분을 주체 못 하는 듯했다. 거기에 내 상태도 별로였다. 좋지 않은 몸 상태는 곧 낮은 포용력으로 귀결된다. 특히 시윤이에게 집중됐다. 장소도 안 좋았다. 온갖 문화재가 가득한, 행동을 삼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 곳이었는데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 만지고 올라 가려고 했다. 제재와 잔소리의 연속이었다. 반복되는 잔소리는 곧 감정의 배출로 이어진다. 불국사에서는 계속 그랬다.


불국사에서 대릉원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가 아내에게 넘겼다. 너무 졸렸고 아내가 운전하는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잤다. 자고 나서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참기 어려운 잠이었다. 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지만 정상도 아닌 이상한 기분이었다.


대릉원으로 옮기고 나서부터는 아이들에게 잔소리 할 일이 없었다. 무덤 위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정도 말고는 지켜야 하는 규칙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넓은 잔디밭을 마음껏 뛰놀았다. 줄넘기도 하고 간식도 잔뜩 먹고. 어른들에게도 비로소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 불국사에서 못다 이룬 고즈넉한 시간을 대릉원에서 완성했다.


저녁은 황리단길에서 먹었다. 사람이 무척 많았다. 경주는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는 초특급 관광지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한옥의 정취를 빌려 번쩍번쩍하고 화려하게 구성한 거리 자체가 엄청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번화가에 있는 듯한 기분은 꽤 괜찮았다. 초대형 쇼핑몰과 초대형 가구 쇼핑몰이 지척인 곳에서 몇 년을 살았던 덕인지, 아파트 숲에 갇힌 도시의 삶이 그렇게도 답답하더니 한 번씩 도시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나중에 아내와 둘이 와서 걷고 싶거나 들어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저녁으로는 갈비찜을 먹었다. 가격 대비 양이 적은 음식이라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양이 풍성했다. 아이들도 배부르게 먹고 나도 배부르게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너무 잘 먹어서 함께 간 다른 가족이 음식을 나눠줬다. 그렇게 먹고도 살이 안 찌는 게 신기하다. 그만큼 많이 움직이고 자라는 데 쓰여서 그런가. 나도 그런 기초 대사량을 가지고 싶다.


아주 오래된 문구점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작은 선물을 하나씩 사 줬다.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소박한 2000-3000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팽이, 장난감, 불량식품 등을 골랐다. 오늘도 아침 일찍 나와서 해가 지도록 놀았다.


집에 오니 열 시가 넘었다. 엄청 피곤했다. 항상 그렇듯 기분은 무척 좋고 즐거웠는데 피로감도 하늘을 찔렀다. 불국사에서의 시간만 조금 힘들었고 나머지는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오는 길에 모두 잠들었다. 서윤이만 그대로 눕혔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깼다. 안 깼어도 깨웠을 거다.


아이들을 씻겨서 눕히고 아내와 나도 바로 누웠다. 뭘 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