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지나간 공원 사태

22.10.21(금)

by 어깨아빠

“시윤이 재움”


오후 두 시가 넘어서 온 메시지였다. 보통 낮잠을 자지 않는 시윤이를 굳이 재웠다는 건, 그 전까지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었다. 피곤으로 인한 짜증과 억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는 걸, 묻지 않고도 알았다.


오늘도 피곤은 여전했다. 일이고 뭐고 당장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었다. 물론 그러지는 않았다. 시윤이의 낮잠 덕분에 아이들 점심이 늦어졌는지, 아이들은 아주 늦은 점심을 먹어서 아내와 나만 저녁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아내는 나에게


“오징어볶음? 제육볶음? 뭐가 더 먹고 싶어요?”


라고 질문을 했다. 바로 답장을 했다.


“돈까스>제육>>>>>>>>>>>>>>>>>>>>>>>>>>>>>오징어. 오징어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 참고하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달려와서 얘기했다.


“여보. 배 많이 고파요?”

“그냥 보통?”

“여보. 잠깐 애들 데리고 둠뫼공원 갈 수 있어요?”

“지금? 나 혼자?”

“네. 아, 너무 피곤한가?”


약간 할 말을 잃었다. 아직 신발도 벗기 전이었다. 다소 기분이 상했다고 해야 하나. 아내도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피곤하면 괜찮다며 철회했지만 그 상황에서 피곤하다며 눕는 것도 이상했다. 아이들에게 옷을 입으라고 하고 데리고 나왔다. 아내도 나름의 이유와 상황이 있었다. 원래 아이들과 나가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없어진 거다. 아마 오늘은 ‘상황을 봐서’라는 조건을 붙이지 않고 단단히 약속을 했던 거 같다.


피곤하기도 했고, 화가 나려고 하기도 했다.


‘내가 놀고 온 것도 아닌데 그렇게 다짜고짜 얘기하는 게 타당한 건가’

‘일하고 와서 아이들과 노는 걸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채웠다. 아내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차라리 나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애를 쓰는 게 나아 보였다. 시윤이가 아주 어렸을 때도 오늘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아내는 퇴근한 나에게, 시윤이가 똥을 쌌으니 그걸 좀 치워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는 내가 대뜸 짜증을 냈다. 아내와 나의 ‘다툼사’에서 손에 꼽힐 만한 제법 큰 다툼으로 번졌다. 그 날을 생각하며 마음을 조절했다. 아내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는 생각과 함께 그냥 재밌게 놀고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버무렸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어두컴컴한 공터에서 줄넘기도 하고 이리저리 오르고 뛰며 놀았다. 조금도 책임(?)이 없는 자녀들에게 나의 감정이 흐르지 않도록 계속 신경을 썼다. 그 덕분인지 오히려 아이들 노는 걸 보니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하루 종일 한 번도 못 나가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자녀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며칠 전만 해도 줄넘기를 전혀 못 하던 소윤이가 오늘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자세는 영 엉성해도 요령을 터득해서 스무 개를 넘게 했다. 시윤이는 아직 전혀 못하고, 서윤이도 마찬가지다. 다만 서윤이는 자기가 줄넘기를 엄청 잘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땅따먹기도 했는데 시윤이의 실력 향상에 적잖이 놀랐다. 누나와 자웅을 겨룰 정도의 규칙 이해도와 실력을 갖췄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규칙 파괴자에 불과했는데. 꽤 놀고 귀가했다.


그렇다고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몸은 피곤했고, 마음은 서운했다. 아내와 나는 제육볶음을 먹었고 아이들은 과일과 떡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더 진한 피로가 느껴졌다. 소파에 앉자마자 눈이 감긴 것 같다. 교회에 가야 해서 아내는 아이들을 준비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결에도 소리는 다 들었지만 눈이 떠지지는 않았다. 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되도록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여보. 집에서 쉴래? 우리끼리 갔다 올까?”

“아니야. 이제 정신 차리면 돼”

“아니면 다 같이 쉬던가”

“아니야. 가야지. 지난주에도 안 갔잖아”


다행히 움직이고 밖으로 나가니 조금 잠이 달아났다. 교회에 가서 엄청 졸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도 바로 자지는 않았다. 여전히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금요일 밤이니 그렇게 바로 자는 건 싫었다. 너무 피곤한 게 영 이상해서 좀 찾아 봤더니 근육 이완과 관련된 약을 먹으면 부작용으로 간 기능 이상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손목 때문에 한참 동안 근육 이완 약을 먹었다. 진짜 그것 때문인가. 차라리 그런 거라면 다행이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피로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