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2(토)
의지를 가지고 늦게까지 잤다. 일단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야 피로가 줄어들까 싶어서 그러긴 했지만, 역시나 아이들이 깨서 노는 아침 시간의 수면의 질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잔 사람이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오랜만에 아무 일정이 없는 토요일이었다. 집에서 쉬기로 했다. 베란다로 내다 본 하늘이 새파란 게 오늘도 날이 좋은 듯했지만, 참기로 했다. 나도 아내도, 그리고 아이들도 오늘은 쉬어야 했다. 첫 끼로 아이들은 소고기를, 아내와 나는 떡볶이를 먹었다. 점심에 가까운 아침이었다.
아내는 아침을 먹고 나서 책을 읽었다. 얼마 전에 중고서점에 갔을 때 갑자기 좋은 문학 도서를 읽고 싶다고 했고,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라는 책을 샀다. 그 책을 펼쳐서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재밌다고 했는데 잠들었다. 퇴근한 나처럼, 소파에 앉아서 고개를 15도 정도 기울이고 잠들었다. 꽤 한참.
아이들은 방에서 놀았다. 자기들끼리 그림도 그리고 색종이로 뭘 만들기도 하고 그랬다.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 틈에서 잘 놀았다. 요즘 자꾸 언니와 오빠에게 소리를 질러서 혼이 나기는 하지만 대체로 잘 논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많이 받아주는 편이다. 소윤이는 거의 다 받아주고 시윤이는 야박할 때도 많고.
늦게 일어난 만큼 금방 점심시간이 됐다. 따로 점심을 먹지는 않았다. 아침이 워낙 늦어서 점심은 걸러도 무방했다. 서윤이가 졸려 하길래 아내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난 안 잠들겠다. 많이 자서”
소파에서 많이 잔 덕분에 낮잠 재울 때 같이 안 자겠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서윤이와 함께 나왔다. 서윤이가 낮잠을 자는 내내 아내도 같이 잤다. 아내도 적잖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서윤이가 자는 동안 시윤이는 자동차 장난감 통을 꺼내 달라고 했다. 항상 다툼의 원인이 됐기 때문에 시윤이에게 다시 다짐을 받았다.
“시윤이가 자동차 가지고 놀다가 서윤이가 깨서 나오면 어떻게 할 거야?”
“같이 할 거에여”
“서윤이가 와서 시윤이가 만든 거 다 망가뜨리면?”
“괜찮아여”
“짜증 안 낼 수 있어?”
“네”
“진짜?”
“네”
서윤이는 깨자마자 언니와 오빠가 놀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윤이의 덱덱거리는 소리와 시윤이의 친절하지 않은 말투가 들렸다. 한두 번 불러서 시윤이에게는 아까의 다짐을 상기시켜 주고, 서윤이에게는 오빠에게 버릇없이 하면 혼이 날 거라고 얘기했다. 그 뒤로도 작은 다툼의 소리가 들렸지만 적당히 넘어갔다.
저녁에는 잠깐 나가기로 했다. 중요한 이유는 아내의 빵 욕구였다. 지난 번에 먹었던 롤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다. 시내에 있는 곳이니 바람도 쐴 겸 나가서 저녁도 먹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 생일에 갈 뻔했다가 못 갔던 공원에도 가자고 했다. 다 근처에 있는 곳이니 가 보기로 했다.
먼저 저녁부터 먹었다. 돈까스 가게였는데 모두 배불리 먹었다. 모두 배불리 먹었다는 건, 그만큼 결제 금액도 컸다는 거다. 아내는 생일에 받은 자기 용돈에서 지출을 하겠다고 했다. 아내가 유일하게 ‘용돈’이라는 걸 구별해서 가지고 있는, 1년 중에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왔다.
돈까스가 아이들과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이제 아내를 위한 시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빵집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재료가 모두 소진되어…’
아내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나도 아쉽긴 했다. 그 롤 케이크가 정말 맛있었다. 일단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줄넘기에 열심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윤이는 열심히 했고 시윤이는 그냥 놀았다. 서윤이는 오늘도 자기가 줄넘기 신동이라고 착각을 했을 거고. 소윤이는 오늘도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무려 서른 한 개를 넘었다. 소윤이가 약간 이런 면이 있다. 별로 의욕이나 욕심이 없어 보이는데 마음을 먹으면 독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사실 오늘 서른 개를 넘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않았는데 끝낼 듯 끝낼 듯 아슬아슬하게 한 개씩 더 넘더니 결국 기록을 세웠다. 건강한 실패와 도전을 경험하기에, 운동은 아주 효과적인 도구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나도 아이들 줄넘기를 최대로 늘려서 같이 했다. 아내와 나의 줄넘기도 사서 제대로 같이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원하던 빵집에 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내는 공원 근처의 다른 카페를 검색했다. 왠지 커피가 엄청 맛있을 것 같은 곳이라고 했다. 갑자기 찾아낸 곳이었지만 큰 기대를 품고 갔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 보다. 거기도 문이 잠겨 있었다. 주말에는 일찍 닫는 곳이었다. 아내는 빵집에서와 비슷하게 실망했다. 문을 연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아내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빵도 하나 샀다. 집에 가는 길에 몇 입 먹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내일 애들 줘야겠다”
맛있는 건 자녀들과 함께 있어도 몰래 먹곤 하는 아내가, 기꺼이 아이들을 위해 얼마 먹지도 않은 걸 남겨 준다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아내는 주말이면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최근 몇 주는 영화고 뭐고 생각이 안 날 만큼 바쁘거나 피곤했다. 모처럼 별 일 없는 주말을 맞으니 또 영화 생각이 나는 듯, 어제도 아쉬워했다.
“아, 영화라도 보면서 놀아야 하는데”
영화도 영화지만 아이들 재우고 뭔가 더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했다. 아이들 씻겨서 눕히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나니 영화를 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대신 ‘유퀴즈온더블록’을 제안했다. 모처럼 과자도 먹고.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서 영화를 봤어도 큰 차이가 없을 만한 시간에 끝났다.
피로를 생각하면 오늘도 일찌감치 자야 했지만, 사람이 꼭 잠으로만 쉬는 것이 아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