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5(화)
늦게 퇴근했다. 밤 열 시가 넘어서. 아내가 보내 준 몇 장의 사진으로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 아내는 아이들 사진과 함께 집안일 사진도 보냈다. 널브러져 있던 마른 빨래들을 말끔하게 갠 사진이었다. 아내는 엄청 수고스러운 집안일을 하고 나면 종종 이렇게 사진을 보낸다. 너무 뿌듯한데 자랑할 데가 나밖에 없다고 했다. 나도 열심히 이모티콘을 찾아서 보냈다. 아내의 수고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의미로.
“이모티콘 뭐지?”
아내가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왜 그러나 싶어서 다시 봤더니 손뼉 치는 이모티콘이 아니라 비는 이모티콘이었다. 아내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대충 보냈구나”
퇴근했을 때는 당연히 아이들이 모두 자고 있었다. 아내는 화장실 청소도 엄청 깨끗하게 했다. 역시나 너무 뿌듯한 듯 나에게 계속 ‘티가 나는지, 많이 깨끗해졌는지’를 물어봤다. 내가 느끼기에도 정말 깨끗했다.
아내는 잠옷이었다. 잘 시간이 되었으니 잠옷으로 갈아입은 건 아닌 듯했다. 어제 입은 잠옷을 벗을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저녁에는 잠시 외출하는 것 때문에 소윤이와 일이 좀 있었다고 했다. 소윤이는 잠깐이라도 동네 공원에 나가고 싶어 했고, 아내는 ‘시간이 되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확답을 주지는 않았다고 했다. 웬만하면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보다는 못 나가게 되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지 말라는 의미가 더 강한 단서였다. 소윤이는 몇 번이나 아내에게 ‘가기로 결정하면 이야기 해 달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공원에 나갈 시간도 체력도 고갈이 됐고, 아내는 소윤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소윤이는 정색을 하면서 혹은 퉁명스러운 태도로 반응을 했다. 아내는 그런 소윤이를 보고 진심으로 서운하고 감정이 상했고. 하루 종일 화장실 청소에 빨래에 삼시 세 끼 챙기고, 서윤이 똥과 오줌도 치우고. 몸이 두 개여도 모자라게 보냈는데 그걸 이해 못 해주는 딸이 서운했을 거다. 인간 대 인간으로.
소윤이는 소윤이 나름대로 서운했나 보다. 아내가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갈 때마다 함께 잠드는 게 싫었는지 아예 서윤이 낮잠 시간이 되기 전에 아내에게 좀 자라고 했다는 거다. 아내도 소윤이가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지 (서윤이가 낮잠 자는 동안 조금이라도 오붓하게 엄마와 보내고 싶은) 알기도 하고, 언제든 잠깐의 수면은 대환영이기도 하니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소윤이는 엄마가 자는 동안 동생들이 엄마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했다. 비위도 맞춰 주고 해 달라는 거 해 주고. 그런 언니의 마음도 몰라 주고 서윤이가 결국 아내가 누운 방으로 달려가자 소윤이도 뒤쫓았다. 서윤이는 방문을 벌컥 열고 엄마를 깨웠고, 급히 쫓아오던 소윤이는 속상한 마음에 서윤이의 등을 내려쳤다고 했다.
폭언이나 폭력은, 우리 집에서 아주 무거운 죄질로 여기는 행동이다. 소윤이는 자기가 잘못한 건 인정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하다고 했다. 무슨 마음인지 알 듯했다. 얼마나 야속하고 얄미웠을까 싶다. 평소에도 어찌나 언니 말을 안 듣고 깐족거리는지. 소리는 덱덱거리며 지르고. 아내도 그런 소윤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니까 무작정 훈육을 하지는 않았고, 소윤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위로도 해 주고.
소윤이가 아내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서 서윤이에게 사과를 했는데, 서윤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자발적 사과로 답했다.
“언니이. 나도오 언니가 엄마 깨우디 말라고 했는데 달려가더 깨워더 미안해에”
너무너무 소윤이 같다. 다 알고 있다. 영악한 녀석이다. 내가 보기에는 현재 우리 집에서 가장 마음 고생을 안 하고 지내는 녀석이다. 가장인 나도, 육아의 수장인 아내도, 맏이의 숙명을 지닌 소윤이도, 셋 중에 가운데인 시윤이도 다 각자의 고민이 있을 텐데, 서윤이만 천하태평이다. 배변 훈련하느라 마음 고생하고 있으려나.
항상 몸을 흥건하게 적시는 육아의 비에, 집안일 태풍까지, 거기에 관계의 파고까지 겪은 아내는 많이 피곤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