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6(수)
오늘도 교회에서 일을 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수요예배를 드리러 왔다. 혹시 아내에게 나의 도움이 손길이 필요할까 싶어서 출발할 시간 즈음에 연락을 했다.
“데리러 갈까?”
“괜찮아요. 오고 가는 시간 걸리잖아요. 오고 싶으면 와도 좋고”
애매한 답변이었다.
“뭐지?”
“필요 없단 뜻의 거절은 아니라는 의미?”
“몇 시쯤 출발이 가능한가요?”
“10시 10분 출발 예정”
물어보기만 하고 가지는 못했다.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없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K와 함께 커피를 사러 갔다 왔다. 카페에 들어서는데 빵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갓 구워 낸 휘낭시에가 오븐 앞에 놓여 있었다. 하나를 사서 K와 나눠 먹고, 엄마 선생님을 위한 휘낭시에도 세 개를 샀다. 한 사람 당 한 개였다. 아이들의 눈을 피해 전달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걸리면, 주지 않으려면 매정해야 했고 주려면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심정으로 나눠야 했다. 최대한 비밀스럽게 전달하려고 했는데, 한 명의 자녀가 남편들과 아내들의 비밀 접선을 예의주시 했다. 소윤이였다. 같은 공간에서 소윤이의 눈과 귀를 피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K와 나는 교회에서 일을 더 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먼저 집으로 갔다. 아내는 저녁에 성경 공부가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밥을 먹거나, 아내가 일찍 나가거나, 아니면 다 함께 밖에서 밥을 먹고 아이들과 나만 일찍 돌아오는 식으로 아내에게 시간을 더 주려고 했는데, 어영부영 지나갔다. 오히려 아내는 저녁을 먹고 나서 최대한 이런저런 일을 해 놓고 가기 위해서 바빴다.
어제 공원에 가지 못해서 아쉬워 했던 소윤이를 생각하면 공원에 나가고 싶었지만 저녁을 먹고 나니 갑자기 너무 피곤했다(‘갑자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색하네). 소윤이도 공원에 가서 줄넘기가 하고 싶다면서 몇 번이나 공원에 나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매우 예의를 갖춰서. 마음은 너무나 수락하고 싶었지만, 몸이 안 따라줬다.
“소윤아. 오늘은 안 되겠어. 오늘은 너희도 나갔다 왔잖아. 조만간 꼭 가서 줄넘기 하자”
시윤이는 저녁 먹기 전에 훈육의 시간을 좀 가졌다. 시윤이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소윤이에게도 없었던 모습이고, 그동안의 시윤이에게도 없었던 모습이었다. 콕 집어서 ‘무엇’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냥 관념적으로 ‘시윤이도 자존심이라는 게 강해졌구나’라는 게 느껴졌다. 아내가 시윤이를 상대하는 게 까다롭겠다고 생각했다. 난 시윤이 같은 아들을 만난 적이 있다. 결혼하기 전까지의 내가 그랬다. 신기하면서도 무섭다. 자녀들에게서 나와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아내에게 먼저 경험한 사람을 추천해야겠다. 여보, 우리 엄마 만나 봐.
다행히 오늘은 지난 주일 같은 불상사(똥팬티)는 없었다. 소윤이도 밤마실을 나가지 못한 아쉬움을 스스로 잘 다루고 잠들었다. 훈육의 시간을 가졌던 시윤이도 잘 때는 기분 좋게 잠들었다(저녁 먹기 전에 원래대로 돌아오기는 했다). 아이들이 무사히 잠들었으니 난 밤에 해야 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했어야 했는데, 피곤을 핑계 삼아 늘어졌다. 그렇다고 잔 것도 아니고.
아내가 엄청 늦도록 오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끝나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평소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성경 공부가 끝나고 대화를 나누느라 그랬다고 했다. 아마 메시지를 받았을 때도 아직 대화가 끝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내는 거의 자정이 다 돼서 돌아왔다. 들어올 때는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생기가 넘쳤다. 한 10분 뒤에 돌변했다.
“아, 너무 피곤하다”
아마 나도 놀면 안 피곤하겠지? 이 집에 누가 수면제를 뿌려 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