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의 기적

22.10.28(금)

by 어깨아빠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고 아내를 깨웠다. 아내는 대답인 듯 아닌 듯한 소리를 내긴 했지만 눈을 뜨지는 못했다. 아내를 몇 번 더 흔들고 나도 잠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40분이 흘렀다. 덕분에 아내와 아침 큐티는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몸이 무척 개운했다. 고작 40분 더 잤다고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시적인 착각일 거라고.


아내는 아침부터 어려움을 호소했다. 첫 공식 일과라고 할 만한 ‘성경 읽기’ 시간부터 시윤이의 짜증을 대면했다고 했다. 아내가 많이 인내하고 정제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매일 반복되고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여러 상황에 짜증이 나도, 다시 반복해서 오늘의 일을 어제의 일로 만드는 아내의 일상의 단내가 느껴졌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애들 데리고 미용실에도 가고. 일상은 변함없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변함없는 일상이 감사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끔은 멈춰줬으면 싶을 때도 있기는 하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지난 번에 내가 갔던 미용실이 괜찮아서 아내와 아이들도 가 보기로 했다. 가장 시급한 시윤이와 아내만 잘랐다. 소윤이는 아내가 집에서 잘랐고, 서윤이는 아직도 유료 미용을 받을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내는 미용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잠시 교회에 들러서 나와 K에게 핫도그와 커피를 주고 갔다. 아내와 아이들도 나와 K가 있는 곳의 옆 공간에서 핫도그를 먹었는데, 그 잠깐 사이에도 아내의 고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잠깐 앉아서 핫도그 하나 먹이는 데도 적잖은 체력이 소모되는 게 느껴졌다.


교회에 가기 전에(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퇴근했지만, 저녁에는 금요기도회에 가야 했다) 잠깐 바깥 바람을 쐴까 싶었는데 갑자기 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밤마실 계획(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은 취소됐다. 퇴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거다. 그 다음은 집안의 분위기와 아내의 동태 살피기. 아내의 기분이 어떤지 아이들은 어떤지 잘 살펴야 한다고 마음을 먹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이제는 습관이자 본능이 됐다. 오늘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보였다. 식기세척기 수리 기사님이 수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가공(?)된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서윤이가 자고 있었다. 교회에서 집으로 올 때 잠들었는데 그때까지 자는 거였다. 다른 평일이었으면 너무 늦은 낮잠이 부담스러웠을 테지만 오늘은 어차피 금요기도회에 가야 했기 때문에, 아내는 꽤 덤덤했다. 서윤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깼다. 저녁은 떡만둣국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교회에 가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좀 씻기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사라졌다. 사실 난 시간이 많았지만 한 팔이 없어서 아이들 씻기는 게 좀 어려웠다. 교회에 다녀 오면 너무 늦은 시간일 테니, 내일 아침에는 꼭 씻자고 했다. 소윤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가 혼자 씻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했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도 안 피곤했고, 저녁을 먹고도 안 피곤했다. 교회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아침의 그 개운했던 기운을 안고 살았다. 너무 신기했다. 정말 고작 그 40분 때문에 이런 건가.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조금 더 자야 하나 싶었다. 아니면 밤에 눕는 시간을 더 당겨야 하나.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피로감 없이 하루를 보냈다. 피로가 (일시적일지는 모르지만) 사라졌으니 피로감 부재 유지를 위해 애를 써야 했는데, 어리석은 인간 놈인 나는 아내와 영화를 봤다.


(사실 아내가 나보다 더 영화를 보고 싶어 하긴 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본 건 또 아니었다. 이렇게 안 써 놓으면 아내가 오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