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못한 피자

22.10.29(토)

by 어깨아빠

“아빠아. 똥 따떠여어”


서윤이가 선사하는 모닝콜이었다.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왠지 아내도 들었을 것 같긴 했다.


“여보. 들었어?”

“어”


팔을 다친 뒤로는 배변과 관련한 모든 일은 아내가 맡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덕분에 열외’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미안하다. 특히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똥팬티 처리하기’라면 더더욱. 요즘 몸 이곳저곳이 돌아가면서 아픈 아내는, 며칠 전부터는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K의 아내와 첫째는 함께 서울에 갔고, K는 오후에 일이 있다고 했다. K의 둘째와 막내를 우리가 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K가 둘째와 막내를 데리고 집에 왔다. K는 아이들을 맡기고 바로 떠났다. K의 둘째는 아들이고 나를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막 격 없이 다가오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K의 막내는 딸인데 자기 의지로 나에게 온 게 한 번 정도다. 철저하게 외면한다. 나를 알기도 하고 친밀하게 생각도 하지만 절대 오지는 않는다. 오기는커녕 손만 잡아도 뿌리친다. 나한테만 그러는 건 아니고 아빠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성에게 그런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럽다. 특별히 나만 포악스럽게 느끼는 건 아니라는 얘기니까. 그에 비해 아내에게는 엄청 잘 간다. 진짜 피를 나눈 ‘이모’로 착각하나 싶을 정도로 스스럼 없다. 오늘도 거의 엄마에게 붙듯,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팔을 뻗으며 나에게 오라고 해 봤지만 당연히 실패했다.


아이가 다섯이었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K의 둘째와 시윤이가 수준이 맞는지 잘 놀았다. 서윤이는 K의 막내와 놀기도 하고 혼자 놀기도 하고 언니, 오빠와 놀기도 했다. 어디서도 다툼이나 갈등은 거의 업었다. K의 막내도 워낙 순해서 울음 소리를 한 번도 못 들었다. K의 막내가 나에게는 아예 안 왔으니까 나는 수월했지만, 내내 붙어 있던 아내는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붙어 있기는 해도 안아달라고 울거나 그러지 않아서 대체로 바닥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 같긴 했다.


서윤이도 질투를 하지 않았다.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니었다. K의 막내가 아내의 품을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까 자기도 가서 안기고 싶기는 했나 보다. 한 번씩 다리든 팔이든 아내에게 부비적대며 애교를 부렸다. 아무튼 K의 막내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자기가 점유하던 무언가를 K의 막내가 가지고 가도 흔쾌히 내어줬다. 언니라고 동생을 대하는 듯한 말투와 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점심은 빵으로 대체했다. 원래 파스타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K의 둘째와 막내는 집에서 점심을 먹고 왔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라도 먹이려고 하다가 갑자기 귀찮아졌다. 집 근처의 ‘맛있는’ 과자점에서 빵을 사 왔다. 점심을 먹고 온 K의 둘째나 점심을 안 먹은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나 다 잘 먹었다.


서윤이 낮잠은 내가 재웠다. K의 막내가 나에게는 오지 않기 때문에 아내가 있어야 했다.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누웠는데 무척 졸렸다. 살짝 졸았다. 까딱 잘못했으면 서윤이와 함께 잤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완전히 잠들기 전에 깨서 나왔다.


K의 막내는 아내가 재웠다. 아내가 아기띠를 해서 재운다고 하길래 말렸다. 허리의 통증이 더 악화되는 지름길이었다. 아마 내가 없었으면 아내는 아기띠를 했을 거다. 눕혀서 재워 보라고 했다. 아내는 K의 막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십여 분이 지나고 아내가 나왔다.


“안 자네? 일어나서 막 돌아다니네. 구경하고. 아기띠 해야 되나?”

“안 된다니까. 자꾸 무슨 아기띠야 아기띠는”

“그럼 어떻게 하지? 그냥 안아서 재워볼까”


아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안 지나서 나왔다.


“잔다”


나머지 자녀들은 거실과 방에서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오랜만의 풍경이었다. 거실과 방에 혼란스럽게 널브러진 블록이. 풍경만 보면 분명히 어디선가 다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K는 이른 저녁 쯤 돌아왔다. K의 막내는 아빠를 보자마자 팔을 뻗으며 안아달라고 했다. 서윤이가 나에게 그러던 모습이 스쳤다. 물론 요즘도 나에게 달려 오기는 하지만 그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장난과 능청이 더해져서 재미가 있지만 ‘더 아기일 때’의 완전히 의지하는 느낌이 종종 그립기도 하다.


저녁은 불고기와 소시지, 그 밖의 밑반찬이었다. 한 팔이지만 아내를 도왔다. 소시지에 칼집을 내고 끓는 물에 데쳐서 볶는 걸 담당했다. 할 만한 일이었다. 아내와 내가 모두 주방에 있어서 졸지에 K 혼자 아이들을 맡는 형국이 됐다. 그래도 아이들이 여전히 자기들끼리 잘 놀아서 K가 해야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K는 저녁을 먹고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둘째의 요구를 수용해서 조금 더 놀 시간을 주느라) 갔다. 아내와 나도 부지런히 아이들 재울 준비를 시작했는데 조금 있다가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인가 하고 봤더니 K였다. 고맙다면서 피자를 한 판 사 왔다.


안타깝게도 피자는 먹지 못했다. 아이들 재울 준비를 하면서 아내와 아주 작은 말다툼이 일었는데 난 그저 그 순간의 일로 끝날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아니었다. 크게 마음이 상했다고 하면서 밖에 나가서 한참을 있다가 왔다. 돌아온 아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 속에 적개심이 남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화창한 봄날처럼 쾌청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