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변기에 좀 싸지 그랬니

22.11.15(화)

by 어깨아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자녀들과, 특히 소윤이와 굳게 약속을 한 거라 힘을 내서 나갔다 왔다고 했다. 다녀와서 후폭풍이 큰 듯했다. 퍼석퍼석하게 부스러지는 무언가 같았다.


원래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퇴근했다. 나의 저녁 식사 동참 여부는 아내에게 중요한 변수다. 양이 달라진다. 엄청나게. 아내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등장에 당황했다. 그럴 거 없었다. 먹다 남은 오리불고기와 치킨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의 헌신으로 밖에 나갔다 온 덕분에 행복해 보였다. 둠뫼공원에서 뭘 하고 놀았는지, 뭘 먹었는지, 얼마나 있었는지를 주르륵 얘기했다. 아내도 나도 피곤했지만 끝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자러 들어갔던 서윤이가 방에서 아내를 부르며 얘기했다.


“엄마아. 엄마아? 똥 따떠여어”


‘마려워여’가 아닌 ‘따떠여’였다. 참으로 절망스러운 알림이었다. 팬티에 똥을 싸는 게 힘든 일이긴 했지만 아내가 다른 날에 비해 훨씬 더 격정적으로 반응했다. 마치 화가 난 사람 같았다. 분을 주체하지 못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서윤이에게도 그랬고, 서윤이가 들어가고 나서는 침대에 누워서도 그랬다.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은 마음에 다가가서 위로라도 해 줄까 했는데,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잘못하면 나까지 태울 정도로 불이 나는 느낌이었다. 육아의 시기를 보내는 부부에게 매우 큰 위험 요소가 있는데, 그게 피로다. 둘 다 피곤으로 충만할 때는 작은 금만 생겨도 큰 균열로 이어진다. 오늘이 그랬다. 까딱 잘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시작으로 큰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날이었다. 일단 그냥 아내를 혼자 두기로 했다. 나도 혼자 있고 싶었고.


어제처럼 아내에게 일을 좀 부탁했는데 그것도 그냥 내가 했다. 서윤이가 똥을 쌌다고 얘기했을 때도 아내는 내가 부탁한 일을 하던 중이었다. 아내는 ‘그 일 때문에 힘든 거’라고 티를 내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했다. 그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냥 내가 했다. 아내에게 뭔가 일을 맡기는 게 온당치 않아 보였다. 다툰 게 없으니 화해할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정함이 오가지는 않았다. 난 일이 바빴고, 아내는 집안일이 바빴다.


오늘도 매우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다가 자러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사과를 했다.


“여보.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내가 나를 향해 화를 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화를 냈다’라기 보다는 ‘화가 났나?’ 싶었다. 어찌 됐든 아내 스스로도 너무 감정 과잉이었다고 느끼긴 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아내도 누구한테 사과할 일을 한 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