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6(수)
K와 새로운 일을 기획했고, 오늘과 내일이 바로 그걸 실행하는 날이었다. K의 첫째와 소윤이도 함께 데리고 가서 간단한 역할을 주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첫째들만 역할이 있었다. 시윤이의 큰 낙심을 예상했다.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수요예배에 가기 전에 다시 집으로 왔다. 소윤이만 데리고 다시 출발했다. 시윤이와 서윤이에게는 상황을 설명했다. 왜 누나(언니)만 가야 하는지.
시윤이는 수요예배에 가서 태도가 몹시 안 좋았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시윤이는 너무 속상했던 거다. 자기만 남고 누나만 간 게. 그냥 속상한 게 아니라 자존심이 상했다. 자기도 할 수 있는데 왜 누나만 가야 하는 건지, 누나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자기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누나만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지 않았다고 봐야 하나.
오후에는 처치홈스쿨 식구들을 초청해서 테스트 개념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수요예배를 드리고 바로 오기로 했는데 시윤이가 가기 싫다고 했다는 거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시윤이가 가기 싫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죠?”
겨우 설득해서 시윤이의 마음을 돌리기는 했다. 시윤이는 창피하다고 했다. 누나만 가고 자기는 남은 게 창피하다고 했다. 아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서윤이랑 엄마랑 데이트 하는 거다’, ‘거기 가면 엄청 재밌을 걸? 안 가면 후회할 걸?’ 같은 말로 회유를 해 보려고 해도 하나도 안 먹혔다. 상처 난 사나이 자존심을 치유하기에는 너무 유치한 발언들이었나. 아무튼 시윤이도 역시 자기만의 색이 있다. 단순한 아이는 아니다. 실제로 시윤이가 충분히 속상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토록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그 곳을 차지(?)한 소윤이와 K의 첫째는 생각보다 너무 까불었다. K와 나의 인내의 한계가 드러날 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다. 둘만 있으니 더 까불었다. 차라리 시윤이가 훨씬 책임감 있게 얌전히 임무 수행을 잘 할 것 같았다. 뼈저리게 느꼈다.
‘아, 여덟 살도 아직은 한참 어리구나’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을 한다면 아마도 심각하게 고민을 할 거다. 아니, 사실 오늘 이미 결정이 났다. 아니면 차라리 시윤이를 포함하거나.
모든 행사를 마치고 나니 매우 늦은 시간이었다. 까불고 말을 안 듣긴 했어도 수고는 했으니 소윤이와 K의 첫째에게 감사를 전했다. K는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바닷가에 들러서 바람을 쐬자고 했다. 그토록 늦은 시간에도 쌩쌩한 소윤이와 K의 첫째의 요구에 부응하는 움직임이었다. 역시나 K가 나보다 훨씬 관대하고 수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였으면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오자. 오늘은 얼른 가서 쉬어야지”
라며 거절했을 텐데.
시윤이와 서윤이는 안 자고 누나(언니)를 기다렸다. 시윤이의 표정과 질문, 분위기에서 얼마나 궁금해 하는지 느껴졌다. 누나가 거기서 뭘 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누가 왔는지. 행사를 진행하고 나니 몸이 녹초였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혼자 본 것만큼이나 기력이 달리고 당이 당겼다. 나만큼이나 아내도 고생이었다. 육아 피로도에 큰 지분이 없는, 오히려 함께 있으면 도움이 많이 되는 소윤이를 보내고, 자존심이 상한 걸 엄한 데다 푸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다.
큰일이다. 내일 하루 더 있는데. 시윤이는 오늘이 끝인 줄 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