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7(목)
오늘도 아침에 나갔다가 점심 무렵에 잠시 집에 들러서 소윤이만 데리고 나왔다. 시윤이는 아침부터 아내에게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백 번도 넘게 얘기했다고 했다. 오늘은 자기가 가고 싶었다고.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계획 수정이라 꺼려졌다. 원래대로 소윤이만 데리고 나왔고 시윤이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는 건 아내의 몫이 되었다.
소윤이와 K의 첫째는 어제처럼 까불었다. 진지하게 ‘맡은 역할의 중요성’에 관해 얘기를 해 주었지만 아직 마음에 담아 두기는 어렵나 보다. 아이들도 고생이기는 했다. 바빠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바쁜 건 나와 K가 바빴지만 아이들이 따로 가서 밥을 먹을 수는 없으니 덩달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점심에는 김밥, 저녁에는 토스트를 먹었다. 누가 보면 아동 노동 착취의 현장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저녁에는 아내가 잠시 왔다 갔다. 필요한 물품이 있어서 그걸 갖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난 준비하느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그때도 시윤이가 많이 속상했다고 했다. 아예 안 봤으면 모르는데 괜히 봐 가지고 마음이 들썩였나 보다. 게다가 의사소통의 오류로 잠시 자기도 같이 남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고생이었다.
아내는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특히 시윤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애를 썼다. 시윤이가 가고 싶다는 공원에도 가고 시윤이가 먹고 싶다는 것도 먹고. 시윤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챙겨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시윤이도 나름대로 애를 썼다. 속상할 만한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짜증과 떼가 나오긴 했지만, 금방 가라앉혔다고 했다. 어제와 오늘 이런 상황이 두어 번 정도 있었다고 했는데, 아내는 굉장히 생소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막 짜증을 내는 시윤이에게 아내가 ‘오늘 하루 종일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시윤이 니가 이렇게 하면 우리가 그동안 보냈던 좋은 시간이 다 무용지물이 되지 않느냐. 그럼 엄마는 다음에 이렇게 나오고 싶지 않을 거 같다’ 뭐 이런 식으로 하소연을 하니까, 시윤이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는 ‘알았어요. 저도 안 그럴 테니까 엄마도 기분 나빠지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나왔다는 거다.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갑자기’ 태세를 바꾸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행동하는 시윤이가 신기했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시윤이의 ‘나도 그렇게 안 할 테니 엄마도 그러지 마세요’라는 시윤이의 태도에 박수를 보내기로 했다. 게다가 실제로 먼저 말과 행동을 바꿨으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아무튼 그동안 시윤이의 짜증을 받는 데만 익숙하던 아내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느 때처럼 받아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먼저 거둬가는 시윤이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을 했다.
행사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간단한 위로회를 가졌다. K의 첫째와 소윤이가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다. 사실 낮에 먹기로 약속을 했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보내다 보니 먹으러 가지 못했다. 약속을 못 지킨 거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아직 문을 연 핫도그 가게를 찾아서 갔다. 까불긴 했어도 수고한 건 마찬가지니 감사를 전했다. 열 시가 넘은 시간에도 둘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집에 오니 열한 시였다. 오늘은 시윤이와 서윤이가 자고 있었다. 소윤이도 얼른 씻겨서 눕혔다.
나도, 소윤이도, 남아서 속상했던 시윤이도, 그런 아들을 위로해야 했던 아내도, 모두 수고한 이틀이었다(서윤이는 뭘 수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