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가위질

22.11.14(월)

by 어깨아빠

오전에 시간에 맞춰서 구매를 해야 할 게 있었다. 물론 아내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아내는 어제 알람까지 맞췄다. 아내가 이미 품절이 된 제품 사이트를 찍어서 보냈다.


“이게 뭐라고. 시윤이 훈육하느라 미리 대기 못 함. 슬프네”


난 바쁠 때라 제대로 답장을 못했는데 아내는 그 뒤로도 여러 번 메시지를 보냈다. 매우 다급하게. 원래 사려고 했던 거 말고 다른 걸 사도 괜찮냐는 내용이었다. 육아는 변수의 연속이다. 알람까지 맞춰 놓고 대기를 했지만 마침 그 때 시윤이를 훈육하는 건 예상을 못한 거다.


점심 때 쯤 아내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오늘 시윤이가 정말 많이 힘드네. 계속 안아주는데도”


하루 종일 힘들었던 것 같았다. 아내는 저녁을 밖에서 먹었다. 혼자 아이들 셋을 데리고. 밖에서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집에서 뭘 차리기도 귀찮을 뿐더러 하루 종일 ‘어디라도’ 나가자는 자녀들의 끊임없는 요구가 지겨웠을 거다. 아내는 내가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하필 오늘따라 집에 늦게 왔다. 저녁도 밖에서 먹고 아이들 잘 시간에 돌아왔다. 아내에게 커피라도 사다 줄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했다. 아내의 목소리는 무척 무거웠다. 무거울 뿐만 아니라 어두웠고 건조했다. 라떼와 빵을 사 들고 가기는 했지만 과연 이런 것 따위로 아내에게 위로가 될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어두움이었다.


“여보 오기 전에 어두운 기운 지워 놓고 있을게요”


왠지 모르게 안쓰러웠다. 퇴근해서 편안하지 않은 분위기를 마주하는 건, 또 매우 잦은 빈도로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나만 생각하면 아내의 메시지가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원하지도 않는 어두운 기운을 매일 처리해야 하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했다. 실제로 아내는 통화할 때와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날 맞이했다. 아이들도 아직 잠들기 전이었다. 누워 있기는 했는데 잠들지는 않았다. 방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 모습만 봤으면 ‘오늘 하루 종일 엄청 행복하고 좋기만 했나 보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었다. 과연 그들은 오늘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몇 시간도 아니고 하루 종일 내내.


그 피곤한 아내에게 일을 좀 부탁했다. 자르고 붙여야 하는 일이라 꼼꼼한 아내의 손길이 필요했다. 착한 아내는 기꺼이 나의 일을 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서 쉬어야 하는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여보. 너무 고맙네?”


행군 군장을 들어 주는 전우를 보는 심정이었다. 아내는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은 눈으로 종이를 잘랐다.